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만큼 재미있는 한국의 술, 전통주
<와인만큼 재미있는 한국의 술, 전통주>
오늘 드릴 이야기는 와인이 아니라 전통주입니다.
한국에서 와인을 하면서 우리 술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직무유기라 생각하는 저는 전통주와 한국와인에 관심이 많은데요,
오늘은 그 중에서 전통주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전통주란 우리 땅에서 난 곡물을 주재료로 물 이외의 첨가물 없이 누룩을 발효제로 삼아 만든 술을 뜻합니다. 전통주도 와인 종류만큼이나 다양하고 양조방법도 창의적이며, 풍부한 맛과 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전통주의 우수성을 논할 때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전통주의 우수성은 이렇습니다.
첫째, 전통주는 우리 체질에 맞는다는 점입니다. 한국인의 주식은 밥입니다. 전통주의 주 재료는쌀이기 때문에 다른 재료를 이용해 만든 술에 비해서 많이 마셔도 속에 부담이 적습니다. 그래서 막걸리와 같은 술은 밥을 대신하는 술이 되기도 했고 체질에도 맞습니다. 둘째로 전통주는 다양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통주는 자연적으로 배양한 누룩과 효모를사용한다는 점이 특징인데 이로 인해 다양한 맛과 향을 가지게 됩니다. 곡식으로 만든 술에서 딸기, 바나나, 복숭아 등의 과일 향과 깊은 감칠맛이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셋째로 전통주는 계절감과 풍류의 멋을 가지고 있는 술입니다. 각 계절과 절기에 따라서 마시는 술들이 다양했는데 대표적인 것을 살펴보자면 봄에는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을 이용해 ‘두견주’를 빚어 마셨습니다. 두견주는 그 달짝지근하고 입에 붙는 감칠맛이 일품입니다. 또 배꽃이 필 무렵에 담가 먹는 ‘이화주’는 마치 떠먹는 요구르트를 연상시킬 정도로 새콤달콤한 맛이 인상적인 고급탁주입니다. 여름철로 가면 ‘과하주’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냉장시설이 발달하지 않아 발효해 만든 술들이 높은 온도에 쉽게 상할 염려가 있었는데 이에 우리 조상들은 약간의 소주를 첨가하여 여름에도 상하지 않고 마실 수 있는 술을 만들어 냈습니다. 가을이 되면 새로 수확한 쌀로 빚어 마시는 전통주계의 보졸레 누보 ‘신도주’, 가을 국화로 만들어 사색을 즐길 때 함께한 ‘국화주’가 있었고 겨울에는 매화를 이용하여 만든 ‘매화주’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전통주의 우수성은 건강을 돕는 약주라는 점입니다. “약주 한잔 하세요”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술 문화는 ‘약’의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인삼주, 두충주, 백세주 등 건강에 도움을 주는 다양한 약재를 사용해 많은 술들을 빚어왔습니다.
어떤 술들과 비교해도 절대 뒤처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우리의 전통주! 그렇다면 전통주는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요?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대표적인 기준인 ‘거르는 형태’에 따라 분류를 해보면 탁주와 청주, 그리고 증류식 소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탁주는 흔히들 말하는 막걸리인데, 재료와 물, 누룩을 넣고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면 발효가 되어 만들어지는 술입니다. 만드는 방법이 간편해 우리 술의 역사에서도 가장 오래된 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탁주의 다른 이름으로는 집에서 빚어먹는 술이라 하여 ‘가주’, 색이 희다 하여 ‘백주’, 농사를 지으며 마시는 술이라 하여 ‘농주’라고도 불리는데 역시나 가장 널리 불리는 이름은 막걸리입니다. 막걸리는 ‘마구 걸렀다’는 의미와 ‘방금 막 걸렀다’는 의미라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요, 후자 쪽이 이미지상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 6도 전후의 술인데, 사실 원래의 막걸리는 20도 가까운 알코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물을 타서 6도 전후로 도수를 맞춰 판매하는 것이죠. 몇몇 대기업의 막걸리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막걸리 맛은 뭔가 표준화 된 느낌이지만 사실 전국 방방곡곡 우리가 아직 모르는 뛰어난 막걸리들이 많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각 지방 막걸리들을 한번 드셔 보시길 권합니다.
청주는 술을 빚어 맑은 부분만을 떠낸 술로, 전통주의 근간을 이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제시대 민족문화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우리의 청주를 청주라 부르지 못하게 하여 아직까지도 그 법의 잔재가 남아있는 슬픈 역사를 가진 술이기도 합니다. ‘맑은 술’이라는 뜻으로 이름 자체의 마케팅적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방식으로 만든 술은 청주라고 분류하면서 정작 우리 전통방식의 청주는 약주라고 분류하는 현실에 안타까움과 실소를 금할 수 없으니, 시급히 고쳐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증류식 소주가 있습니다. 앞에 증류식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가 흔히 마시는 희석식 소주와는 격이 다른 술이기 때문입니다. 희석식 소주는 값싼 원료를 이용하여 주정을 만든 후 거기에 물을 잔뜩 섞어서 감미료 등을 첨가한 술이고, 그에 반해 우리의 전통소주는 탁주나 청주를 증류하여 한 방울 한 방울 얻어낸 귀한 술입니다. 쌀 1kg을 재료로 하면 탁주는 6리터, 청주는 3리터, 소주는 1리터가 만들어지니 얼마나 귀한지는 다른 이유를 들지 않아도 충분할 것입니다. 원래 소주의 증류기술은 아라비아에서 전해진 것으로 ‘아라킬’이라 불리던 술이 몽골로 넘어가면서 ‘아락길’이 되었고 고려시대 슬픈 역사와 함께 몽골로부터 증류기술이 전해진 후로 ‘아락주’, ‘아랑주’ 등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아직도 한국 일부 지역에서는 소주를 아락주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수하고 과학적인 우리의 전통주는 조선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약 600여 종이 문헌에 남아있을 정도였지만 구한말 외래문화의 유입과, 1909년 일제의 주세령, 그리고 1965년 국가의 식량관리법 등의 이유로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88올림픽 때 외국인들에게 자랑할 술 하나 없는 심각성을 깨닫게 된 정부의 노력으로 조금씩 복원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와인도 좋지만 한국인으로서 제사상이나 명절 선물용 말고도 가끔 전통주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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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오형우(Dean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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