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동방 진출

2021.05.03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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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동방 진출


크리스마스 하면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와 이를 영접하는 세 명의 동방 박사가 떠오른다. 마치 단군신화와 같은 이런 예수 탄생 신화에 등장하는 동방박사는 과연 누구일까? 동방박사는 지금 시점의 박사가 아니다. 그리고 동방도 지금의 동방이 아니라 이스라엘 기준에서 동쪽에 위치하는 페르시아 일대에 해당한다. 페르시아말로 현자(賢者)에 해당하는 마구스(magus)라는 호칭은 일찍이 기원 전부터 조로아스터 교의 승려를 의미한다. 현대에서는 동방박사를 영어로 ‘magi(복수)’라고 쓰는데, 영어로 마법사인 ‘magician’, 독일어로 석사에 해당하는 ‘magister’ 등의 어원과 같다. 한자로 무당이나 샤먼을 의미하는 ‘巫’자도 바로 이러한 페르시아 말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방박사는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페르시아의 석학 혹은 종교 수장 정도로 보면 된다. 즉 이교도들 조차도 인정하고 경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의미하면 될 것 같다.

난데없이 동방박사가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들이 예수에게 예물로 바친 세 가지 진귀품 중 하나인 몰약(myrrh) 얘기를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람수의 진액을 말린 몰약은 보통 불에 태워서 향으로 쓰였지만, 와인과 섞어서 마취나 진통제로 쓰이기도 했던 당시의 만병통치약이었다. 특히 와인과 섞으면 환각 작용이 증폭되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에게도 한 모금 마시게 한 얘기가 마가복음 성서에 나온다. 그만큼 몰약과 와인은 고대인에게 있어서 술보다는 약의 성분으로 이해되고 있었으며, 진통제, 환각제, 강장제와 같이 몸을 급속하게 이완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효능을 가진 몰약과 와인은 이슬람교 성립 이전에 동방 지역의 대표적인 산물로 자리잡게 된다. 특히 와인의 경우 값지고 희귀한 몰약에 비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남녀노소 구분 없이 대중적으로 음미할 수 있는 음료였다.

이전의 글에서 언급한 대로 와인의 생산은 일찍이 코카서스 지역에서 기원해서 동쪽과 서쪽으로 파급된다. 와인의 동방 진출은 청동기 시대 이후 지속적으로 중앙아시아 영토로 진출하기 시작해서, 사마르칸트와 우즈벡 일대의 페르가나(大宛國), 박트리아(大夏國), 토카리아(月氏國), 파르티아(安息國)과 같은 유목 문화 기반의 소국 및 북부 인도에서도 보편화된다. 이러한 와인의 생산은 북방의 맹주인 흉노의 창궐로 인하여한 제국이 성립한(BC 206)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중국 중원 지방에서 이루어진다. 이미 농경에 기반을 둔 중국 중원 지방의 경우 자체 곡주가 제작되고 있었으며, 포도를 재배해서 그 과즙으로 포도주 혹은 와인을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장건(張騫)의 서역 원정 이후이다(BC 226). 흉노에 잡혀서 억류 생활을 경험하고도 끝없이 서쪽으로 진출한 장건은 지금의 실크로드를 개척한 장본인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다양한 서역 문물을 중국에 전파함으로써 본격적으로 동방과 서방의 물자 교류를 최초로 실현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러한 물자 교류 중 대표적인 품종이 바로 포도와 와인이다. 장건에 의해 중국에 정착한 포도종은 대원국에 해당하는 지금의 사마르칸드 지방에서 기원한 것으로, 아마도 당도가 높고 주로 디저트 와인용으로 현재 사용되는 굴랴칸도스(Gulyakandoz)나 쉬린(Shirin)과 같은 품종의 원시적인 형태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 후한대에 전해지는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이라는 의서에는 이미 포도로 와인을 제작했다는 기록이 존재하기도 한다. 삼국지 주인공인 조조의 아들이자 위국 최초의 황제인 조비는 “와인(포도주)이 곡물로 만들어진 술보다 더 달고, 많이 마셔도 숙취가 덜하다”고 특별히 언급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와인은 아마도 특권 계층이 향유하던 별주(別酒)가 아니었나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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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섬서성 서안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장건의 복원상/ 


중국에서 와인의 생산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당대에 들어서이다. 당 태종의 서역 원정과 함께 지금의 신장 지방인 고창국(高昌國)을 점령하면서 본격적으로 와인용 포도 품종 및 와인 숙성과 발효법이 현재의 와인과 유사해지게 된다(AD 641). 그 후 중국의 와인은 당대에 한번 큰 붐을 이룬 이후, 몽골 제국의 성립과 함께 발효에서 증류를 거치는 독주 혹은 백주 문화가 정착하면서 점차 그 비중이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중국 대륙의 서북 변경에 해당하는 신장 지역 및 위구르족이 거주하는 영하(寧夏)회족자치구에서는 꾸준히 와인이 생산되었으며 지금도 중국 와인 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포도 및 와인이 한국에 어느 시점에 유입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일본의 경우 야마나시 현(山梨縣) 고슈(甲州)지역의 가츠누마조(勝沼町)에서 8세기경부터 포도 재배가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일본의 포도는 아마도 중국의 당대에 통일신라를 거쳐서 유입된 것은 거의 확실하다. 특히 신라의 경우 당과의 활발한 교역 및 로마의 유리 공예와 같은 다양한 이국 산물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완성된 형태의 와인도 어떤 방식이던지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본격적인 와인 생산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며, 아마도 포도는 생과(生果)로 소비되는 양이 더 많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시대 들어서 포도는 청화백자나 조선화와 같은 예술품에서 자주 등장하며, 홍만선의 ‘산림경제’ 치선편(治膳編)에도 민속주 중에 산포도인 머루를 활용한 술이 존재하는 것으로 볼 때 이 당시에도 한국 특유의 토속화된 와인은 존재했을 것으로 믿어도 될 것 같다.

일본에는 전술한대로 포도를 발효 시킨 원시적 형태의 와인이 일부 존재했지만 본격적인 서구식 와인은 16세기에 포르투갈 예수회 선교사를 통해서 유입된다. 동방 선교사도로 유명한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St. Francis Xavier)도 규슈 사츠마현의 다이묘이자 일본에 최초로 조총을 도입한 시마즈다카히사(島津貴久)에게 포교를 허락 받기 위해 와인을 선물했다는 기록이 있다. 막부 성립 이전 단계인 당시 일본의 전국 시대는 다양한 군주들이 할거하던 시기인데, 전국시대 3대 무장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카톨릭으로 개종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예수회의 포교 활동을 장려하고, 스스로도 와인을 애호하고 서양 복장을 착용하였다고 한다. 와인은 당시 일본에서 친타슈(珍陀酒)라 불리었는데, 이는 포르투갈 말로 붉은 색을 의미하는 ‘tinto’를 그대로 음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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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에 화제가 되었던 일본 아카다마(赤玉) 포트와인의 광고 전단/ 


동양 3국에 전파된 와인은 이미 기존의 곡물 기반 발효주를 능가할만한 수준으로 성장하지는 않았다. 극히 일부 지역에서 특권 계층을 위한 기호품만으로 명맥이 유지되던 와인은 19세기 말에 들어 서구 열강의 극동 진출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당시까지만 해도 동양 3국은 설탕을 즐기기는 쉽지 않던 자연환경이었고, 당분은 대부분 엿이나 식혜와 같은 맥아당이나 천연 과일에 함유된 과당으로 섭취하던 시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달착지근한 느낌을 주는 와인은 새로운 미각을 경험하게 해주는 주요한 매체였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맞아 폭발적으로 유입된 서구 문물 중 와인은 대체로 설탕이 가미된 단맛의 형태가 대부분이었으며,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에 도입된 한국의 와인도 이와 비슷한 형태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와인(포도주)=달콤하고 붉은 술’이라는 고정관념이 한국과 일본에 자리잡게 되며,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스위트 와인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도 여기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도 이제 제법 큰 국제적인 와인시장으로 성장하면서 연말 시즌에 부담 없이 와인을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가까운 일본은 일찍이 우리보다 먼저 와인이 보편화되었으며, 중국도 현재 세계 3대 와인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제 동양의 와인은 세계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주요 생산국이 아닌 소비국에 머무른다는 측면에서 볼 때 앞으로 많은 부분 분발이 요구된다. 다양한 방법으로 동방에 진출한 서방 문명의 정수인 와인을 예수가 탄생한 성탄절에 한번 정도는 즐겨보는 게 어떨까? 비록 엄격한 금주를 스스로 수행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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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유용욱 (Yongwook Yoo)
충남대학교 고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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