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부르고뉴의 가을 - 부르고뉴의 한국인 와인메이커 ‘루뒤몽(LOUDUMONT)’ 박재화씨를 만나고
2016년 부르고뉴의 가을 - 부르고뉴의 한국인 와인메이커 ‘루뒤몽(LOUDUMONT)’ 박재화씨를 만나고
2016년 부르고뉴는 처참하다. 와이너리 오너들은 만나면 인사가 되어버린 생산량 감소를 걱정했다. 봄부터 시작된 악재로 단련된 덕(?)인지 표정은 담담했지만 그들이 내뱉는 생산량은 귀를 의심하게 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 적게는 50프로 많게는 90프로 가량 생산량을 잃어버렸다. 다시 말해 전년 대비 생산량이 반 이상 줄어들었다는 것인데 대부분 와이너리의 숙성실에는 오크통의 수가 현저하게 줄었다. 생산량 감소로 인한 파장 또한 커졌다. 현재 네고시앙 회사에서는 포도를 사기 어려워졌고 비오디나믹 와이너리에서는 유기농을 포기할 위기까지 겪었다. 이제 현실을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하여야 하는데 예상치 못한 재해이니만큼 정형화된 매뉴얼은 없었다. 최대한 수확을 늦춰 남은 포도의 질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거나 아뺄라시옹을 포기 하는 것이다. 아니면 빌라쥬 와인을 만들 생산량이 부족하다 보니 레드를 포기하고 대신 로제를 만들기로 결정한 생산자도 있었다. 이처럼 자연재해가 심각했던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 처음 겪는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건 와인의 품질은 평년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산량이 적은 반면 품질은 유지된다면 와인 값이 오를 것이라는 예견들이 벌써부터 오가고 있다.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반가울 리 없는 흉작을 맞은 2016년 가을 이런 시기에 부르고뉴를 방문하고 현지 한국인 생산업자를 만나는 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와인생산자이자 중간거래업자인 루뒤몽의 박재화 사장을 만났다. 그녀와 일본인 남편 꼬지 나카다는 국내에 꽤 알려진 와인메이커이다. 현지에서 와인 마케팅을 전공한 이들 부부는 학업을 마친 후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루뒤몽이라는 네고시앙 회사를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 외국인이 정착하기 어려운 풍토였던 2000년 당시는 분명 모험이었다. 그사이 부르고뉴는 매력적인 와인산지로 급부상하며 국내를 비롯한 아시아 시장의 중심지로 관심을 받았고 루뒤몽은 튼실한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다음은 루뒤몽 박재화 사장과 일문일답이다.
<루뒤몽의 박재화 사장 부부와 함께>
질문: 루뒤몽이 사업을 시작한 지 벌써 16년이 되어간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을 겪었을 텐데 가장 큰 변화를 꼽는다면 포도를 사서 와인을 만드는 네고시앙 회사에서 포도밭을 구매해 직접 재배 양조하는 도멘을 운영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포도밭을 구매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답변: 2008년 포도값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포도를 공급받아야 하는 네고시앙 회사의 환경이 열악해졌다. 포도밭을 직접 가지고 있어야겠다는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부르고뉴 막사네 마을에 있는 밭을 사면서 일을 저지르게 되었다. 프랑스의 법적 은퇴연령이 72살인데 그때까지 계속 포도밭을 확장할 계획이다. 직접 흙을 만지며 농사를 짓는 삶의 방식 또한 내 스타일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했던 것 같다.
질문: 부르고뉴에는 외국인이 정착하기 쉬운 지역은 아니라고 본다. 외국인으로서 사업하기 어떤가?
답변: 외국인이라는 걸 의식하며 살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밭을 구입하는 경우에도 (공급대비 수요가 많기 때문에) 포도밭 관리 위원회가 운영되고 이 곳에서 몇 가지 기준에 따른 구매 우선권을 책정해준다. 예를 들면 해당 밭의 소작농 우선, 나이가 어린순, 이웃거주민 우선 등등이다. 얼마 전 좋은 밭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결국 불발되었다. 그 때 외국인이라는 피해의식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질문: 그 동안 부르고뉴지역을 방문하면서 많은 변화를 느낀다. 이십 년 전에 비하면 와이너리들이 돈을 많이 벌었다는 느낌도 들고(웃음) 부르고뉴의 변화를 체감하나?
답변: 몇 가지 변화들을 꼽을 수 있는 데 가장 큰 변화는 세대교체이다. 처음 시작할 당시 같이 활동했던 와인메이커들은 대부분 돌아가시거나 은퇴하셨으며 그의 2세대들이 가업을 이어 나가고 있다. 안느그로나 엠마뉴엘 루제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엠마뉴엘 루제나 안느 그로는 이제 서서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 위해 2세대들에게 승계수업을 시키고 있다. 이제 그들의 평균 나이가 25-26세이다. 세대가 바뀌는 만큼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일지 않을까? 부르고뉴의 새 장이 열리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 하나는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기계가 좋아지고 양조장 시설들이 현대화되었다. 따라서 정교한 기계와 테크닉의 영향으로 빈티지의 영향력은상대적으로 미미해지고 품질은 좋아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부르고뉴 와이너리의 기업화다. 부르고뉴에서는 본 로마네 1헥타아르만 있어도 먹고 살만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부르고뉴 자체가 워낙 면적이 좁기 때문에 사업을 확장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때문에 부르고뉴의 와이너리들이 쥐라, 보졸레, 남불지역 등으로 포도밭을 구입하고 현지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기업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질문: 마지막으로 소믈리에를 비롯해 부르고뉴를 다녀간 정말 많은 이들이 루뒤몽을 거쳐갔다. 부르고뉴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당부할 점은 없나?
답변: 부부나 그룹단위로 많이 방문한다. 좋은 현상이다. 다만 당부할 점은 쓸데없는 정보를 만들어내지는 말아달라는 것이다. 사실 도멘에서 방문객들과 약속을 잡을 땐 (그들은 판매에 어려움을 겪지 않기 때문에) 와인을 팔기 위한 목적보다는 즐기기 위한 자리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크다. 따라서 어렵게 잡은 약속을 잘 활용했으면 한다. 한국에 돌아가서 어떤 도멘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느니, 생산량이 늘어났다느니, 맛이 변했다느니 하는 뒷말을 늘어놓기 보다는 와인메이커와의 만남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 방문객으로서의 자세이기도 하다.
박재화 사장과 인터뷰를 마치고 향한 곳은 샤비니레본에 자리한 도멘 시몬비즈였다. 치사 씨는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오래간만에 본다는 박재화 사장과 다음 날 일정을 논의하였다. 패트릭 비즈의 기일이 돌아왔다. 3년 전 가을 도멘 시몬 비즈의 오너 패트릭 비즈(Patrick Bize)는 딸을 등교시켜주던 차 안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세상을 떠났다. 2013년 당시 흉작에 대한 스트레스가 결국 심장에 무리를 준 것이다.
시몬비즈를 나오는 길 포도밭은 가을빛으로 물든 포도 잎들이 아직 빼곡히 맺혀 있었다. 포도밭을 걷는 내내 와인은 결국 농부의 노고로 이뤄진 농작물의 하나였음을 깨닫고 자연의 숙연함이 느껴졌다.
WRITTEN BY 백은주 (Eunjoo Baik)
(경희대학교 관광대학원 와인, 워터, 티 소믈리에 전문가 과정 및 부산가톨릭대학교 와인 소믈리에 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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