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철의 중요한 것은 일조량
광합성과 호흡
녹색식물의 잎은 기공에서 흡수한 탄산가스와 뿌리에서 흡수한 물로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여 포도당을 만들고 부산물로 산소를 내놓는데, 이 과정을 ‘광합성’이라고 한다. 이 얼마나 고마운 작용인가? 그리고 잎에서 만든 포도당은 열매로 이동하거나, 줄기나 뿌리에 녹말이나 섬유소 형태로 저장하니까 오래된 포도나무는 이렇게 비축해둔 포도당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래 된 포도나무에서 나온 와인이 좋다고 하는 것이다.
반면, 동물은 식물이 만든 포도당을 그대로 섭취(과일 등)하기도 하고, 포도당이 수만 개 뭉쳐 있는 녹말(쌀, 보리 등) 형태로 섭취하고 물과 탄산가스를 내놓으면서 에너지를 사용하는데, 이를 전문용어로 ‘호흡’이라고 한다. 식물과 동물은 이렇게 공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는 모두 태양에서 온 것이다. 석유나 석탄도 아주 옛날 동식물이 흙 속에서 묻혀서 된 것이니까 태양 에너지에서 온 것이고, 수력발전도 태양 에너지가 없으면 물이 증발하지 못하고 비가 올 수 없으니까 결국 태양 에너지에서 온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 중에서 태양 에너지가 아닌 형태가 원자력인데, 그래서 그런지 자꾸 말썽의 소지가 되고 있다.
포도나무는 집열판
그러니까 포도당 생성량은 탄산가스와 물이 많을수록 많아진다고 할 수 있지만, 지구상에 탄산가스는 많아서 골치 아프고, 물도 식물이 죽지 않을 만큼 있으니까 광합성에 영향을 끼치는 절대적인 요소는 태양 에너지가 된다. 즉, 태양열이 많을수록 잎에서 광합성이 활발해지고 포도당 생성량이 많아진다. 그렇다고 태양열에 비례하여 광합성이 무한대로 증가하지는 않는다. 한 여름 맑은 날은 태양열 강도의 1/3 ~ 1/2 정도면 광합성이 최대치를 보인다. 즉 아침에는 햇볕의 강도에 비례하여 광합성이 증가하지만, 한낮에는 전체 강도의 1/3 ~ 1/2에 도달하면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포도 잎이 한 층으로 되어 있다면 태양 빛을 100 % 사용하지 못하고 1/2 ~ 2/3가 남게 되므로 잎을 더욱 우거지게 만들어 햇빛의 강도를 2/3 수준으로 감소시키는 정도가 가장 좋고, 이때가 광합성이 극대화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광합성이 극대화되는 잎의 밀도를 지나쳐서 잎이 너무 빽빽하게 달려 있는 경우는 위쪽의 잎은 햇볕을 충분히 받을 수 있지만, 아래쪽이나 안쪽의 잎은 햇빛을 전혀 보지 못한다. 그리고 햇볕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잎은 자신에게 필요한 광합성을 하지 못하고, 다른 잎에서 광합성으로 만든 당으로 기생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렇게 그늘에 있는 잎과 과일은 와인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캐노피(Canopy, 잎이 달려있는 부분)를 집열판으로 생각하고, 포도당을 생산하기 위해 잎에 필요한 햇볕이 가장 적절하게 도달할 수 있도록 캐노피를 관리하는 것이다. 즉 캐노피는 태양의 집열판과 같이 태양 빛의 흡수를 최대로 해야 한다. 그러므로 햇볕이 캐노피에 가려 진한 그림자기 생겨도 안 되지만, 캐노피의 밀도가 너무 낮아서 빛이 지면에 닿도록 만들어서도 안 된다.
그늘이 미치는 영향
햇볕이 부족하면 포도의 당분형성이 감소되는 것은 물론, 주석산(Tartaric acid)보다는 사과산(Malic acid)의 함량이 많아진다. 특히 색깔과 떫은맛에 영향을 주는 폴리페놀 성분, 즉 타닌이나 안토시아닌이 감소되며, 와인에 향을 부여하는 성분도 감소되어 풋내가 증가하므로 포도재배에서 그늘은 품질을 저하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 또 캐노피 관리를 떠나서 그 해 날씨가 좋지 않아 일조량이 적고, 비가 많이 왔다 해도 동일한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너무 과다한 햇볕은 포도의 호흡을 증가시켜 당과 산을 소모시키며, 수확 직전의 포도에 화상을 줄 우려도 있다.
색깔은 레드 와인에서 아주 중요한 것으로 동일한 재배방법으로 최고의 향미와 좋은 색깔을 얻어야 한다. 캐노피의 신중한 관리는 착색에 필수적인 사항으로 열매의 착색을 위해 햇볕이 필요하지만, 너무 많으면 색소가 파괴된다. 또, 포도송이가 너무 많이 열리거나(과도한 생산), 나무 자체가 과도한 성장(웃자람)을 하면 색깔이 감소된다. 이렇게 햇볕은 광합성과 착색에 직접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포도밭은 햇볕이 잘 드는 남동향이 좋다고 하는 것이다.
일교차가 심해야 좋은 포도가
물론, 식물도 호흡을 하면서 에너지를 사용하여 생육과 번식을 하지만, 햇볕이 있는 낮에는 호흡보다 광합성 양이 훨씬 더 많으니까 산소를 내놓고, 밤에는 햇볕이 없으니까 호흡만 한다. 이 호흡은 온도가 높을수록 많이 하게 되는데, 밤 기온이 높으면 포도나무도 호흡이 왕성해져 낮에 만든 포도당을 많이 소비하여 나온 에너지를 나무 자체의 성장에 사용하니까 수세는 좋아지나 열매는 부실해 진다. 그러니까 일교차가 심한 기후는 포도나무한테는 썩 좋은 환경은 아니다. 과수는 인간이 열매를 얻기 위해서 재배라는 작물이라서 나무의 성장을 최대한 억제시켜 보다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해줘야 한다. 모든 생물은 환경이 열악해지면 번식하는 데 힘을 쓴다.
낮에는 30℃까지 기온이 올라가고, 밤에는 10℃로 떨어진다면, 우리는 밤에 난방을 해야 할 정도로 춥다고 느끼지만, 세계 와인생산 지역에는 이런 곳이 많다. 그러면 파리나 모기 등 곤충들이 살기 어려우니까 병충해가 별로 없고, 포도나무는 낮에는 광합성을 활발하게 하여 포도당을 많이 만들고, 밤에는 추우니까 호흡을 적게 하여 낮에 만든 포도당을 덜 까먹게 된다. 그리고 아껴둔 포도당을 열매로 보내 포도의 당도를 높이고, 이를 기본으로 색깔이나 향도 훨씬 좋게 만든다. 그래서 일교차가 클수록 포도의 당도가 높아지고 향도 좋아진다. 이렇게 일교차가 큰 지방 즉 와인용 포도가 잘 되는 곳에 사는 여자들은 아침에는 추우니까 긴팔 셔츠를 입고 나갔다가, 낮에는 엉덩이에 차고 다니고, 저녁에는 다시 추워지면 걸치게 된다.
가을 햇볕이 중요한 이유
8월 말에 포도가 익기 시작할 무렵에는 잎에서 광합성으로 생성된 당을 열매로 이동시키고, 줄기와 가지 등에 저장된 당분도 포도열매로 이동하지만, 9월 말에는 줄기와 가지의 당분이 열매로 오는 이동은 멈추고, 잎에서 광합성으로 생성된 당분만 열매로 이동한다. 이때는 포도나무 자체의 성장이 멈추고, 포도 열매의 당분만 농축될 무렵이다. 그러므로 9월 햇볕이 품질에 미치는 영향력이 가장 클 수밖에 없으며, 이 시기의 광합성은 햇볕 받는 기간과 강도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마지막 열매를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라는 릴케의 시는 포도재배에서 햇볕의 중요성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태양 에너지는 지구상의 동식물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되면서, 우리가 원하는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 된다.
WRITTEN BY 김준철 (Jun Cheol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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