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태어나서 초등학교 저학년을 보낸 에디터의 집은 작은 골목길에 있었습니다.
나이또래의 아이들이 모여 살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늘 시끌시끌했었죠.
지금 같았으면 층간 소음이다 뭐다 해서 벌써 멱살잡이를 했을 만큼 떠들썩 했지만 그 당시엔 많은 분들이 너그러이 용서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끄럽다 인상 쓰는 동네 어른에 대한 기억이 없네요.
그 골목길에서 소꿉놀이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고 땅 따먹기도 하며, 어린아이의 새된 웃음소리로 배꼽을 잡았던 기억이 선합니다.
골목길은 늘 그렇듯 누구에게나 아날로그의 기억으로 추억됩니다. 지금처럼 정갈한 도로와 경비실, CCTV의 차가움으로는 찾아보기 힘든 정서입니다.
주택마다 있던 초인종대신 동으로 나뉘는 아파트가 들어섰으니 이제 누르고 도망갈 벨도 없군요.
벨을 누르고 도망쳤다간 경비아저씨께 붙잡히거나 문제아로 낙인 찍힐 것이 뻔한 장난입니다. 장난 이라기엔 리스크가 크네요.
생각해보니 낮에 집에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기도 합니다. 아니면 믿음을 전하려 오는 그 분이려니 하고 인기척을 내지 않을 수 도 있겠네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정서에 잠시 잠깐 추억에 젖은 에디터의 눈빛이 아련해졌습니다. 어린아이들의 놀이터였던 골목길, 해질녘의 그 풍경이 그리워 집니다.
자, 골목길 타령은 이쯤 해두고 오늘의 공간을 소개해야겠네요.
애써 따뜻하진 않지만 딱히 차갑지도 않은 어른들의 놀이터, 이태원 뒷골목을 다녀왔습니다.
한강진역 3번 출구로 나와 한적한 도로를 걷다 보면 대로변에 위치한 큼직한 카페와 샵이 즐비합니다.
이 도로를 따라 쭈욱 내려가면 제일기획 건물이 나오고 더 아래로 내려가면 이태원역이 나오는데,
오늘은 이 직선라인 대신 대로변 안쪽 골목길을 걸어 봤습니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D라인이 되겠군요, 제일 마지막 골목의 오르막을 올라오니 제일기획이 보였습니다.
첫 번째 골목을 만났습니다. 에디터도 가끔 들르는 이곳은 이미 아는 사람은 아는 디자인 편집샵 입니다.
들른 김에 키친아이템을 둘러 보고 왔습니다. 요즘 부쩍 키친아이템이 눈에 들어오네요.
가게를 나와 본격적으로 뒷골목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유치원이 끝났는지 같은 가방을 멘 아이들이 쪼르르 골목길을 뛰어 내려갑니다.
뛰지 말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오지만 아이들 귀에는 안 들리나 봅니다.
날씨가 좋지 못해 이날의 골목길은 스산했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가게는 심지어 리모델링 중이던 군요.
우연히 농구골대를 만났습니다.
클래식한 양장점과 세탁소가 멋진 가게.
열심히 다림질을 하던 세탁소 사장님은 카메라와 눈이 마주치자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이셨지만
이내 곧 장인의 손길로 작업을 이어나갔습니다.
골목을 따라 내려가다 눈에 띈 D&DEPARTMENT에 들렀습니다.
D&D의 제품은 리싸이클 제품과 지역 특산품, 젊은 디자이너 브랜드 등으로 크게 나뉩니다.
이들이 매장에 들이는 물건은 ‘알기, 사용하기, 되사기, 고치기, 지속하기’의 다섯 가지 원칙을 기준으로 합니다.
각 제품마다의 스토리라인이 뚜렷하고 적절한 인포그라픽으로 제품을 어필하는 점이 이곳만의 매력입니다.
특히 부산에 계신 60대 할아버지 세분이 제작하는 수제 만년필이, 동행했던 어시스턴트 친구의 발길을 붙들었습니다.
아피스 F-212P만년필. 우연한 기회에 들르게 된다면 만년필 장인들의 섬세한 작품을 살펴보시길.
천천히 가게를 둘러본 후 소스통을 하나씩 사 들고서야 문을 나섰습니다.
다시 골목을 오르던 중 현란한 경고문을 만났습니다. 그제야 이곳이 이태원이었음을 한 번 더 실감합니다.
에디터가 마주한 가게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입니다.
좁지만 따뜻함이 감도는 내부는 손님이 하나 둘 조금씩, 끊이지 않고 드나듭니다.
따뜻한 사과차 한 잔은 종일 돌아다니느라 차가워진 손을 녹여내기에 충분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순간, 생각하며 걷고 싶은 때 천천히 골목골목을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언제나 사람들에 둘러싸일 필요는 없지 않나요, 불필요한 만남을 만들어 불필요한 대화를 나누는 일보다
가끔은 이렇게 걷는 혼자만의 산책으로 오롯한 나의 시간을 채우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걷고, 걷고 또 걸어보세요. 마지막 골목에 다다라 한숨 깊게 들이쉬고 내쉬면 어딘가 모르게 후련한 기분이 들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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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HYUNIM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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