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온도
마주앙 공장장 출신 소믈리에 ‘김준철’의 와인이야기
‘열일곱 번째'
와인의 온도
“와인은 종류 별로 마시는 온도가 다르다고?”, “뭐, 대충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미지근하게 마시면 되는 거 아냐?”, “원 빌어먹을 와인은 뭐가 이렇게 복잡해?” 많은 분들이 이렇게 불평하는 것을 들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와인 하면 어렵고 복잡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데 여기다가 마시는 온도까지 알아야 된다고 하니 거부반응이 먼저 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온도 문제에 대해서 좀 쉽게 생각하자. 맥주를 마실 때에 항상 시원하게 냉각해서 마시지 않는가? 미지근한 맥주를 마신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짜증이 난다. 맥주 속의 유기산과 타닌 등의 성분들은 온도가 낮아야 잘 즐길 수 있고 또 시원해야 식감도 좋아진다. 물론 맥주가 차야 거품이 유지되고 산화가 방지되고 맥주의 향과 맛을 더 오랫동안 유지하기도 한다. 맥주 맛을 즐기기 위해서 차게 하듯이 와인도 온도를 맞추어야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기본적으로 화이트 와인은 차게, 레드 와인은 상온에서 마시면 된다. 화이트 와인을 차게 마시는 이유를 설명하겠다. 화이트 와인은 맛의 조화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신맛, 부드러운 맛과 알코올이고, 와인을 즐긴다는 것은 이 맛들을 즐기는 것이고 이 중에서 신맛이 가장 중요하다. 화이트 와인의 맛은 레드 와인과 달라서 상큼한 맛이 있어야 한다. 상큼한 맛은 신맛이고, 이 신맛은 와인 속의 유기산인 주석산, 사과산, 구연산 등에서 오는 것으로 원래 포도에 들어 있던 성분들이다. 일반적으로 신맛은 온도 25도 이상이면 더 잘 느끼게 되기는 하나, 와인은 온도가 낮을 때에 더 조화된 느낌을 가지고 즐길 수 있게 된다. 사이다, 콜라 등의 음료도 상당히 신맛이 많고 차야 시원한 느낌을 준다. 시원하게 사이다나 콜라를 쭉 한 잔 마시고 싶은데 어쩌다가 미지근한 것을 마셔본 일이 있을 것이다.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을 것이다.
화이트 와인 중에는 단맛이 많은 와인이 몇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귀부 와인이나 아이스 와인 등인데 이런 와인들은 단맛도 아주 많지만 신맛도 아주 많다. 단맛을 잘 느끼기 위해서는 당연히 온도가 좀 높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나 이런 와인은 단맛으로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신맛을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귀부 와인이나 아이스 와인은 특히 신맛도 많기 때문에 온도를 더 낮게 해서 마시는 것이 좋다.
샴페인은 일반 화이트 와인보다도 더 상큼해야 하므로 신맛이 더 많다. 또 탄산가스를 오랫동안 용해하고 있어야 뮤즈가 오랫동안 올라 와서 눈을 즐겁게 하고 분위기를 좋게 해주므로 온도를 화이트 와인보다 더 차게 해서 마시는 것이 좋다.
레드 와인의 맛 조화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신맛, 쓴맛, 부드러운 맛이고, 레드 와인을 즐긴다는 것은 이 맛들의 조화를 즐기는 것이다. 레드 와인은 양조할 때에는 포도의 껍질과 씨를 같이 넣고 발효를 하는 데 이때 껍질과 씨에서 나온 타닌 성분이 와인 속에 녹아 들어가고 이 타닌 성분이 와인을 쓰게 만든다. 레드 와인에서는 신맛보다는 쓴맛이 더 중요하다. 쓴맛도 온도가 40도 이상에서 잘 느끼지만 상온에서 더 잘 즐길 수 있게 된다. 레드 와인은 신맛도 있기 때문에 온도를 너무 낮게 해서 마시면 신맛과 쓴맛의 상승작용으로 실제보다 더 시게 또 더 쓰게 느껴서 와인의 맛을 제대로 볼 수가 없게 된다. 실제로 레드 와인을 냉장고에 넣어서 아주 차게 해서 마셔보면 너무 시고 또 쓰게 되어 와인 맛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좋은 와인은 신맛과 쓴맛 등이 강하게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맛이 조화되어 즐거움을 주는 와인이다. 즉 레드 와인의 경우도 신맛, 쓴맛, 부드러운 맛이 조화가 되어야 즐거움을 주는 좋은 와인이 되는데 특히 어린 와인들과 같이 신맛과 쓴맛이 너무 강하기만 한 것은 맛을 즐기는 측면에서 보면 좋은 것은 아니다.
와인 마시는 온도를 간단히 생각하면 샴페인은 가장 차게, 화이트는 시원하게, 레드는 상온에서 마시면 된다. 온도를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참고로 조금 자세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오래된 레드 16-19도
가벼운 레드 14-16도
어린 레드 12-14도
오래된 화이트 14-16도
로제 와인 8-12도
어린 화이트 10-12도
샴페인 6-10도
귀부 와인 6- 8도
스파클링 4- 6도
와인을 즐기는 온도는 인류가 수 천년 동안 와인을 마셔오면서 지역별로 관습에 따른 것이다. 즉 와인의 단맛, 신맛, 쓴맛을 즐기는 온도는 오랜 기간 동안 관습적으로 정해져 온 것이고 현재에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전통이 와인의 문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과 같이 와인 마시는 온도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냉장시설이 개발된 이후부터이다. 1960년대에 들어 와서부터 맛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고 맛을 본다는 것은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떫은 맛 등 기본적인 맛의 감각 이외에 혀로 느끼는 차고 뜨거운 온도 감각이 혼합되어서 형성된다고 정리되고 있다. 와인의 맛을 잘 즐기기 위해서는 온도도 중요한 것이다. 가능하면 와인을 마실 때에 온도를 맞추어서 마시기를 바란다.
WRITTEN BY 마주앙 공장장 출신/소믈리에 김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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