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최태호의 와인 한 잔] 역사 속 와인 마케팅
와인의 상업적 성공과 와인 문화의 탄생은 품질 개선과 성공적 마케팅 전략의 합작품이다. 역사적으로 수도원과 포도 재배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12세기 초 베네딕투스회에서 분파한 시토회는 엄격한 교리로 하느님의 창조물인 와인을 돌보는데 마음을 다하고 완벽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수도사들은 토양과 기후, 포도 재배와 와인과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와인 생산과정뿐만 아니라 땅 다지기, 가지고르기, 가지치기, 접붙이기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크뤼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특정 포도밭의 포도로 빚은 와인은 남다른 특징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와인마케팅의 최신 트렌드를 만날 수 있는 독일 뒤셀도르프의 프로바인 와인박람회.
특정지방의 와인이 인지도를 높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부터였다. 포도 품종과 생산지를 밝히기 시작한 이는 보르도의 ‘아르노 드 퐁타크’다. 그는 좋은 포도만 골라 와인을 빚고 한번 사용한 오크통을 재활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와인의 질을 높였지만 그의 주된 관심은 마케팅이었다. 그라브의 포도밭에서 생산된 와인에는 오브리옹이라는 이름을, 다른 지역 포도밭에서 생산된 와인에는 가문의 이름 퐁타크를 붙여 고급 제품에 민감한 런던의 와인 시장을 공략했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는 신고전주의 건축과 예술이 인기를 끌던 시절로, 와인 전문가들 역시 그리스 로마시대의 기준으로만 와인을 평가했다. 19세기는 산업화에 따른 대량생산과 중산층의 성장으로 소비문화가 확실하게 자리 잡게 된 시기다. 유럽과 세계각지의 와인을 소개한 책들이 출간되기 시작했으며 소비자 중심의 와인 문학이 등장하면서 유럽의 중산층과 상류층은 보다 세련된 와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와인 문학, 와인의 역사 경제 미술 음악을 망라하는 주제들, 오늘날 와인 관련 잡지나 신문 칼럼에서 접할 수 있는 와인에 대한 해설이나 평가들은 19세기에 시작된 것이다.
와인을 생산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와인을 자연의 산물인 동시에 오랜 전통의 결정판이라고 생각한다. 보르도의 경우 1855년 등급체계를 만들 당시 포도원 이름 앞에 샤토라는 이름이 붙은 와인은 보르도 1등급 그랑크뤼 와인들뿐이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등급 분류의 대상이 되는 모든 와인 앞에 ‘샤토’라는 단어가 붙게 되었다. ‘샤토’라는 명칭을 붙인 와인이 역사가 오래된 유서 깊은 귀족 가문과 관계가 있어 보이는 마케팅 효과로 보르도를 넘어 프랑스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하나의 방식이 관행으로 굳어지면 전통이 되듯, 새로운 전통이 탄생된 대표적인 마케팅 사례이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와인은 병충해, 금주법, 관세 장벽, 경제 불황, 세계대전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1950년대 이후 생활필수품 이었던 와인이 기호품으로 바뀌고 전 세계 생산자들이 고급 와인 생산에 주력하게 되면서 와인 산업은 번영과 안정의 시대를 맞이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까다로워진 소비자들은 와인의 품질 대비 가격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975년 하버드 경영대학의 ‘레비트’ 교수는 ‘마케팅 근시안’이란 논문에서 “성장산업 같은 것은 없다. 단지 소비자의 욕구만이 있을 뿐이고 그것이 변해 갈 뿐이다”고 지적했다. 20세기 말 마케팅 패러다임의 변화와 함께 와인시장도 고객 중심의 새로운 물결 속에서 마케팅과 광고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앞으로 와인시장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21세기 디지털 세상에서 와인시장이 직면한 도전들이 많다. 종교와 전쟁, 정치 사회 경제적 변화, 식생활의 변화 등 부침을 겪은 와인의 오랜 역사처럼 와인의 미래도 지나온 시간만큼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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