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철의 잘못된 와인상식
잘못된 와인상식
와인은 생산지의 토양, 기후, 지형적인 특성은 물론, 포도재배, 발효, 숙성 등 수많은 과정을 거쳐서 생산되기 때문에,
와인에 대한 지식은 여러 분야의 종합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복잡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이 와인의 매력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와인과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은 와인공부를 열심히 하기 마련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와인을 너무 신비스러운 듯이 바라보거나, 과학적인 근거 없이 떠도는 소문을 진실인 양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오래될수록 좋은 와인?
“와인은 오래될수록 좋다”라는 설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은 이제는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오래될수록 좋아지는 와인은 최고급 레드와인이나 고급 스위트 화이트와인 혹은 빈티지 포트 등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값싼 와인은 가장 맛있다고 판단될 때 병에 넣기 때문에 최근에 나온 것이 가장 맛있다. 특히, 값싼 화이트와인이나 로제는 될 수 있으면 최근 빈티지에서 2-3년 이내의 것을 구입하는 것이 좋은데, 이런 와인은 금방 시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90 %는 1년 정도 되었을 때가 가장 맛있다. 이런 와인은 오래되면 맛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부패된다.
체온 때문에 와인의 온도가?
와인을 마실 때 글라스의 볼 부분을 잡으면 체온 때문에 온도가 올라간다고 하지만, 사실은 글라스를 잡아 마시고 내리는데 걸리는 시간이란 2-3 초밖에 안 된다. 그 짧은 시간에 와인의 온도가 올라간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고, 와인글라스는 반드시 아래쪽 가지부분을 잡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보다는 와인이 들어있는 글라스를 테이블 위에 오래 둘수록 온도가 더 잘 올라간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와인 잔을 잡을 때는 반드시 아래 가지부분을 잡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외국 사람들은 윗부분을 잡고 마시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와인 마시는데 어떤 정해진 규칙이 없다는 말이다. 커피 마시는 법이 따로 없듯이 와인 마시는데도 까다로운 규칙이 없다. 마음대로 마셔도 된다.
와인의 눈물
“눈물이 많을수록 좋은 와인이다.” 와인글라스를 흔들었을 때 와인이 벽을 타고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것을 영어로 ‘눈물(tear)’, ‘다리(leg)’ 등으로 표현하는데,이것도 와인의 품질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알코올 농도가 높을수록 이 현상은 잘 일어난다. 이 현상은 와인이 글라스 벽을 타고 흘러내릴 때, 얇은 막을 형성하면서 순간적으로 알코올이 먼저 증발하여 안 쪽에 있는 용액과 농도 차이가 나면서 표면장력이 커지기 때문에 흘러내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위스키나 코냑과 같은 독한 술로 하면 훨씬 더 잘된다.
와인 병 바닥의 패인 곳
“와인 병의 똥구멍이 깊을수록 좋은 와인이다.” 그야말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병이야 사람이 만들기 나름이지 병 모양이 와인의 질을 좌우할 수는 없다. 이 부분을 ‘푸쉬업(pushup)’, ‘펀트(punt)’ 등으로 부른다. 병 바닥을 이렇게 만들면 부피가 줄어들어 같은 용량이라 하더라도 더 크게 보이는 효과는 있지만, 와인의 품질과 무관하다. 질 나쁜 와인을 만들면서, 제병업자에게 병 똥구멍을 깊게 파달라고 부탁하면 어떻게 될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인데도 이를 믿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또, 병 바닥에 찌꺼기를 모으기 위해서 이렇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막상 와인 따를 때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코르크마개가 숨 쉰다?
“코르크 마개는 숨을 쉰다.”라는 이론은 와인 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 철칙으로 믿고 있는 경우가 많다. 코르크는 벌집과 같이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물이나 공기가 통과하기 힘든 구조로 되어있다. 심지어는 “병 캡슐의 구멍이 병 숙성을 쉽게 해준다.”라고 믿는 사람도 있지만, 캡슐의 구멍은 캡슐을 병에 씌울 때 공기가 캡슐에 막히지 않고 쉽게 내려갈 수 있도록 뚫어준 공기구멍이다. 그렇다면, 병에서 숙성된다는 이론은 어떻게 된 것인가? 와인의 병 숙성은 공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시간에 의한 화학변화라고 봐야 한다. 또 와인이란 원래 공기하고는 상극이기 때문에, 요즈음은 병을 코르크로 밀봉하기 전에 빈 공간에 질소를 채울 정도니까, 코르크가 숨 쉰다면 와인 다 버리게 된다.
디캔팅이나 브리딩으로 맛이 좋아진다?
“와인을 서빙하기 한 시간 전에 코르크를 따놓으면 와인 맛이 좋아진다.”라고 하면서 이를 브리딩(Breathing)이라고 부른다. 이는 디캔팅(Decanting, 와인에 가라앉아 있는 찌꺼기를 제거하는 일) 할 때 코르크를 미리 따서 침전물을 가라앉히는데 필요한 시간을 말하는 것이지, 디캔팅이 필요 없는 와인의 뚜껑을 열어 공기와 접촉시킨다고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병 구멍만한 면적에 공기가 접촉하여 무슨 변화가 일어날까? 다만, 나쁜 냄새가 나는 질 낮은 와인에서는 그것이 없어지는 효과는 있을 수 있다. 디캔팅의 효과도 마찬가지로 공기접촉으로 나쁜 냄새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도, 경험적으로 맛이 좋아진다고 믿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셀러에서 와인을 꺼내올 때는 와인 온도가 낮지만, 코르크를 따서 실내에서 한 시간 두거나 디캔팅을 하면서 온도가 올라가서 맛이 부드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즉, 온도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니까, 구태여 코르크를 따서 둘 필요는 없는 것이다.
빈티지
“와인은 빈티지 차트를 보고 골라야 한다.” 빈티지에 따른 맛의 차이는 아주 비싼 와인에만 해당되는 얘기다. 고급 와인은 빈티지에 따라서 그 값의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나기 때문에 똑같은 샤토의 와인이라도 빈티지에 따라서 값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미 빈티지의 좋고 나쁨이 가격에 반영이 되어있다는 얘기다. 구태여 빈티지 차트를 꺼내 볼 필요도 없이 비싼 것이 좋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값싼 와인은 빈티지가 달라도 그 맛이 그 맛이고 가격도 거기서 거기다. 이런 값싼 와인은 빈티지를 보고 가장 최근 것을 구입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결국 값싼 와인의 빈티지란 제조연도를 확인하는 역할밖에는 못한다.
와인 마시는 것과 감정하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왜 와인에 대해서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색깔을 보고 향을 맡고 혀를 굴리면서 맛을 보라고 까다롭게 구는 것일까? 이는 사람들이 와인 마시는 것과 와인을 감정, 즉 평가하는 일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와인을 마실 때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이고, 와인을 감정한다는 것은 와인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엄밀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와인을 감정할 때는 규격에 맞는 잔을 선택하고 체온이 전달되지 않도록 잔의 아랫부분을 잡고 색깔, 향, 맛 등을 조심스럽게 살펴야 한다. 그렇지만 식사 때나 모임에서 와인을 마실 때는 즐겁고 편하게 마시면 된다. 오히려 따라 준 와인을 밝은 곳에 대고 색깔을 살펴보고 코를 깊숙이 집어넣어 냄새를 맡는다면, 좋은 것인지 아닌지 따지는 셈이 되어 상대에게 실례가 될 것이다.
와인은 과학으로 풀어야
와인 이론에는 반드시 그에 맞는 과학적인 증거가 있다. 막연하게 그러려니 하는 느낌이나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이론은 와인을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혼란만 더해준다. 와인은 지구과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등 종합적인 과학 이론의 바탕 위에서 완성되는 과학의 산물이다. 어디서 어떻게 들은 이론이든 반드시 그 이유를 따지고 물어야 올바른 이론을 배우게 된다. 어설픈 소문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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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준철 (Jun Cheol Kim)
(한국와인협회 회장,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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