69[최태호의 와인 한 잔] 와인 한잔 할래요?
‘가을이 지나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올해 이탈리아 프리오카에서 열린 와인품평회를 마치고 와인을 즐기는 스태프들.
가을이 오는 계절. 높고 푸른 하늘,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바람이 좋다. 밤하늘의 별빛을 안주 삼아 입 안 가득 와인을 머금고 싶은 밤, 가을이 어느새 우리 앞에 서 있다.
나와 함께 노래할래요? 영화 ‘비긴 어게인(Begin Again)’의 원제는 ‘Can a song save your life?(노래가 당신을 구할 수 있나요?)’이다. 영화의 제목처럼 영화에 수록된 많은 곡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지만 그중 다시 시작한다는 뜻의 ‘Begin Again’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은 ‘로스트 스타스(Lost Stars)’이다. “We all lost stars, trying to light up this dark? (우리는 이 어둠을 밝히려고 애쓰는 길 잃은 별들인가요?)” 우주의 미아처럼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헤매는 우리의 삶. 아주 작은 별이 캄캄한 하늘을 밝히려 빛나는 것처럼 이루기 힘들어도 시도는 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와인 한잔할래요?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식사 한번 합시다” “소주 한잔하자”란 말을 흔하게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과 식사나 소주 한잔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형식적으로 무심코 던지는 의미 없는 말보다 구체적이고 진심 어린 대화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와인을 마셔보지 않았고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와인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경험하지 못한 기억을 이야기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영화 ‘굿바이 어게인(Goodbye again)’에서 시몽(안소니 퍼킨스)이 폴라(잉그리드 버그만)에게 한 말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음악회 티켓을 주면서 함께 보러 가자고 하는 건 이제 촌스러운 데이트 신청이다. 세련되고 구체적으로 말해야 마음이 전달될 수 있다.
‘피노누아를 좋아하세요?’ 이제는 이렇게 이야기해보자. 일방적인 제안이 아니라 상대의 취향과 경험을 존중하는 태도, 이렇게 개념적이고 참하게 물어보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는 분명 당신과 진심으로 와인 한잔하고 싶은 것이 맞다.
“(파가니니의) 연주를 들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아무리 열심히 설명한들, 무감각한 철자와 죽은 단어의 나열, 그저 해독 불능의 상형문자에 불과할 것이다.” 빈 공연 직후,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 E장조에 관한 논평처럼 맛있는 음식을 즐길 때나 콘서트에서 음악과 분위기에 빠져드는 순간에도 아무런 느낌이나 반응 없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밤하늘의 별들만으로 캄캄한 세상을 환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별빛을 이정표 삼아 길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행복한 삶을 위한 자기 증명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기 위해선 책임감이 필요하다. 설득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성공할 수 없는 것처럼 매일 특별한 와인을 마실 수는 없다. 일반 대중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처럼 평범한 와인이지만 맛으로만 느끼는 비정신적 영역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함께했던 사람과 장소, 감정 등의 기억을 떠올리며 와인을 즐길 수 있는 문화가 그립다.
최태호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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