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을 위한 책 한 권, 와인 한 잔(2)
휴가철을 위한 책 한 권, 와인 한 잔(2)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가 여성의 성기를 적나라하게 그린 그림 ‘세상의 기원(L’Origine du monde)’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현재는 이 그림과 관련하여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이라는 책에서 “사실주의의 기능은 있는 그대로를 표현한다기보다 우리가 가려왔던 현실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묻고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필립 클로델(Philippe Claudel)이 쓴 책 <향기(Parfums)>에서 여자 성기의 냄새에 대해서 쓴 것은 사실 내게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나는 여성의 성기를 발견하느라 수년간을 바쳤다…… 그저 그 형태와 부드러움과 냄새가 안기는 미묘한 차이에 경탄하기 위함이다. 어떤 성기도 다른 성기와 같지 않으며, 어떤 것도 같은 향기를 지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성 성기에 관해 꿈꾸었던 손가락과 입술은 오랫동안, 아주 오래도록, 그 향기의 기억을 간직한다. 마치 그 기억이 사라지기를 원치 않는 듯.”
이 충격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필립 클로델의 책 <향기>는 휴가나 여행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매력을 선사한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기억에 남는 냄새들, 잊을 수 없는 향기들을 적어본다. 공기 속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그 냄새들은 고스란히 기억과 정서 속에 남아 있다. 그 향기들을 맡으며 우리는 자유로이 삶을 여행한다. 여행 가방은 더없이 가볍다. 시간이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우리를 붙들고, 과거의 어딘가로 언제든지 우리를 떠나보낼 수 있는 향기의 마법. 신이 선사한 가장 원초적인 이 감각은 결코 시곗바늘에 찔리지 않는다.”
호텔 방, 선크림, 새 시트, 캠프파이어, 수영장, 강, 여행의 냄새에 대해서 쓴 글들이 특히 휴가나 여행을 앞둔 사람들에게 끌린다. 길지도 않을 우리들의 일상에서의 탈출에서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향기를 인상적으로 경험해보면 어떨까? 언젠가 우리는 푸르스트 효과를 생각하며 그 순간을 즐겁게 회상할 것이다.
필립 클로델의 책 <향기>를 읽으며 남프랑스에서 생산되는 스파클링 와인 한 잔을 마실 것을 권하고 싶다. 1920년 설립되어 가족 경영으로 3대째 이어져 오는 델마(Delmas) 와이너리는 1986년 리무(Limoux)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최초의 올가닉 와인 인증을 받은 와이너리다. 리무의 독특한 4대 테루아 중 가장 높은 고도와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는 Haute Vallée에 위치해 서늘한 미세기후 등의 천혜의 조건을 타고난 정통 Blanquette와 Crémant을 생산하고 있다. Haute Vallée은 전반적으로 진흙과 석회질 토양으로 구성되어 와인에 리치한 아로마와 뛰어난 신선함을 부여함으로써 주요 비평가들에게 ‘Little Burgundy’라고 불린다. 일상에서의 탈출, 새로운 발견이라는 여행에 어울리는 와인이다.
꾸베 트라디시옹 블랑케트 드 리무(Cuvée Tradition, Blanquette Limoux Brut A.O.C)는 아삭아삭한 청사과의 신선한 향과 꿀내음, 향긋한 꽃내음과 함께 섬세한 레몬 시트러스의 풍미가 길게 이어지고, 아찔할 정도로 강건하고 풍부한 기포가 입안을 가득 메운다. 블랑케트(Blanquette)는 리무(Limoux)의 메인 품종인 모작(Mauzac) 잎사귀의 뒷면이 독특하게 희끄무레한 색상인 것에서 착안하여, 이 지역 전통 스파클링이 모작(Mauzac)으로 생산된 것을 기리기 위해 지은 이름이다.
꾸베 파시옹 크레망 드 리무(Cuvée Passion, Crémant de Limoux Brut A.O.C)는 황도와 아몬드 트리 바스켓을 한아름 안은 듯한 풍부한 아로마와 샤도네이가 주는 고소하고 달콤한 버터풍미와 슈냉 블랑의 미네랄 톤, 피노 누아가 주는 타닌감이 훌륭하다. 견고하지만 여유롭고 부드러운 기포와 이스트 풍미가 길게 이어지고, 헤이즐넛 뉘앙스의 피니쉬가 인상적이다.
이제 무더위를 탈출하자. 기포가 넘치는 스파클링 와인 한 잔 마시며 필립 클로델의 책 <향기>를 여행가방에 담고.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Wine Writer / Consultant / Lectu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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