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철의 진정한 매너

2021.04.21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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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매너

 



와인 에티켓

와인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와인 에티켓일 것이다. 유럽 사람과 비즈니스를 하다가 레드와인 글라스에 화이트와인을 따랐다는 이유로 어떤 기업의 파리지점장이 해고됐다든가, 원샷을 해서 비즈니스가 깨졌다든가, 레스토랑에서 요리에 후추나 소금을 좀 넣었더니 주방장이 테이블까지 와서 불만을 토로했다는 등, 이런 것들을 테이블매너라고 겁을 주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글로벌 매너를 가진 사람이라면, “한국의 전통 음주문화란 이런 것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 나라의 습관을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한다. 매너 좋은 사람이란 이런 아량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에티켓이란?

Etiquette을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예절, 예법 혹은 불문율이란 뜻으로 나오지만, 불어사전에는 꼬리표, 라벨 이런 뜻에 예의범절의 뜻이 추가되어 있다. 또 Etiqueter(에티크테)란 “꼬리표를 붙이다.” Etiqueteur(에티크퇴르)는 “꼬리표를 다는 사람”이란 뜻이다. 독일어의 Etikett(에티케트), 이탈리아어의 Etichetta(에티케타), 스페인어의 Etiqueta(에티케타) 모두 이렇게 두 가지 뜻을 담고 있다.


에티켓이 이렇게 무언가 써 놓은 꼬리표의 뜻에서 예의범절로 바뀐 유래는 루이 14세가 지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나온 것이다. 베르사유 궁전은 화려하기로 유명하지만, 화장실이 없었다. 수많은 귀족들이 잔디 위에 실례를 했다고 한다. 참다 못한 정원사는 잔디 위에 “X X 금지”라는 팻말을 세웠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정원사는 하는 수없이 왕에게 하소연을 했다. 왕은 부하들을 불러놓고 “에티켓대로 해!” 이렇게 명령을 내렸다. 이때부터 에티켓은 지켜야 할 예절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에티켓은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게 하는 부정적인 요소가 많고,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를 따지게 된다.

 



와인은 한 손으로 따른다고?

“와인은 한 손으로 따르며, 받는 사람은 아무런 동작을 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와인 에티켓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자리에서 우리 식으로 두 손으로 와인을 따르면 좀 안다는 사람이 “와인은 한 손으로 따르는 것이다.”라고 얘기해주기도 하지만, 이런 태도는 서양의 관습이다. 우리나라에서 윗사람에게 와인을 따를 때는 우리 식으로 두 손으로 정중하게 따르는 것이 예의다. 서양 사람들은 모든 음료, 더 나아가 모든 물건을 나이가 많건 적건 한 손으로 주고받는다. 그러니까 와인도 한 손으로 따르는 것이다. 또 외국인과 와인을 마실 때 두 손으로 따른다고 해도 실례되는 행동은 아니다. 오히려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서양 술이라도 우리나라에 들어 왔으면 우리 관습을 따라야 한다. 위스키, 코냑, 맥주 등은 윗사람에게 두 손으로 따르면서 왜 와인만은 한 손으로 따라야 한다고 주장할까? 말이 안 된다.

 



와인하는 사람들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는 '와인하는 사람들'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게 잘 쓰이고 있다. 이 말은 꼭 와인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만을 뜻하지는 않고,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포함되니까,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드는 사람이 없다시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와인을 수입하고 유통시키는 사람, 와인을 서비스하는 사람, 와인 마니아 모두를 이렇게 부르는 것이 편하다.


이들 중 진상들이 레스토랑에서 와인 마시는 것을 보면 가관이다. 이야기하면서도 글라스를 계속 흔들어 대고 있고, 코를 글라스에 집어넣고 킁킁거리고, 입에 넣고도 후르륵 거리면서 온갖 호들갑을 다 떤다. 식사시간에 가글을 하다시피 요란스러우니 주변 사람들에게 큰 실례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고개를 갸우뚱해보고,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용어를 써가면서 향을 묘사하는 등 갖은 폼을 다 잡고 있다. 이런 동작은 칸막이가 되어있는 와인 테이스팅 룸에서나 하는 일이다. 식사 때나 모임에서 와인을 마실 때는 즐겁고 편하게 마시면 된다. 와인을 마시는 자리는 즐거움이 목적이다.


그리고 와인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면서 목에 힘이 들어가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게다가 매스컴 좀 타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와인에 대해서는 자기가 최고라는 의식이 꽉 박혀 있다. 와인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실 분들이 왜 이런 태도를 취하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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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꼴불견은 외국 업체가 주최하는 시음회 등을 가보면, 분명히 통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어나 영어 실력을 자랑하느라고 원어로 질문을 한다. 더욱 더 가관은 질문하기 전에 자기의 외국 경력을 화려하게 나열하는 사람도 많다. 통역하시는 분을 무시하고 주최 측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에 방해가 된다.


이런 분들이라고 해봐야 남들보다 쬐금 먼저 와인에 대해 관심을 가졌거나, 어학실력이 좋아서 외국 와인 책을 쉽게 소화하거나,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서 외국여행을 많이 하고, 좋다는 와인을 많이 마셔본 것밖에 더 있을까? 벼는 익어갈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평범한 진리를 생각해 볼 때다.

 



격식보다는 지식

수많은 기업이나 단체에서 와인을 격식 위주로 교육을 하고 있지만, 크게 잘못된 것이다. 좋은 와인과 음식이 나왔을 때는 그 맛과 향을 음미하고, 이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며, 그에 얽힌 역사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해박한 지식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정도면 국제화 시대 최고의 사교수단으로서 와인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어설픈 지식에 세련된 격식으로 와인을 마시다가 옆 사람이 와인을 잘 아는 사람으로 착각을 하고 그 와인에 대해서 묻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차라리 와인을 잘 모른다고 이야기하면서 어떤 와인인지 묻는 것이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예의란 언제, 어디서든지 상대방을 기분 좋게 배려해 주는 것이다. 아무리 엄한 예법이라 하더라도 상대가 기분이 나쁘다면 그것은 실례가 된다. 와인은 격식으로 마시는 술이 아니고, 지식으로 마시는 술이다.

 



진정한 매너란?

이제는 와인하는 사람들도 한 차원 더 높여서 외국의 새로운 정보를 교환하고, 내 분야가 아닌 것에 대한 지식도 얻어듣고,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의 잘못된 점도 수정하고, 와인을 꽤 안다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거침없이 질문을 하고 공격을 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만들어야 하다. Manner(매너)는 라틴어 Maus(손)와 Arius(방식)의 합성어로서 몸가짐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매너가 좋다 혹은 나쁘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에서 와인 좀 안다는 사람들을 보면, 에티켓을 지키는 사람은 많아도 매너 좋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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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김준철 (Jun Cheol Kim)

(한국와인협회 회장, 김준철와인스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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