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와인의 역사(2)

2021.05.03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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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앙 공장장 출신 소믈리에 ‘김준철’의 와인이야기/
‘열네 번째’

우리나라 와인의 역사(2)



2.2. 후반기(너무나 짧게 끝나버린 국산 와인의 전성기)
1970년대 중반 당시 양식이 부족하여 보리 고개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 때에 곡류로 막걸리와 소주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박정희 대통령이 곡류가 아닌 것으로 술을 만들어서 국민들이 마시도록 하라는 지시를 하였고 이에 따라 나온 정책이 바로 “국민주개발정책”이었다. 이 정책의 요지는 토질이 비옥한 평지에는 곡류를 심어서 양식으로 사용하고 곡류가 아닌 것으로 술을 만드는 것인데, 찾아낸 것이 바로 와인이었다. 포도가 평지가 아닌 야산이나 하천부지 등의 척박한 땅에서 자라면 더 좋은 와인이 생산되므로 국민주로 안성맞춤인 것이었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회사가 동양맥주㈜, 해태주조㈜, 백화양조㈜이었다.

1973년을 전후로 동양맥주㈜는 경북 청하, 흥해, 경남 밀양에 포도원 약 사십 만평을 조성하였고, 해태도 1974년 전남 나주에 100만평의 포도원을 조성하였다. 백화도 전북 김제에 포도원 10만평을 조성하여서 와인을 생산하였다. 동양맥주㈜는 1976년 독일에서 최신 설비를 도입하여 포도주 공장을 건설하고 1977년부터 “마주앙”을 생산하여서 와인 시장을 완전히 석권하였다. 해태에서도 기존 시설에서 “노블 와인”과 꼬냑인 마패 브랜디 등을 생산하였고 백화에서도 와인을 생산하였으나 주로 기타 제재주를 생산하였다. 

이후에 1981년에는 진로가 경남 산청에 포도원을 조성하고 “샤또 몽브르”와인을 생산하였다. 대구에서 “애플 와인 파라다이스”를 생산하던 파라다이스㈜도 충남 보령에 포도밭을 조성하고 “올림피아”를 생산하였고, 대구의 금복주는 태양주조를 인수하여 “두리랑”이란 와인을 생산하였다. 1987년 대선주조에서 경남 진동에 포도원을 조성하여 국내에서 최초로 제대로 된 스파클링 와인인 “그랑주아”를 생산하였다. 이들 국산 와인들은 초기의 판매 부진을 딛고 1986 아시안 게임과 1988 올림픽까지 판매가 급성장하였고 특히 시장을 거의 70%를 점유하던 “마주앙” 공장은 증설을 거듭하였다. 이때가 국산 와인의 전성기였다. 
 


3. 한국 와인의 현대사 
와인의 수입 개방으로 인한 수입 와인의 시장 석권으로 국산 와인이 몰락하는 시기로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의 경제가 급성장함에 따라 국민 소득 증대와 국내외 관광이 늘어나면서 와인의 소비가 상당히 증가하고 있었으나 정부에서 외국에서 와인 수입을 금지하는 정책으로 국산 와인들이 시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국가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었으나 가난한 시절을 살아온 우리나라는 수입은 극도로 억제하고 돈 되는 것은 모두 내다 수출하는 등 수출의 초과가 계속되었다. 정부의 수입 억제 정책에 대한 외국의 수입 압력이 거세어지게 되었고 외국의 압력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정부가 수입을 단계적으로 자유화해 나갔다.

맥주나 위스키에 비하면 시장이 아주 미미한 와인을 가장 먼저 수입 자유화하기로 결정하고 1987년에 수입 자유화를 선언하게 되었다. 1987년부터 수입 면허를 제한적으로 발급하다가 1990년부터는 제한 없이 수입 면허를 발급하여 많은 수입회사들이 설립되고 와인도 많이 수입되기 시작하였다. 1990년경부터 와인 수입량이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여서 국내 와인 시장을 수입 와인이 서서히 점령하게 되었다. 그 때까지 국산 와인만 열심히 마시던 와인 소비자들이 외국 특히 유럽 와인을 선호하게 되면서 수입 와인은 소비가 늘어나고 그만큼 국산 와인은 소비가 감소하게 되었다.

“마주앙” 공장에서 1990년 와인을 100만 상자(600만병)를 생산하였으나 해마다 출고량이 줄어들어서 필자가 “마주앙” 공장을 떠났던 1996년에는 거의 절반으로 출고량이 줄어들었다. 2000년에 들어서서는 순수 국산 와인은 국내에서 거의 사라져버렸다. 지금도 100% 국산 양조용 포도로 만든 국산와인은 “마주앙 미사주”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1989년부터 국산 와인의 판매가 감소하였고 따라서 공장의 와인 재고는 늘어나게 되었다. 공장의 재고가 늘어나니 빈 탱크가 없어서 다음해 가을, 포도를 수확해서 가지고 오는 계약 재배 농가들의 포도를 받아줄 수가 없게 되었다. 며칠씩 납품을 못하고 공장에서 대기하던 농민들의 불만은 폭발하게 되었다. 와인 수입량이 증가할수록 농민들의 피해가 많아질 것을 파악한 정부에서는 계약 재배를 장려하던 정책에서 보상을 해주면서 포도원을 폐원하는 정책으로 바꾸었다. 거의 모든 계약 재배 농가들이 포도원을 폐원해버렸고 또 국산 와인을 생산하던 각 회사들도 신속하게 직영 포도 농장들을 폐원해버렸다. 지금은 국산 와인을 만들고 싶어도 양조용 포도가 없어서 와인을 만들 수가 없다.

이렇게 국산 와인이 없어지게 된 참담한 결과를 맞게 된 것은 크게 보면 냉엄한 국제 사회의 무한 경쟁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 국산 와인의 몰락 이유는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국산 와인의 전성기 동안 국제 와인 시장에 대해서 파악을 게을리하였다. 즉 외국 와인 생산국에서는 한국의 와인 시장을 개방시키려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었지만 국산 와인의 판매에만 주력하였지 수입 와인에 대해서 대비가 없었다.

둘째, 국산 와인을 생산하는 회사들이 전부 기존의 소주, 맥주 등의 주류 회사들이라 와인 판매 전략이 없었다. 와인은 대량 생산하는 주류와는 시장이 완전히 다른데 국산 와인 생산 회사들은 이점을 간과해서 수백 년 이상 와인 판매에 노하우가 있는 외국 와인 회사들의 전략에는 게임이 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마주앙”을 생산한 오비맥주에서는 영업 사원들이 거래처에 가더라도 모두 맥주 판매만 신경을 썼고 매출도 얼마 안 되는 “마주앙”을 영업하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또 맥주는 잘 알지 못해도 팔 수 있었지만 와인은 잘 모르니 설명할 수도 없었다. 소비자들이 소주와 맥주는 몰라서 못 마시겠다는 사람이 없다. 또 맥주와 소주를 공부하고 마시겠다는 바보가 없다. 맥주와 소주는 소비자들이 알아서 구입해가므로 파는 데에 어려움이 없다. 와인은 소품종을 대량 생산, 판매하는 다른 주류들과는 영업 정책이 다른 것을 이해하지 못하여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한 결과이다. 대기업에서 판매하는 국산 와인으로 수입 와인을 쉽게 대항할 수 있을 것으로 오판을 한 것이다.

셋째, 외국 수입 와인에 대비하여 국산 와인의 품질을 향상하려는 노력이 없었다. 와인 양조에 사용되는 양조용 포도의 종류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실제로 와인 양조에 사용되는 품종은 350 종쯤 된다. 그러나 이중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하여 세계 와인 시장에서 주로 팔리는 양조용 포도는 그 종류가 많지 않다. 세계 각국에서는 이 유명한 포도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와인 양조에 사용한 품종은 “마주앙”에서 사용했던 “리슬링”과 “그랑주아”에서 사용한 샤르도네를 제외하면 사이벨9110, MBA 등의 품종들이고 그 이외에는 일부 회사에서 사용했던 다노렛, 머스캣 오토넬, 샤스라, 네오 머스캣 등으로 와인 애호가들이 잘 모르는 품종들이었다. 당연히 외국의 유명한 품종들로 와인을 만들어 수입 와인과 경쟁했어야 했다.

넷째, 기후가 와인 주요 생산국들과는 달라서 수입 와인과의 품질 경쟁하기가 쉽지는 않았으나 한국적인 기후, 토양에서 재배된 포도로 만든 와인이 가지는 독특한 특징이 있는데 와인 문화에서는 이런 특징을 인정을 해주고 있다. 프랑스 와인과 다른 이태리 와인이 팔리고 유럽 와인과 다른 미국 와인을 소비자들이 마시며 나라와 지역별로 다른 기후와 토질에서 생산된 각각 다른 특징을 가진 와인을 인정을 해주고 있으므로 한국적인 와인도 당연히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기후적인 어려움은 노력하면 개선이 가능한데 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다섯째, 정말 아쉬운 부분이다. 국산 와인을 생산하는 회사들이 와인을 만들어 파는 장사만 하였지 와인 문화를 이해하는 철학이 없었다. 그래서 와인의 수입이 자유화되니 수입 와인과 경쟁을 하려는 생각보다 너도나도 와인을 수입하여 판매를 하는 데에 주력하다 보니 국내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일은 뒷전이었다. 유럽에서 생산된 와인을 선호하는 국내 와인 소비자들은 당연히 수입 와인을 많이 마시게 되었고 국산 와인의 판매량은 급격히 감소하여 없어지게 되었다. 국산 와인을 생산하여 와인 애호가들을 즐겁게 하던 국산 와인 생산 회사들은 지금은 거의 모두가 주인이 바뀌었다. “마주앙”은 동양맥주에서 롯데주류로, “노블 와인”의 해태주조는 국순당 L&B로 넘어갔고, 백화는 두산으로 인수되었다가 롯데주류로 회사가 바뀌었다. “샤또 몽브르”의 진로는 하이트 진로로, “올림피아”를 생산하던 파라다이스는 수석농산으로 바뀌었다.                       



4. 한국 와인 시장의 르네상스
88 올림픽을 전후로 와인의 수입이 자유화된 이후 국산 와인이 거의 없어지고 수입 와인이 시장을 점령한 후에는 그나마 국산 와인 메이커들이 해오던 신문이나 TV에서의 광고 선전이 없어지면서 국내 와인 시장을 이끌어나갈 주체가 없이 소비자들에 따라서 움직이는 자생적인 시장으로 변하였다. 시장을 이끌어나가는 주체가 없으니 아무리 수입 와인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끈다고 하더라도 와인의 문화가 생소한 한국에서 와인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기는 어려워서 국산 와인이 줄어든 만큼을 수입 와인이 채우는 정도에서 조금 더 성장하는 저성장의 시대에 들어섰다.

1990년 기준으로 보면 국내 와인의 시장은 대략 1,500만 병 정도이었는데 24년이 지난 지금 대략 4,000만병의 시장으로 성장하였다. 얼른 보면 많이 성장한 것 같으나 24년 동안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은 엄청나게 늘어나서 1990년 6,293 달러에서 2012년 23,052 달러로 늘어났다. 국민소득이 약 4배로 늘어나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으나 와인의 소비량은 아직도 연간 국민 1인당 와인을 1병도 못 마시는 수준으로 적다. 일본은 국민 1인당 약 3병, 중국은 13억 인구가 연간 1인당 1 병 이상을 마신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와인 소비량이 결코 많은 것은 아니다. 수입 와인의 소비 증가가 되고 있지만 생각하는 것만큼 많이 늘어나지 않고 있다. 와인 애호가들이 와인의 소비가 엄청나게 증가했다고 오해하게 된 것은 매스컴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2000년에 들어서서 인터넷의 발달과 핸드폰의 발전으로 개인간의 교류가 훨씬 원활하게 되었기 때문에 특히 동호인들의 모임이 훨씬 활성화되었다고 생각된다. 과거에는 일부 와인 애호가들이 어렵게 연락을 해서 모임을 하곤 했으나 이제는 쉽게 인터넷과 핸드폰으로 훨씬 효과적으로 다수의 회원이 연락하고 모임을 가질 수가 있게 되었다. 수 많은 와인 동호인 모임이 생겼고 회원이 4~5,000명 되는 큰 모임도 있었다. 인터넷과 핸드폰의 도움으로 한국에서 와인은 대중화의 길로 들어서는 시기였다. 이 때가 국산 와인의 전성기 다음에 온 와인의 르네상스 라고 말할 수 있다.
  
5.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2008년 미국 발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첫 번째 한국 와인의 르네상스는 막을 내리고 언제 그랬었나 하는 듯이 지금의 와인 시장은 조용하고 와인의 소비는 정체되고 있다. 그 많든 와인동호인들의 모임도 지금은 거의가 없어져 버렸다. 2010년 이후에는 페이스북, 스마트 폰, 카톡이 새롭게 등장하여서 새로운 정보 전달의 사회로 변화해 가고 있다. 이런 새로운 SNS 도구로 한국의 와인 시장에 또 하나의 새로운 바람이 불어서 다시 한번 와인의 르네상스가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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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마주앙 공장장 출신/ 소믈리에 김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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