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기다림이다(2)
와인은 기다림이다(2)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의 가르침을 인용해 볼게요. 어린 왕자에게 자신을 길들여달라고 부탁하는, 그래서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되자고 제안하는 여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우가 말하기를,
“이를 테면,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네가 올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4시가 되면 흥분해서 들뜨고 설렐 거야. 그렇게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하지만 네가 아무 때나 오면 나는 언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르잖아. 의식이 필요하거든.”
그러자 어린 왕자가 묻기를,
“의식이 뭐야?”
“그것 역시 너무 자주 잊혀지는 거야. 그건 어느 하루를 다른 날과 다르게 만들고, 어느 한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드는 거지. 예를 들면 내가 아는 사냥꾼들도 의식을 치르고 있지. 그들은 목요일이면 마을의 아가씨들과 춤을 추지. 그래서 목요일은 신나는 날이야! 그날이 되면 나는 포도밭까지 산책을 가지. 만일 사냥꾼들이 아무 날이나 춤을 춘다면, 모든 날이 다 똑같게 되어버리잖아. 그러면 나는 하루도 휴일을 갖지 못하게 될 거야.”
여우의 말에 의하면 가치 있는 존재와의 만남은 행복한 기다림을 전제로 하고, 이 행복한 기다림은 ’어느 하루를 다른 날과 다르게 만들고, 어느 한 시간을 다른 시간들과 다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기다림이, 아니 가치 있는 존재와의 만남이 매일 반복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휴일을 갖기를 원하는 거죠.
금년에 읽었던 티에리 타옹(Thierry Tahon)의 저서 <와인의 철학, Petitie Philosophie de L’Amateur de Vin>에서 하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티에리 타옹은 유럽인치고는 비교적 늦게 와인을 접하게 되었는데, 와인을 처음 마신 경험을 “하나의 음료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넘어, 재탄생의 상징, 아니 부활의 상징”, “일종의 철학적 봄의 출발을, 불가해한 금욕주의에서 구원된 쾌락으로의 전환을 상징”한다고 표현하며, “와인애호가로서 여러 가지 자극 앞에 기꺼이 무릎을 꿇는 하나의 육체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와인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와인을 매일 마시는 것에 대해서 철저히 반대합니다. 와인에 중독되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고, 와인을 가장 맛있게 마실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결국 목표는 가능한 한 최고의 시음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찾는 것이다. 욕망을 연기시키는 것, 욕망을 지연시키고 기다리게 하고, 욕망이 군침을 흘릴 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쾌락주의적 전략이지, 아무리 해도 고쳐지지 않는 금욕주의의 유물이 결코 아니다.”
“모든 욕망은 그 속에 어떤 결핍의 감정, 어떤 기다림, 어떤 불안, 결국 어떤 고통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와인을 마시려고 하는 욕망과 와인을 마심으로 인해 얻는 쾌락은 기다림을 전제로 한다며, 날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와인을 마신다고 해도 이것은 지나친 쾌락이며, “지나친 쾌락은 결국 욕망을 죽이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2010년 6월 독일 최북단 와인산지인 아르(Ahr)에서 열린 포도꽃 축제에서 찍은 사진>
와인을 마시는 빈도나 한 번 와인을 마실 때 어느 정도의 양을 마시면 좋은가의 문제는 ‘와인과 건강’이라는 테마와 ‘Wine in Moderation’이라는 캠페인에서 자주 거론됩니다. 티에리 타옹이 <와인의 철학>에서 철학자의 관점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독특해서 꼭 소개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반복해서 읽었던 <어린 왕자> 속 여우의 이야기도 연관해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자주 갈등을 합니다. “오늘은 와인이라는 욕망에 무릎을 꿇어볼까?”라고요. 분명한 것은 와인애호가로서 아주 특별한 와인이 아니더라도 호기심을 갖고 그 와인 병을 오픈하는 순간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순간이 책을 읽으면서, 글을 쓰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음식과 매칭하면서 혹은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이루어질 때 행복합니다. 이러한 다양성과 와인 자체의 다양성 때문에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말하는 기다림에 대한 정의가 더욱 가슴에 와 닿습니다.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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