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루아와 와인
<떼루아와 와인-천지인(天地人)이 만들어내는 예술, 와인>
와인을 접하다 보면 “좋은 떼루아에서 좋은 와인이 나온다”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수년 전 떼루아 라는 제목의 드라마도 있었고 얼마 전 끝을 맺은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에도 많이 등장할 만큼 와인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떼루아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포도나무가 자라서 열매를 맺고 이를 수확하여 와인이 되기까지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들을 떼루아(Terrior)라고 합니다. 흙을 뜻하는 프랑스어인 떼르(Terre)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점점 의미가 확장된 것입니다. 포도재배에는 연평균 기온 10~20도, 연간 일조량 1250~1500시간, 강우량 500~800ml의 조건이 이상적이라고 하지만 이 밖에도 와인에는 다양한 ‘떼루아’가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면 ‘떼루아’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토양을 볼까요? 흔히들 “포도는 척박한 토양을 좋아 한 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토양이 척박하면 포도나무가 땅 속 깊은 곳까지 양분을 찾아 깊게 뿌리를 내리게 되고 그로 인해서 포도는 다양한 미네랄을 비롯한 양분을 얻게 됩니다. 생존을 위한 포도나무의 몸부림이 더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는 포도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결국 포도나무가 척박한 토양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척박한 토양에 심겨진 포도나무에서 좋은 와인이 나온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죠? 사람의 기준에서는 포도나무에 스트레스를 줄수록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좁은 땅에 빽빽이 포도나무를 심거나 포도나무 옆에 경쟁할 수 있는 다른 식물을 심는 것 등도 스트레스를 주기 위함입니다.
또 이런 척박하고 푸석한 토양은 비옥한 토양에 비해 배수가 좋습니다. 물 빠짐이 좋으니 뿌리에 관련된 질병이나 곰팡이에 강합니다. 각각의 토양성분마다 와인의 스타일도 다르게 되는데 보편적으로 석회질이 많은 토양에선 섬세한 와인, 진흙질의 토양에선 무겁고 진한 와인, 모래가 많은 토양에선 가볍고 심플한 와인이 주로 생산됩니다.
다음으론 지형과 지세를 살펴볼 수가 있는데 포도재배에는 햇볕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남향이나 남동향의 밭이 가장 유리합니다. 간혹 너무 더운 지역 같은 경우엔 일부러 서향이나 북향을 택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론 한 줌의 빛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곳을 선호합니다. 남반구 같은 경우엔 반대로 북향의 밭이 최고겠죠?
또한 평지보다는 경사지가 좋은데 이 또한 각도 상으로 빛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고 배수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서늘한 지역은 강을 인접하여 포도를 심는 경우가 있는데 강이 거울 같은 역할을 해서 빛을 반사해서 포도밭에 주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산맥을 병풍처럼 활용해서 찬바람을 막아주는 위치에 포도를 심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엔 바람 뿐 아니라 비구름을 막아주는 역할도 합니다. 산꼭대기에 비구름이 걸리면서 비를 모두 뿌리고 반대편엔 비가 안오게 되는 것입니다. 포도밭이 바다에 인접해 있는 경우, 너무 더울 때는 바닷바람이 이를 식혀주고 밤이 되어 온도가 떨어지면 낮에 품고 있던 열을 전달해 온도를 올려주는 효과를 주기도 합니다. 고도의 중요성도 빼 놓을 수 없는데, 무더운 지역의 경우 고지대에 포도를 심어서 포도가 과숙되는 것을 막습니다. 아울러 색과 향기가 풍부해지고 좋은 산도를 만들어 내는 등의 장점도 있습니다.
최근엔 이런 자연적 요소 외에 사람의 손길도 떼루아에 포함 시킵니다. 포도나무 한 그루에 얼마의 포도송이를 남길 것인지, 수확은 언제 할 것인지, 발효는 스틸 탱크에서 할 것인지 나무통에서 할 것인지 오크통은 미국산을 쓸지 프랑스산을 쓸지 쓴다면 새 통을 쓸 것 인지 헌 통을 쓸 것인지, 정제와 여과는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셀 수도 없이 많은 선택과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한 병의 와인이 탄생합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힘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천지인의 산물 와인, 갑자기 와인이 다르게 보이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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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오형우(Dean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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