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최태호의 와인 한 잔] 호주 와인과 보랏빛 수영장
호주 와인은 유럽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특유의 깨끗한 자연환경에서 자란 포도와 진보적인 양조방법으로 강렬하고 진한 풍미를 자랑한다. 단순히 한 국가라고 보기에는 엄청나게 광활한 대륙의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천연의 자연환경을 보여주는 호주 빅토리아주 스트라스보기 지역의 파올스 와이너리.
19세기 후반 호주는 주로 햇볕에 잘 익은 포도로 만든 주정강화와인을 영국에 대량 수출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1970년대부터 주정강화와인의 판매는 급감하고 빅토리아와 남호주 등 소수의 와인메이커가 색다른 맛과 숙성 잠재력이 있는 와인들을 만들면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유럽이라는 열정적인 수출시장도 찾게 되었다. 하지만 변화에 약한 와이너리들은 수익을 내지 못하고 거대 와이너리에 잠식당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와인 수출이 급증하면서 열광적으로 포도나무를 심고 생산량을 늘렸다. 결국, 과잉공급으로 내수시장 가격이 파괴되고 당시 호주 달러의 강세로 싸게 들어온 수입 와인과의 경쟁까지 직면하게 되었다. 2000년 중반 뉴질랜드의 유명한 말보로 지역 소비뇽블랑 와인이 밀려오면서 소비뇽블랑과 눈사태(avalanch)를 조합한 ‘새벌랜치(savalanche)’라는 신조어 마저 생기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 호주의 가장 중요한 수출시장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변덕스러운 미국시장은 싸고 달며 단순한 라벨의 호주 와인에 흥미를 잃었고 영국의 대량 판매 슈퍼마켓체인들도 벌크와인을 수입해 자신들의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호주 와인 산업을 구한 것은 중국이다. 중국인들이 호주 와인에 열광하면서 다시 희망을 찾았고 중국이 2019년 초 호주 와인에 대한 모든 수입관세를 폐지하면서 중국에서 호주 와인 수입이 더욱 급증했다. 하지만 2020년 호주 정부가 중국을 겨냥해 코로나19 기원 조사를 요구하는 등 반중 행보를 본격화하자 중국 정부는 호주 와인에 최고 212%의 보증금 관세를 부과하면서 경제보복으로 맞섰고 2020년12월 호주 와인의 중국 수출은 97% 까지 급감했다.
위기의 호주 와인. 하지만 ‘보랏빛 염색약을 수영장에 한 스푼만 넣어도 수영장 전체가 보랏빛으로 물들지만 바다에 넣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세스 고딘 ‘보랏빛 수영장’ 이론처럼 차별화 전략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 당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호주 와인 산지별 대표 품종과 스타일을 ‘호주의 지역 영웅들(Regional Hero)’로 분류해 홍보하고 있다. 역사상 가장 높은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성과를 이루고 있지만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호주 와인은 2020년대부터 지역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고급 와인 판매로 확실히 방향을 바꾸어 진행하고 있다.
21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전략가 세스 고딘이 ‘보랏빛 소가 온다’에서 역설한 ‘리마커블’은 단순한 차별화를 넘어 추천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과거의 마케팅은 안전하고 평범한 제품을 만들고 이를 위대한 마케팅과 결합하는 것이었다면 새로운 법칙은 리마커블한 제품을 창조하고 그런 제품을 열망하는 소수를 공략하는 것이다.
도전과 혁신으로 새로운 와인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와인 생산국, 기후가 뚜렷하게 차이나는 세 지역(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와 센트럴 지역, 빅토리아와 태즈메이니아)에서 생산되는 고급 와인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있는 호주 와인은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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