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철의 회장님 취미생활 때문에
회장님의 취미생활 때문에
영국의 유명한 레스토랑에 동양사람 몇이 들어와서 ‘페트뤼스’를 시켰다. 소믈리에가 주문한 페튀르스를 가져와서 호스트 테이스팅을 부탁했다. 주문한 사람이 맛을 보더니 이건 아니라고 물리쳤다. 권위 있는 레스토랑인데 할 수 없이 다른 것으로 가져왔다. 두 번째도 물리치는 것이다. 이에 레스토랑 측에서는 긴장을 하고, 이번에는 제너럴 매니저가 다른 페트뤼스를 들고 가서 테이스팅을 부탁했다. 이번에는 제 맛이라고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그래서 제너럴 매니저가 “저도 한번 맛을 봐도 될까요?”라고 부탁을 했더니, 흔쾌하게 허락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유명한 제너럴 매니저라고 해도 페트뤼스를 자주 마셔보지 못했으니까 제대로 된 맛을 알 수 없었다. 그냥 물리친 와인과 맛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뿐이다. 나중에 조사를 해보니까 이 손님은 한국의 재벌 2세였다고 한다.
와인 맛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아주 유명한 고급 와인 맛은 위와 같이 일찍 해외에 나가서 좋다는 와인을 섭렵한 재벌 2세가 가장 잘 안다. 그리고 이들은 국제적인 사교 모임에서 와인의 필요성을 깨닫고, 와인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애호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을 구하기가 어렵고, 구한다 하더라도 엄청 비싸기 때문에, 와인수입사를 가지고 있으면 이런 경우에 쉽게 해결이 된다.
그러나 그룹 내에서 다른 회사들은 조 단위의 매출을 올리는데, 와인수입사는 잘 해야 몇 백억 원 정도니까, 이들 재벌기업의 총 매출에서 와인수입사의 매출은 1% 도 안 되는 아주 작은 규모로 그룹사의 성장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지만, 이를 유지시키는 이유는 바로 와인을 좋아하는 회장님 때문이다. 그리고 기업이란 이익을 창출해야 하니까 와인수입사의 전문경영인과 직원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매출을 증가시키려고 노력을 할 것이고, 그러다 보니까 중소 와인수입업체의 허리는 부러질 수밖에 없다.
땅 짚고 헤엄치기
게다가 재벌기업은 편의점, 백화점, 대형할인마트, 호텔, 음식점 등 그것도 전국적으로 여러 개를 가지고 있다. 재벌기업의 수입사에서는 와인을 수입만 하면 그룹 내에 있는 이런 전국적인 판매망에 쫙 깔 수가 있다. 재벌기업의 와인 판매는 이렇게 ‘땅 짚고 헤엄치기’지만, 중소기업은 이 시장을 뚫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결국 와인시장은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와 재벌회장의 싸움이다. 재벌은 재벌답게 중소기업이 수입한 와인을 잘 팔 수 있도록 매장만 제공해 주면 좋을 텐데, 꼭 와인을 수입하여 중소업체의 코딱지만한 시장을 잠식해야 할까? 요즈음은 재벌기업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세사업자 영역인 와인 소매점까지 차리고 있으니, 길거리 와인 소매점의 존립도 위태롭게 되었다.
재벌기업의 유명 브랜드 빼앗아 가기
어떤 와인을 수입하여 그 와인이 국내에서 자리를 잡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어느 정도 매출을 올리고 상당한 인지도 확보할 무렵에 이 브랜드를 재벌기업에서 가져가 버린다면, 그야말로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재벌기업은 특별한 노력 없이 자기들의 명성과 유통 채널에 의지하여 잘 알려진 브랜드를 이런 식으로 빼앗아 가버린다. 재벌기업이 막강한 자본력으로 와인을 대량으로 싸게 구입하여 싸게 팔면 소비자 입장에서 아주 좋은 일이지만, 이조차도 중소기업은 불안하기 그지없는데, 잘 키워 놓은 와인을 하루아침에 가져가 버린다면 대책이 없다. 재벌기업이 와인을 수입하면서 기존 수입업체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공포가 바로 이것이다. 즉 중소기업의 와인은 잘 팔리면 이를 뺏길까 봐 더욱 걱정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 이슈화된 Vallformosa의 Gran Baron 시리즈 Cava>
와인을 빼앗아 가는 것 외에도 중소 수입업체에서 상당한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육성한 인재를 재벌기업에서 하루아침에 데리고 가거나, 재벌기업의 매장에 입점한 중소 수입업체의 고급 제품을 미끼 상품으로 원가 이하에 팔도록 강요하여 판매가격에 거품이 있는 것으로 소비자가 인식하도록 만드는 등, 소위 말하는 갑질은 이야기하자면 한이 없다. 그러나 중소수입업체들은 재벌기업의 횡포에 대해 불만을 표시할 수 없다. 그들 매장에 납품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소 수입업체 존립 위협
그러니까 와인시장은 ‘중소기업이 투자하고 대기업이 이익을 독식’하는 불합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상태가 장기간 지속된다면 중소수입업체는 폐업을 할 수밖에 없다. 사람에 따라서는 시장논리에 의해서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하지만, 재벌기업만이 와인을 수입한다면 소비자는 여러 유통 채널을 통해 구매할 수 있던 것이 재벌기업 창구를 통해서만 구입이 가능하게 되어 구매의 다양성을 잃게 된다. 또 재벌기업이 와인을 수입해야 소비자는 더 싼 가격으로 혜택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재벌기업만이 와인을 수입한다면 그때부터는 경쟁자가 없어지니까 와인 가격은 다시 비싸질 수 있다.
수입와인 시장은 껌 시장
2016년 우리나라 와인 수입액은 1억9천 불(CIF)로 수입사의 판매 기준으로 5천억 ~ 6천억 원 정도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가 쉽게 마시는 믹스커피만 하더라도 1조3천억 원 시장이니까, 말 그대로 수입 와인 시장은 아직 껌 값밖에 안 된다. 이 작은 시장에 조 단위로 매출을 올리는 재벌기업이 끼어들어 같이 먹자고 젓가락을 올려놓고 있으니 힘없는 중소기업은 살아갈 방법이 없다. 재벌기업이란 전자, 철강, 석유, 통신 등 국가의 중추적인 기간산업을 주도하면서 국가경제를 일으키고, 기술 발전, 고용 창출, 중소기업과 공생 등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재벌기업에 어느 정도의 비리가 있더라도 국가경제가 행여 누가 될까 봐 웬만하면 봐주자고 하는 것이다.
결론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
와인(주류) 수입업은 ‘소량다품종’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 적합한 품목이다. 와인(주류) 수입업은 중소기업에서 해야 한다. 그래야 일자리가 많아진다. 소수의 대기업에서 대량으로 수입하여 유통하는 것보다는 다수의 소기업에서 소량으로 수입하면 고용효과 증대한다는 평범한 논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게다가 와인 수입은 어느 정도의 지식과 인맥을 갖추고 있다면, 소규모 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하므로 청년이나 퇴직자가 창업하기에 아주 적합하다. 결론적으로 와인(주류) 수입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한다면, 재벌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횡포를 방지하고,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하고, 중소기업을 안정화시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추구하여, 전반적인 사회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런데 재벌기업이 와인이라는 최종 소비재 그것도 ‘술’을 수입하면서 중소기업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으니, 국민들의 지탄을 받기 전에 재벌기업 입장에서도 스스로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이미 LG와 SK는 주류 수입을 포기한 선례가 있다. 회장님 취미생활 때문에 중소 수입업체는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WRITTEN BY 김준철 (Jun Cheol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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