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앙 공장장 출신 소믈리에 ‘김준철’의 와인이야기 ‘스물세 번째’
마주앙 공장장 출신 소믈리에 ‘김준철’의 와인이야기 ‘스물세 번째’
와인 맛에서 떼루아가 중요한가, 품종이 중요한가?
와인을 자주 마시고 관심을 가져보면 와인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서 떼루아라고 하는 이상한 말을 많이 듣게 된다. 떼루아라는 말을 듣고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물어보면 떼루아는 토양이고 포도 재배에 흙이 중요하다는 정도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도 생각해보면 포도 재배에서 흙이 중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떼루아가 상당히 중요한 요소라고 이해는 된다. 와인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와인의 맛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떼루아라고 굳은 신념을 가진 분들을 많이 보게 된다. 여러분도 떼루아가 중요하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있었을 것이다. 떼루아의 중요성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떼루아를 좀 더 확실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떼루아(terroir)의 사전적인 의미는 토지, 산지 등이다. 우리가 잘 아는 떼루아인 토양은 포도 재배에서 가장 중요하다. 포도나무 주위 흙의 성분을 뿌리가 흡수하고 이 때문에 포도의 조성이 달라지고 와인의 맛이 달라진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조약돌이 많은 토질에서 재배된 포도는 바디감과 타닌이 많은 와인을 생산하고, 점토질이 많은 토질은 신맛이 많고 복합적인 맛의 와인을 생산하며, 석회질이 많은 토질에서는 산도가 있고 둥근 맛의 와인을 생산한다. 이와 같이 다른 자연 환경보다 토양이 와인의 맛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포도 재배에서 떼루아는 단순히 토지, 흙 만을 뜻하지 않고 포도 재배에 영향을 주는 모든 자연 환경을 말한다. 즉 기후, 토양, 포도밭의 방향, 포도밭의 경사도, 포도밭을 둘러싸고 있는 숲이나 강, 호수, 주변 동식물 등 포도 재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떼루아라고 한다. 또 넓은 의미로의 떼루아는 지연 환경만을 말하지 않는다. 포도 재배에 영향을 주고 와인의 품질에 영향을 주는 여러 가지 인위적인 환경도 떼루아에 포함한다. 이 인위적인 환경에는 포도의 품종 선택, 포도 재배 방법, 포도 수확량의 조절, 병충해 방제 방법, 포도 수확 시기와 수확 방법, 와인 양조 방법 등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이와 같이 떼루아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렇게 떼루아의 의미가 넓어지다 보니 와인의 품질과 맛을 이야기할 때에 떼루아가 전부인 양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물론 와인의 품질과 와인의 맛을 이야기할 때에 떼루아가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떼루아만이 와인의 맛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와인의 맛과 특징을 이야기할 때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포도의 품종이다. 포도의 품종은 모든 와인 맛과 특징을 결정하는 기본적인 요소이다. 예를 들면 까베르네 소비뇽은 원산지를 프랑스 보르도 등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보르도에서 재배된 까베르네 소비뇽의 독특한 향과 맛이 역사적으로 또 전통적으로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그런데 신대륙이 발견되면서 까베르네 소비뇽이 전 세계에 퍼져서 재배되었고 와인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된 까베르네 소비뇽은 보르도에서 생산된 와인과 향과 맛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크게 보면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역이 달라서 떼루아가 다르더라도 와인의 향과 맛은 비슷하다. 미국 나파 밸리에서 생산된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과 보르도에서 생산된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은 떼루아는 많이 다르지만 맛과 향이 비슷하다. 이와 같이 자연 환경이 달라도 품종의 중요한 특징은 크게 변하지 않고 유지된다. 이것은 포도의 DNA이다.
포도는 품종 별로 각각 다른 DNA를 가지고 있어서 품종 별로 다른 맛과 향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품종적인 특징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 재배되더라도 비슷한 맛과 향을 가진다. 다만 각각 다른 지역의 자연환경 차이에서 오는 약간의 향과 맛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사람도 백인, 흑인, 황인종이 있고 이 인종들은 다른 지역에 가서 살더라도 백인, 흑인, 황인종이다. 백인이 아프리카에 가서 살아도 백인이고 흑인이 미국에 가서 살더라도 흑인이다. 다만 사는 곳의 문화나 전통 또 의식주의 차이에 따라서 겉으로 드러나는 외관 등은 약간 달라질 수 있다. 인간이 어디에 살던지 인종이 바뀌지 않듯이 포도의 품종도 어디에서 재배되어도 특징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와인의 맛을 본다는 것은 품종적인 맛의 특징을 알아내고 나아가서 다른 나라 다른 지역에서 재배된 포도들의 떼루아가 다른 데서 오는 섬세한 맛의 차이를 찾아내고 이들 차이점을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역별로 품종을 블랜딩하는 경우에도 이런 차이를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나파 밸리에서 재배된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은 프랑스의 까베르네 소비뇽과는 맛이 조금 다른 것은 당연하고 또 캘리포니아 까베르네 소비뇽을 하나의 특징을 가진 와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호주, 칠레 등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까베르네 소비뇽의 맛이 프랑스와는 다르지만 하나의 특징이 있는 와인으로 인정을 하고 그 맛을 즐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메를로나 피노 누아, 샤르도네, 리슬링 등의 품종 와인들도 같은 맛의 차이가 있다.
와인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것은 첫째 포도의 품종이고, 둘째 떼루아라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여러분도 와인의 맛을 잘 알기를 원한다면 기본적으로 품종 별 와인 맛의 특징을 알도록 노력하고 그 다음 떼루아가 다른 데서 오는 맛의 차이점을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WRITTEN BY 마주앙 공장장 출신/소믈리에 김준철
등록된 코멘트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