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와인의 등급 총정리(1)
독일와인의 등급 총정리(1)
독일이 연방 차원에서 처음으로 와인에 관한 규정을 도입한 것은 1892년이다. 총 13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법은 ‘Gesetz, betreffend den Verkehr mit Wein, weinhaltigen und weinähnlichen Getränken(와인, 와인이 들어간 그리고 와인과 유사한 음료의 유통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을 가졌고 가당(加糖)과 와인의 위조에 대해서 주로 규정하고 있다(Deutsches Reichsgesetzblatt Band 1892, Nr. 27, Seite 597~600). 그 후 1901년의 개정에 의해 처음으로 와인에 대한 개념을 정의했다(Deutsches Reichsgesetzblatt Band 1901, Nr. 19, Seite 175~181). 이에 따르면(제1조) 와인은 “포도즙의 알코올 발효를 통해서 생산된 음료”이다. 이 정의는 그 후에 독일 내에서 법의 개정에 의해 구체적으로 변경되었지만 지금은 유럽연합에서 관장하기 때문에 현재의 독일 와인법은 더 이상 와인에 대한 개념정의를 하지 않고 있다.
와인법(Weingesetz)이라는 이름을 가진 와인에 대한 규정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09년의 일이다(Deutsches Reichsgesetzblatt Band 1909, Nr. 20, Seite 393~402). 그리고 마침내 1969년의 와인법 개정(Bundesgesetzblatt Teil I, 1969, Nr. 60)에 의해서 독일와인의 등급이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1969년의 독일 와인법 규정>
1969년의 와인법 제11조는 크발리테츠바인(Qualitätswein = Quality Wine), 제12조는 크발리테츠바인 밋 프레디카트(Qualitätswein mit Prädikat = Quality Wine with Attribute), 제14조는 티쉬바인(Tischwein = Table Wine)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티쉬바인 – 크발리테츠바인 – 크발리테츠바인 밋 프레디카트의 순서로 등급을 정한 것을 알 수 있다. 1969년의 와인법에 의하면 크발리테츠바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검사번호(Prüfungsnummer)인데, 일정한 와인산지에서 특정의 포도품종으로 생산되고 포도즙의 무게(Mostgewicht)가 다른 법령에서 정해진 것을 초과해야 하고, 칼라, 향, 맛에 있어서 결함이 없고, 와인산지와 포도품종의 특성을 잘 살렸을 때 검사번호가 부여된다. 크발리테츠바인 밋 프레디카트(Qualitätswein mit Prädikat)의 경우에는 다시 카비넷(Kabinett), 슈페트레제(Spätlese), 아우스레제(Auslese), 베렌아우스레제(Beerenauslese),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Trockenbeerenauslese)로 구분한다. 아이스바인(Eiswein)은 독자적인 것이 아니고, 카비넷에서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까지의 등급 중의 하나와 병행해서만 사용할 수 있었는데(“Das Prädikat Eiswein darf nur neben einem der anderen Prädikate zuerkannt und gebraucht werden”), 포도를 수확하고 압착할 때 포도가 얼어있는 경우로 제한했다. 크발리테츠바인과 크발리테츠바인 밋 프레디카트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는 티쉬바인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당시의 와인법은 규정하고 있다.
현재의 와인 등급과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설명하기로 한다),그 기준은 대체로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고 있다.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는 ‘왜 1969년의 와인등급에서 와인산지의 범위나 포도밭이 아니라 포도즙의 무게가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이다(포도가 잘 익어서 당분이 많으면 포도즙의 무게가 더 나간다). 이에 대해서 독일 국가공인 와인 컨설턴트인 황만수 대표는 <와인은>이라는 책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를 요약해 보면 크게 다음과 같은 세가지 요소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독일은 중요한 와인생산국 중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일조량이 부족한 편이었다. 198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10년 동안의 빈티지 중에서 좋은 빈티지가 나오는 것은 3~4 차례에 불과했다. 따라서 포도의 당도는 독일와인의 생산에서 아주 절실한 문제였다.
둘째, 1969년에 독일와인의 등급이 도입되었을 때 정권을 잡고 있었던 것은 노동자의 입장을 더 대변하는 사민당(SPD)이었다. 따라서 특정 포도밭이나 와이너리에 등급을 부여하는 것보다 포도의 당도를 기준으로 삼아 다수의 생산자에게 균등한 혜택을 부여하는 것을 선호했을 것이다.
셋째, 양조의 기술이 발달해서 포도밭이나 와이너리와 같은 조금은 추상적인 기준보다는 포도즙의 무게와 같은 객관적인 기준을 더 매력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1969년의 와인등급 도입으로 인해서 독일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배경이 있다. 세계 3대 와인생산국인 이 나라들이 로마식 와인법 제도를 택한 반면에 독일은 오스트리아와 마찬가지로 게르만식 와인법 제도를 택하고 있다고 설명하는데 이러한 설명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로마식 와인법 제도의 국가에서는 와인산지가 더 중요하고, 게르만식 와인법 제도의 국가에서는 포도품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누군가가 “너 어제 어떤 와인 마셨어?”라고 묻는다면 “보르도 레드 마셨어.” 혹은 “부르고뉴 화이트 마셨어.”라고 대답하지 포도품종을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에 독일에서는 “리슬링 마셨어.” 식의 대답이 “모젤에서 생산된 화이트 마셨어.”라는 대답보다 더 흔하다. 이러한 차이는 와인의 레이블에서도 나타난다. 로마식 와인법의 국가에서는 레이블에 와인산지가 더 강조되어 있고, 게르만식 와인법 국가에서는 레이블에 포도품종이 더 강조되어 있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배경하에 와인등급의 기준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와인에 대한 이해는 바로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물론 독일에서 포도밭의 등급을 시도해본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심지어 독일의 와인 역사학자인 다니엘 데커(Daniel Decker)가 2011년에 밝혀낸 바와 같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밭 등급 지도는 1867년에 만들어진 라인가우의 포도밭 등급 지도(Weinbau-Karte des Nassauischen Rheingau’s)이다. 1868년에는 모젤의 포도밭 등급 지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도는 당시 세금을 매기는데 활용되었을 뿐이며 현대적인 와인의 등급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라인가우의 포도밭 등급 지도>
다음 글에서는 1969년 이후의 독일와인 등급의 변화에 대해서 설명하기로 한다.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Wine Writer / Consultant / University Lecturer
Asia Director of Asia Wine Tr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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