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철의 비싼 와인과 싼 와인
한국와인협회 ‘김준철’ 회장님의 와인칼럼
‘여덟 번째’
비싼 와인과 싼 와인
한 병에 만원이 채 안 되는 와인이 있는가 하면, 백만 원을 훨씬 넘는 비싼 와인도 있다. 왜 이렇게 와인 가격은 천차만별일까? 과연 비싼 와인은 그만큼 맛이 있을까? 그런가 하면, 우유 값보다 싼 와인은 어떻게 만들기에 이런 가격이 나올 수 있을까?
명품이란?
핸드백을 사러 갔다. 디자인이나 색깔이 별로 맘에 차지 않지만 슬쩍 뒤집어 보니까 ‘루이뷔통’이다. 그러면 “요새는 루이비통도 별 볼일 없구나!” 이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은 “이크! 요새는 이런 것이 유행이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을 반성(?)한다. 명품 와인도 마찬가지다. 백만 원짜리 와인이 내게 맛이 없다면 내가 잘못된 것이다. 소위 명품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판단력이나 이성을 완전히 무시한다. 이렇게 우리의 판단력 위에 있는 와인이란 어떤 것일까?
좋은 포도밭은 명당자리
고급 와인 생산지는 그렇게 덥지 않은 지방에서 남향으로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뒤쪽으로는 차가운 북풍을 막을 수 있는 산이 있고, 앞이 시원하게 트인 곳으로 강이나 호수가 있으면 더 좋다. ‘좌청룡 우백호’라는 명당자리와 다를 바 없다. 낮에는 햇볕이 잘 들어 덥고,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져 서늘해져야 포도의 색깔이 진하고 당도와 향이 좋아진다. 연간 강우량도 500-800 ㎜ 정도(우리나라는 1,200-1,400 ㎜)로 비가 많지 않은 곳이며, 비가 오더라도 겨울에 많이 오고, 빗물이 바로 빠지는 경사진 곳이라야 한다. 또, 같은 지역의 다른 포도밭에 비하여 서리나 우박 등의 피해가 적어서 예전부터 명산지로 소문이 난 곳이다. 이렇게 완벽한 조건을 갖춘 포도밭은 넓을 수가 없기 때문에 생산량이 적고, 다른 포도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땅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 이렇게 비싼 와인이 나오는 곳은 땅값부터 차이가 난다.
수확량을 줄여야
그리고 그 기후와 토질에 맞는 고급 포도품종을 선택하여 정성 들여 재배한다. 손으로 하나씩 가지치기를 하고, 꽃이 핀 다음부터 솎아내서 생산량을 줄여야 당도가 높고 산도가 적당한 좋은 포도를 얻을 수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식용 포도는 ha(3,000평) 당 30,000 ㎏ 정도 수확하지만, 프랑스의 고급 산지는 3,000-5,000 ㎏ 정도로 적은 양을 수확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포도가 익기 시작하면 날마다 당도를 비롯한 각 성분을 분석하여 가장 이상적인 조건에 도달했을 때, 완벽한 송이만 손으로 수확하고 좋지 않은 것은 그대로 남겨둔다.
재고비용 부담
이 포도를 상자에 담아서 와이너리로 가져와 즉시 으깨어 발효를 시킨다. 발효도 낮은 온도에서 서서히 일어나게 조절하여 색깔, 향, 맛 등이 조화를 이루면서 완벽한 품질이 되도록 와인을 소중히 다루고, 숙성할 때도 아주 비싼 오크통을 사용하여 장기간 보관하여 오크통에서 향과 맛이 우러나오도록 관리한다. 완성된 와인을 병에 넣을 때도 가장 길고 비싼 코르크를 사용한다. 그리고 나서 이 와인을 몇 년 더 병에서 숙성을 시킨다. 해가 거듭됨에 따라 생산 년도(Vintage)가 다른 와인이 계속 쌓이니까 창고가 커질 수밖에 없다. 쉽게 이야기한다면, 1년 숙성시키는 와이너리에 비해 5년 숙성시키는 와이너리는 창고면적이 다섯 배 더 커야 한다. 그리고 5년 동안 관리하는 비용과 재고비용을 고려한다면 보통 와인보다 기하급수적으로 비싸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덩치 큰 아파트도 3년이면 다 짓는데, 와인 한 병 만드는 데 5년이 걸린 셈이다. 특급 와인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이유는 인간의 인내심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예술품 취급
이렇게 만든 와인은 거의 예술품 수준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생산비보다 더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수량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즉, 수요 공급 법칙에 의해서 값이 비싸지는 것이다. 와인 애호가들이 경쟁적으로 와인 값을 올리기 때문에 한 병에 수십, 수백만 원이 되면서 더욱 유명해진다.
명품 와인이란 것은 특정한 포도밭에서만 나오는 것이라서, 잘 팔린다고 중국에서 더 많이 만들 수도 없고, 누군가가 마셔버리니까 세월이 지나면서 그 양이 적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느 해 어느 와인이 좋다면, 재빨리 사서 재테크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비싼 와인은 최고의 조건을 갖춘 작은 포도밭의 낭만과 하나씩 정성 들여 손으로 만든다는 점에, 비싼 가격이 합쳐져 그 맛을 더 뛰어나게 만든다고 보면 된다. 만약, 비싼 와인의 상표가 떨어져 나가고 없다면 과연 그 가치는 얼마나 나갈까? 이런 와인은 브랜드 네임의 가치가 크다. 백만 원짜리 와인이 만 원짜리 와인보다 백 배 더 맛있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사진작가 귄터 클링스의 작품 ‘샤토 무통 로칠드 1993’>
위대한 와인이란?
위대한 와인이 평범한 와인과 구분되는 점은 복합성, 조화,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힘이다. 좋은 와인이란 경험 있는 감정가들의 마음에 경외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더라도 관심을 끌 수도 있고, 잘 만들어진 것이며, 품종별 특성을 가지고 있고, 숙성된 부케가 있으며, 생산지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만약 와인이 그 즐거움을 기억할 만큼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면 위대한 와인이 될 수 없다.
성경에 보면,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 3:6)라고 써져 있다. 와인도 보기에 좋고, 맛있고, 그걸 마시면 무언가 남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위대한 와인이다. 이는 와인뿐 아니라 모든 식품에 적용된다.
값싼 와인이란?
반면, 규모가 큰 와이너리는 훨씬 경제적이다. 비교적 더운 지방에 수천만 평의 포도밭을 조성하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품종보다는 생산성이 좋은 품종을 재배하여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늘리고, 그 넓은 포도밭을 컴퓨터로 자동화 관수시스템 등으로 관리하고, 비행기로 농약을 뿌리고, 기계로 수확하여 인건비를 줄인다. 그리고 과학적인 품질관리 기법과 자동화, 대량생산, 대량 마케팅으로 시장에 나오니까 우유 값보다 싼 와인이 나오는 것이다.
귀찮은 오크통 숙성은 생략하고, 여러 가지 품종와인을 잘 혼합하여 최고는 아니더라도 품질이 균일한 와인을 만든다. 경우에 따라서는 싼 것도 상표를 안 본다면 소량 생산되는 고급 와인과 차이를 쉽게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값싼 와인이라고 꼭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산방법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뿐이다. 요즈음은 발달된 과학 덕분에 값싼 와인의 질이 아주 좋아졌다.
명품 와인
그러므로 값싼 와인이라고 꼭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산방법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뿐이다. 반면, 비싼 와인은 최고의 조건을 갖춘 작은 포도밭의 낭만과 하나씩 정성 들여 손으로 만든다는 점에, 비싼 가격이 합쳐져 그 맛을 더 뛰어나게 만든다고 보면 된다. 만약, 비싼 와인의 상표가 떨어져 나가고 없다면 과연 그 가치는 얼마나 나갈까?
WRITTEN BY 김준철 (Jun Cheol Kim)
(한국와인협회 회장,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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