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술이 아니라고요
/마주앙 공장장 출신 소믈리에 ‘김준철’의 와인이야기/
‘열여섯 번째’
와인은 술이 아니라고요
1960년대를 회상해보면 그 당시에는 어른들이 마시던 술이 주로 막걸리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농부들이 일하다가 쉴 때에 막걸리를 쭉 마시면 배가 불룩 나오고 그 뱃심으로 일을 하곤 하였고 샐러리맨들도 파전이나 빈대떡을 안주 삼아서 들이키던 시절이었다. 그 다음에 살기가 조금 좋아지니 마셨던 것이 소주가 아니었던가? 1980년대에는 맥주를 많이 마셨던 시절이었다. 경제개발 시기를 지나면서 일이 잘 풀리도록 기름치는 일이 많게 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에는 맥주로 접대하는 경우 배가 너무 불러서 힘이 들므로 적게 마시고 상대를 빨리 취하도록 할 수 있는 위스키가 등장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생기면서 정부에서 접대비를 줄이라는 압력과 밤을 지새우면서 접대하는 일은 못하겠다는 의식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위스키의 소비도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글로벌 시대에 살게 되면서 국내에서 생산된 우리 술뿐만 아니라 많은 외국의 술도 마시고 있다.
여러 가지 술들 중에서 왜 와인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한번쯤 그 이유를 알아보아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전통 주류들도 몇 종류 있으나 소비량이 적고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으므로 대중주인 막걸리, 소주, 맥주, 위스키 등과 와인을 알아보기로 한다.
한 마디로 “이런 모든 주류들과 와인은 완전히 다른 술이다.” 이런 주류들은 곡주이고 와인은 과실주이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술인 것이다. 와인은 원료인 포도 알이 터지면 일체 다른 것을 첨가하거나 가공을 하지 않아도 상온에서 발효하여 술이 된다. 이에 비하여 곡주들은 그냥 술이 되는 것이 아니다. 곡류들은 액체가 아니다. 따라서 물도 많이 넣고 또 가공을 해야만 술이 된다.
곡류 성분 중에서 술이 되는 성분은 전분이다. 이 전분은 우리가 먹는 쌀이나 보리쌀, 밀가루 등의 주성분이다. 탄수화물인 전분은 아주 큰 분자량을 가지고 있고 바로 술이 되지를 못한다. 술을 만들려면 전분을 일단 발효가 가능한 맥아당으로 만들어주어야 된다. 전분을 맥아당으로 만드는 것은 효소가 한다. 효소를 첨가하고 온도를 적당하게 해주면 맥아당이 된다. 이렇게 맥아당이 된 다음에 효모를 첨가하여 발효하면 알코올과 탄산가스가 생성되는 데 이것이 술이다.
막걸리를 만드는 방법을 보면 쌀이나 밀가루에 물을 넣고 여기에다 누룩을 첨가하면 먼저 누룩 속에 있는 효소들이 쌀과 밀가루의 전분을 맥아당으로 만들고 그 다음에 누룩 속에 있는 효모가 맥아당을 알코올로 변화시켜서 막걸리를 만든다. 병 막걸리는 효모를 죽이기 위하여서 병에 담은 막걸리를 섭씨 65도 정도로 20-30분 가열해서 유지해주면 저온 살균이 된다. 즉 막걸리는 물을 많이 넣고 또 누룩을 첨가해야 한다.
소주를 만드는 법을 보면 쌀 등은 고구마나 타피요가 같은 식물의 전분 물질에 물을 넣고 효소를 첨가하여 온도를 올려서 맥아당을 만들고 이 맥아당에 효모를 넣고 발효하여서 알코올을 만든다. 그러나 이 알코올은 도수가 너무 낮으므로 이를 증류하여서 알코올이 90% 정도되는 주정을 만들고 이 주정을 다시 물로 희석하여서 소주를 만든다. 즉 소주도 물을 많이 넣고 또 끓여서 증류를 하는 공정을 거쳐야 한다.
맥주를 만드는 법을 보면 보리에 물을 첨가하여 싹 틔워서 맥아를 만들고 이 맥아는 효소가 많이 들어있다. 맥주의 원료가 되는 보리와 옥수수 전분 등에 맥아와 물을 첨가하고 온도를 적당히 올려주면 맥아 속 효소의 작용으로 달콤한 식혜가 된다. 이 식혜에 호프의 꽃인 홉스를 넣고 끓여주면 쌉쌀한 맛을 가진 식혜가 되며, 이 식혜에 효모를 첨가해서 발효하면 알코올과 탄산가스가 생기는데, 이 탄산가스가 술 속에 포화되도록 해 놓은 것이 맥주이다. 즉 맥주도 물을 많이 넣고 끓이는 공정을 거친다.
위스키를 만드는 방법을 보면 쉽게 말해서 위스키는 맥주를 증류해서 만든다. 맥주는 알코올이 4% 정도로 낮다. 그래서 이 맥주를 증류하여서 알코올이 60% 정도 되는 주정을 얻고 그 다음에 알코올이 45% 정도가 되도록 물을 첨가한다. 이 위스키는 알코올을 물에 희석한 것으로 맛이 없다. 이런 위스키를 오크통에 넣어서 오크통의 칼라와 향과 맛이 녹아 들도록 하여 숙성한 것이 위스키이다. 우리가 즐기는 위스키의 향과 칼라와 맛은 대체로 오크통에서 온 것이다. 즉 위스키도 맥주를 다시 끓이는 공정을 거친다.
이와 같이 다른 술들은 물을 많이 넣는다. 예로부터 물맛이 좋은 곳에서 맛 좋은 술이 생산된다는 말이 있다. 또 끓이는 공정이 있다. 이 공정을 거치면서 식품의 신선한 성분들이 많이 파괴될 수 밖에 없다. 병 막걸리의 경우 끓이지는 않으나 65도 전후로 가열해서 살균을 한다. 생 막걸리는 살균은 하지 않기 때문에 수 많은 종류의 미생물들도 들어 있으며 또 오래 보관하지 못한다.
그러나 와인은 물도 효소도 효모도 첨가할 필요가 없다. 포도의 주스 자체가 바로 발효할 수 있는 포도당이고 또 포도 껍질 외부에는 효모가 많이 붙어있어서 이 효모가 바로 발효를 하여 와인이 된다. 와인은 산도와 PH와 알코올 때문에 효모 이외의 미생물은 거의가 살 수 없기 때문에 가열하거나 살균할 필요가 없다. 와인 한 병을 만드는 데는 포도가 약 1 kg이 사용된다. 와인 한 병을 마시는 것은 포도 1 kg을 먹는 것과 거의 같다. 단지 포도에 있는 포도당이 와인에는 알코올로 변한 것이 다를 뿐이다. 와인은 물을 첨가하지 않고, 누룩도 첨가하지 않고, 끓이지 않기 때문에 살아있는 천연 식품이다. 이 때문에 필자가 와인은 다른 술과는 다르고 와인은 그냥 와인이라고 말하는 것에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필자는 와인 예찬론자이기 때문에 와인을 좋게 이야기한다. 물론 다른 술들도 좋다. 많은 사람들이 막걸리가 좋다, 소주가 좋다, 맥주나 위스키가 좋다고 말하고 있다. 와인은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소비량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에 필자라도 와인이 좋다고 주장해야 와인의 대중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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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마주앙 공장장 출신/ 소믈리에 김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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