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영의 보르도 샤토 방문기 ‘열여섯 번째’ - 샤토 팔메(Château Palmer)
프랑스 그랑 크뤼 샤토 이름 중에는 영국 장군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곳들이 있다.
샤토 탈보(Château Talbot)가 그렇고 샤토 팔메(Château Palmer)도 그렇다.
혹시라도 누군가는 “예전에 프랑스 아키텐 주는 영국령이었기 때문에 탈보 장군이나 팔메 장군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전혀 거부감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고 할 것이다.
맞다! 프랑스 아키텐 주는 1154년부터 1453년까지 약 300년 동안 영국령이었다.
탈보 장군은 1400년대 영국 장군이었지만 팔메 장군은 18세기 영국 장군이다.
물론 팔메라는 영국 장군의 이름을 사용했다고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우리도 거리에서 로바다야끼, 이자까야, 오꼬노미 야끼… 등등 자주 볼 수 있지 않은가?
언제나처럼 오늘도 샤토 방문은 오후 2시 30분이다.
나는 이곳 보르도를 방문한 두 분의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샤토 팔메를 방문했다.
전에 친분을 열심히 쌓았던 사무실 직원은 사무실 일에 별 흥미를 못 느껴서 와인 양조 쪽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그리고 그 자리를 젊은 아가씨가 이어 받아 샤토 방문객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이름은 한 번 들으면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특이한 이름이다.
그날은 나 말고 미국 악센트를 사용하는 가족 단위로 보이는 여섯 명의 그룹이 더 있었다.
그런데, 가족 중 할머니 한 분이 몸이 편하지가 않으셔서 투어를 하는 도중에 잠시 쉬어야겠다고 하며 그룹을 이탈(?)할 때, 할머님을 부축하던 할아버지도 같이 나가시면서 총 인원수는 네 명으로 줄어들었다.
샤토 팔메는 현재 포도밭의 20%를 바이오 인증기관인 Ecocert로부터 인증 받았고, 2014년에는 ‘바이오 다이나믹’ 등록을 한 상태이고 2017년까지는 이를 인증 받기 위해 눈에 눈물 고이고, 종아리에 알 배기도록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샤토 팔메에 대한 수식어는 많이 있다. 그랑 크뤼 3등급에 이름을 올리고는 있지만, 1등급 못지않은 와인을 생산하고 있어서 ‘Super third’ 또는 ‘비운의 3등급’… 등등의 닉네임이 붙어있다. 1855년 그랑 크뤼 등급체계를 정할 때, 어떤 요소와 기준에 의해서 등급이 이루어졌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와인의 가격, 포도밭의 규모, 와인의 질, 인지도… 등이 포함되었겠지만 나는 샤토의 건물도 포함이 되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을 해 본다. 샤토 팔메가 그 비운의 3등급이 된 사연을 혼자서 되짚어 본다.
샤토 팔메의 홈페이지에 나온 이야기를 좀 빌려 적어보면서 내 생각을 섞어보자. 팔메 장군은 1814년에 프랑스 발령을 받아 왔고, 그로부터 2년 후부터 15년간 마고 지역 근처의 포도밭들과 건물들을 사서 모으기 시작했지만, 보르도 보다는 영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이쪽 보르도는 재산 관리인을 두고 운영했지만, 주인 없는 식당은 제대로 돌아가지가 않는 법이다. 땅문서, 집문서는 1843년에 Caisse Hypothécaire라는 은행에 의해 관리되었다. 그러다 나타난 피에르 형제가 1853년에 샤토 팔메를 은행으로부터 구입해 집문서, 땅문서를 건네 받는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항 하나는 피에르 형제(형:Emile, 동생:Isaac)는 세계 금융권을 쥐었다 편다 한다는 ‘로칠드(Rothschild) 가문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을 비벼보도록 하자. 로칠드 가문에서는 샤토 라피트 로칠드를 소유하고 있었고, 사촌이 샤토 무통 로칠드도 가지고 있었으니까 피에르 형제들도 그에 지지 않으려고 상징적으로 샤토를 소유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지 않았을까? 게다가, 금융계 찌라시처럼 당연히 2년 후에는 파리 세계 박람회가 있을 예정이고, 와인에 대해서 등급을 나눌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시간적으로 따져 보면 이것은 금융가의 찌라시가 아니었다. 1855년 파리 세계무역박람회(5월15일부터 11월15일까지)가 열린다고 발표를 한 것은 2년 전인 1853년 3월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개최할 때도 4년 전에 미리 다음 개최국을 발표하는 것과 맥락이 같다고 볼 수 있다.
피에르 형제는 이 기회를 잡아서 상한가를 치려고 했을 것이다. 불꽃 쇼를 볼 찬스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2년도 채 남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피에르 형제는 돈과 시간과 열정을 샤토 팔메에 쏟아부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랑 크뤼 3등급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여기서 내 개인적인 의견을 적어보자. 도대체 왜? 샤토 팔메가 3등급의 문패를 걸어놓아야만 했었을까? 아마도 샤토 팔메가 3등급을 받았던 가장 큰 원인은 샤토의 건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 당시 샤토 팔메의 건물은 지금 우리가 보는 원뿔 형태의 성이 아니었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 샤토 오브리옹, 샤토 마고, 샤토 라스콤, 샤토 듀크뤼 보까이유 등등은 샤토 건물자체가 한 몫 하고 들어간다. 샤토 무통 로칠드 또한 그 당시만 해도 보란 듯한 샤토 건물이 없었다. 그래서 1등급으로 치고 올라가지 못한 요소가 됐고, 샤토 팔메 또한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게 나의 잠꼬대 같은 추측이다.
하지만 피에르 형제는 샤토 팔메의 3등급 결과에 실망하지 않았다. 더욱 더 노력을 했다. 1년 뒤인 1856년에는 유명한 건축가 Charles Burgeut에게 샤토 건물의 증축을 의뢰했고, 그 증축한 샤토의 모습을 지금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Charles Burgeut는 보르도의 쟁쟁한 건물을 설계한 전설적인 건축가이다. 보르도로 관광 오는 여행객들이 제일 많이 사진 찍는 물의 광장의 배경이 되는 Bourse 건물, 그리고 보르도 대극장과 이어지는 Côté Cours du Chateau-Rouge 또한 그의 작품들이다. 혹시 위의 건축물들을 잘 모른다면… 그랑 크뤼 샤토 건물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2등급의 샤토 피숑 롱그빌 바롱(Chateau Pichon Longueville Baron) 또한 Charles Burgeut가 건축 설계한 것이다. 그래서 샤토 팔메의 건물과 샤토 피숑 롱그빌 바롱은 한 배(어머니)에서 나온 멋지고 귀족적인 형제 같은 외모를 하고 있다.
이제 테이스팅 룸에서 일어났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자. 나와 같이 샤토 설명을 들었던 미국 가족들과 테이스팅 룸으로 들어가자, 조금 전 몸이 편하지 않으셨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소파에 앉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미국 가족 중 한 명이 내가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으니까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묻는 것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보르도인데 한국 사람이에요”라고 대답하자, 미국 가족을 데리고 왔던 나이 드신 프랑스 여성 가이드 분이 나에게 “한국사람이세요??”라고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묻는 것이다.“네?”하고 웃음 먼저 나왔다. 나는 그분에게 “한국말 할 줄 아세요?”라고 묻자, 그 여성분은 “아~네, 전에는 잘했는데, 지금은 많이 잊어버렸어요”라고 미녀들의 수다에 나올 만큼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것이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미국 가족은 나와 그분과의 한국어 대화에 호기심 있게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 여성 가이드 분은 나에게 “전남대학교에서 1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말을 사용하지 않아서 많이 잊어버렸습니다.”라고 너무나도 또렷또렷하게 발음을 하는 것이다. 그분은 한국어를 포함해서 7개국 언어가 가능한 언어의 마술사 같았다.
외국에서 한국어로 쓰여진 티셔츠만 입고 다니는 외국인을 만나도 반가운데… 덕분(?)에 미국 가족과 샤토 직원은 예상치 않은 외국어 퍼포먼스에 같이 좋아해 주었다. 정말이지 모국어라는 게… 외국어는 아무리 공부해도 잘 안 들리는데 한국어는 누가 작은 소리로 소곤거리기만 해도 엄청 크게 들린단 말이야! 그래서 어머님의 언어라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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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정민영 (Min Yo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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