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여, 메를로(Merlot) 를 사수하라!
보르도여, 메를로(Merlot) 를 사수하라!
우리는 다음과 같은 표현에 익숙하지가 않다; “삼척 한라봉 아가씨 선발대회”, “신의주 능금 축제”. 또는 한류성 어류인 가자미, 명태가 동해로 내려오지 않아 선장님들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조업허가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기이한 현상들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변화일 수 있다. 천천히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는 지구의 기온상승은 지금까지 익숙했던 우리의 많은 습관을 바뀌게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지난번, 보르도대학 산하기관인 와인연구소에서 어느 교수님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서 공유하기 위해서 적어본다. 연구소에서는 현재 250명 정도의 직원들이 포도재배, 와인양조, 마켓팅 등을 세부조직화해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필자의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품종개발, 포도재배방법에 대한 설명이었다.
와인 매니아라면 보르도 지도 한번쯤은 펼치지 않나 싶다. 지리시험을 앞둔 학생처럼 지롱드 강이 있고, 지롱드 강을 왼쪽으로 좌안(Left bank)에는 메독이 있고, 우안(Right bank)에는 생떼밀리옹이 있고, 주 품종에는… 이렇게 외우기 시작한다. 보르도의 주 포도품종의 하나인 메를로(Merlot)는 생떼밀리옹에 많이 심어져 있다.
한국에서 열무 씨를 가져와서 보르도에 심으면 열무가 거의 자라질 못한다. 이유는 토양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메를로(Merlot)가 생떼밀리옹에 많이 심어져 있는 이유는 진흙, 석회석의 차가운 성질을 가진 토양에 적합한 포도품종으로 메를로가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표면의 온도상승은 환경에 민감한 메를로 재배에도 영향을 준다. 더욱이 지구온난화로 지표면의 온도상승은 해수면의 상승속도보다 두 배정도로 빠르게 진행된다고 한다. 메를로의 포도알갱이의 크기는 보르도의 다른 포도품종보다 크다. 포도의 알갱이가 크다는 것은 포도즙을 더 많이 내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메를로의 포도껍질은 다른 품종보다 얇기 때문에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나, 메를로 포도는 수확시기를 정하는 게 다른 품종보다 까다롭다. 메를로의 아로마는8월 중순부터9월 초까지 집중적으로 발달이 된다. 9월 중순이 지나면서 메를로의 포도수확시기를 잘못 잡으면 메를로의 얇은 껍질은 쉽게 터져버리고, 이로 인해 질병발생률도 높아진다. 더욱이 포도의 당도만 올라가고 산도를 잃어버린다면, 와인을 장기적으로 보관할 때도 문제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와인의 맛에도 영향을 준다.
또한 지구의 온도의 상승은 포도의 당분을 향상시킨다. 먹는 과일의 당분이 향상된다는 것은 일반 과수농가로서는 좋은 소식이지만,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그렇게 이롭다고만은 할 수 없다. 와인양조는 포도즙에 있는 당분을 이스트(효모)가 먹으면서 당분이 알코올로 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당분이 많으면 알코올이 높아지고, 당분이 적으면 알코올이 그만큼 높아지지 않는다. 예전의 보르도 와인의 알코올 도수는12도가 대세였다. 하지만 현재 보르도 와인은13도 또는13,5도의 알코올 도수가 일반적이 되었고, 2015년 빈티지 와인은14도 또는14,5도 까지도 된다고 하는 설명을 필자는 여러 샤토에서 들었다. 이러한 높은 알코올의 와인은 와인애호가들의 건강에도 영향을 준다. 연구소 교수님은 이런 보르도 와인의 고알코올화를 막기 위해서 새로운 이스트(효모)를 연구 중이라고 한다. 포도즙에 있는 당분을 분해만 하고 알코올을 12도 정도에서 멈추게 할 수 있는 효모를 개발 중이라는 설명이다.
프랑스는Cool Climate에 속해있는 와인재배지역이다. Cool Climate 메를로의 특징이라면 미네랄, 허브, 흙 향 그리고 너무 무겁지 않은body 감이지만, 이런 구조는 Warm Climate메를로의 구조로 바뀔 수도 있다. 연구소 교수님은 필자에게 충격적인 이야기 하나를 해주었다. “이렇게 온난화가 지속된다면, 앞으로 20년 후에는 보르도에서 메를로를 볼 수가 없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물론, 교수님의 한마디를 경고라고 이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면에2000년 이상을 재배해온 메를로가 20년 후에는 없어진다는 말에 코웃음 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 또한20년 후, 50년 후라도 보르도에서 메를로를 재배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보르도의 주 포도품종 중 하나인 말벡(Malbec)이 있다. 말벡 포도품종은 보르도에서 많이 사용되었지만, 1956년 서리의 피해를 입은 후에는 보르도보다는 보르도에서2시간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꺄오(Cahors)라고 하는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고 있다. 말벡의 특징은 조금 더 높은 온도와 더 많은 햇볕을 필요로 한다. 지구의 온난화를 현실로 보여주듯 요 근래 샤토를 방문하면서 느끼는 것은 말벡 포도품종을 다시 심는 곳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마치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오듯 말이다.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가 노력한다면 속도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교수님이 던진 “보르도에서20년 후에는 메를로를 볼 수도 없다.”는 한마디에 이 글을 쓰게 됐다. 100% 카베르네 소비뇽의 페트뤼스는 좀~~~~
+WRITTEN BY 정민영 (Min Yo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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