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영의 보르도 샤토 방문기 ‘열일곱 번째 – 샤토 뒤크뤼 보까이유(Château Ducru-Beaucaillou)
정민영의 보르도 샤토 방문기
‘열일곱 번째 – 샤토 뒤크뤼 보까이유(Château Ducru-Beaucaillou)
2013년도인가? 도올 김용옥 선생의 따님인 김미루씨가 돼지우리에서 104시간을 돼지하고 같이 있으면서 누드 행위를 하는 행위예술의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어 화제가 됐었다.
개인적으로는 행위예술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비디오 아티스트였던 백남준 선생님이다.
물론 다른 행위예술가들을 잘 알고 있다는 소리는 아니다.
필자가 1993년에 대전 엑스포에서 일을 했었을 때, 우연히 만난 백남준 선생님과 같이 사진을 찍는 영광도 있었다. 행위예술을 하는 예술인들은 실력이나 명성을 계산에 넣지 않고, 기본적으로 본인이 하고 싶은 일,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예술인들을 필자는 존경한다. 왜? 그분들은 누구의 의견을 듣고 하는 것도 아니고, 100% 본인의 의지와 창조성만으로 표현한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돼지하고 104시간이면 나흘하고도 반나절 정도를 돼지우리에서 생활한 게 되고, 사람들 모아놓고 그 비싼 그랜드 피아노를 때려 부수는 행동, 붓 대신에 여자 머리카락에 먹물을 찍어서 글씨를 쓰는 행동… 이런 행동들은 창조성이라는 뇌의 명령이 없다면 못할 것이다.
샤토 뒤크뤼 보까이유(Château Ducru-Beaucaillou)를 방문했을 때 샤토는 굉장히 조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사무실 쪽으로 걸어가다가 필자는 움찔했다.
샤또 건물의 한 귀퉁이 창문 안 쪽에서 메이드 복장을 한 젊은 여성이 창문을 닦다가 뚱뚱한 동양인의 방문에 일 손을 잠시 놓고 필자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휴~ 낮에 봤으니 이정도 놀랐지, 밤에 봤으면…” 그리고는 놀란 가슴 뒤로 영화배우 전도연 주연의 ‘하녀’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단지, 샤토에서 메이드 복장을 한 젊은 가사 도우미를 본 것 만으로도 필자는 다시 한번 “내가 유럽에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다.
샤토의 사무실이 어디 있지? 하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데 건물 안에서 한 눈에 봐도 아주 귀품(貴品)이 묻어나는 여성 한 분이 나에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그 분은 얼굴에 미소를 강력 접착제로 붙여 놓은 것처럼 온화한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질 않았다. 다정스러운 말투, 부드러운 모든 행동에서 귀품이 흘러 넘쳤다. 표현 그대로 귀부인이었다. 그리고는 필자를 사무실이 아닌 가정집(?) 거실 같은 곳으로 안내를 해주시더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거실에는 사냥할 때 사용 했을 것 같던 총 한 자루와 사슴 한 마리가 박제되어 벽에 전시 되어 있었다. 아마도 귀부인의 남편 분 아니면 그 귀부인의 부친께서 사냥을 좋아하셨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묻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현재 안 계시는 가족 분을 또 생각나게 할까 봐서… 잠시 후, 그 귀부인은 2층에서부터 조심스럽게 한 계단 한 계단 내려오셨다. 손에는 둘둘 말아진 종이 한 점이 쥐어져 있었다. 마치 조선시대 사또가 다른 고을 사또에게 파발을 띄우는 것처럼 두루마리로 정성스럽게 둘둘 말려져 있었다. 그리고는 말려져 있는 종이를 조심스럽게 펼치시는 것이다. 종이에는 샤토 뒤크뤼 보까이유가 그려져 있었다. 웃으시면서 다시 깔끔하게 둘둘 말아서는 선뜻 필자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나 참 별일일세! 필자는 사무실을 찾고 있었는데, 이게 왠 횡재야! 감사하는 표현을 몇 번을 했다.
귀부인은 필자를 데리고 다시 사무실로 안내를 해주시는 것이다.
사무실에 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다른 직원을 불러서 필자에게 샤토 안내를 하게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는 본인은 약속이 있어서 나가봐야 한다고 하면서, 다음에 다시 들르라는 인사를 하고는 샤토를 떠났다.
이번에는 아주 마음씨 좋을 것 같은 할아버지(?) 한 분에게 필자는 인수인계가 됐다.
할아버지는 검은색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샤토 투어가 시작 되기 전에 그 할아버지는 자신의 소개를 먼저 했다. 그 분이 샤토 뒤크뤼 보까이유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 32년 전이란다.
그러니깐 자신의 젊음을 샤토와 같이 한 셈이다. 샤또 뒤크뤼 보까이유는 그랑 크뤼 중에서도 2등급에 속해 있고 아주 아담하고 예쁜 샤토를 가지고 있다. 위치적으로도 지롱드 강에서 멀지 않고, 정확하게 거리를 재보지는 않았지만 지롱드 강에서 400m 정도 떨어져 있을 것 같다.
할아버지는 샤토의 이름의 유래를 설명했다. 포도밭에서 큰 자갈 하나를 손으로 들더니 “자 봐봐, 예쁘지? 여기에 예쁜 자갈이 많아서 샤토 이름이 유래됐어!” 하면서 웃으시는 것이다. 그 말을 들어서 그런지 자갈이 잘 구어 진 찐 감자 같아 보였다. 프랑스어로 Beaucaillou는 예쁜 자갈이라는 뜻이고 Ducru는 1720년에 Bertrand Ducru라는 사람이 샤토를 구입하면서 Ducru를 붙인 것이란다.
샤토 뒤크뤼 보까이유의 가장 큰 특징은 풍수지리적 위치다. 샤토에서는 포도를 수확하고 VAT(알코올 발효하는 통)로 포도가 옮겨지고, Barrel cellar로 와인이 옮겨지는 데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지형적인 위치로만 와인을 이동시킨다는 것이다. 다시 설명을 하자면, 포도를 수확해서 sorting 작업이 끝나면 VAT로 그리고 다시 VAT에서 Barrel Cellar의 위치가 경사가 졌기 때문에 펌프나 기계를 이용 할 필요가 없이 자연적으로 와인을 옮길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를 최대한 이용한 지혜다.
메독의 그랑 크뤼 샤토 중에는 큰 기업형 회사가 소유를 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개인이 소유를 하고 있다고 해도 샤토에서 주인이 거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샤토 뒤크뤼 보까이유는 가족 중심의 경영 체계이면서, 그 가족이 샤토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점이 다른 그랑 크뤼 샤토와는 다르다.
현재, 샤토 뒤크뤼 보까이유의 포도밭에서는 3종류의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La Croix de Beaucaillou, Château Ducru-Beaucaillou 그리고 Château Lalande Boire가 샤토를 둘러싸고 각각 25헥타르씩의 포도밭에 나누어져 심어져 있다.
“할아버지, 제가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라고 하자, 할아버지는 “말해봐” 하시면서 어깨를 내 손에 살짝 얹으면서 귀를 내 얼굴에 닿을 정도로 가깝게 대는 것이다. 필자는 “조금 전 할머님은 누구세요?”라고 묻자, 할아버지는 또 웃으면서 “안방마님이지. 몰랐어?” 지금은 저 분 아드님이 샤토를 실질적으로 경영하고 있고... 품위 있는 할머니는 이곳에서 7살 인가부터 살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쭈~욱 이곳에서 생활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아~ 아름답다!
샤토 투어가 거의 끝나가고 할아버지는 우리를 와인 테이스팅 룸으로 안내했다. 테이스팅 룸은 고급스럽고 차분하게 꾸며져 있었다. 정원을 바라볼 수 있는 미닫이 문도 구리강판에 포도송이와 포도나무 무늬를 찍어 도려낸 듯했다. 그 문양 사이로 보이는 정원의 꽃들의 색상이 더욱 진하게 보였다. 그리고 중간에는 직사각형의 세면기 같은 것이 놓여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필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와인으로 장미를 그릴 수 있을까? 없을까?” 약간은 특이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수수께기를 낼 때 대답하는 사람이 답을 몰라야 질문하는 사람이 기분이 더욱 좋아지듯이 나는 할아버지가 더욱 신나게 ”에~ 어떻게 와인으로 장미를 그려요? 왜 말 같지도 않은 질문을 하세요?”라고 조금은 과하게 리액션을 보여줬다.
사실 나도 와인으로 장미를 그린다고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역시나 할아버지 얼굴에는 “기분이 좋다. 니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하고 미소를 짓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할아버지는 그 비싼 와인을 세면대 같은 곳에 붓는 게 아닌가! 그러자 와인은 할아버지기 말한 대로 신기하게도 장미모양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냥 세면대에 와인을 부으면 장미는 그려지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장미 모양을 보면서 와인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물과 알코올은 섞이지 않는다. 그리고 와인이 가지고 있는 탄닌 성분이 물과 알코올의 경계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와인은 장미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32년을 샤토에서 보낸 노련미가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할아버지는 필자가 만난 최초의 프랑스 행위예술가였다. 그리고 그 분의 미소 띤 얼굴도 다른 어떤 행위예술보다 감동적이었다.
몇 가지 궁금한 게 떠오른다. 김미루씨가 돼지우리 누드 퍼포먼스가 끝나고 나서도 삼겹살을 먹었을까? 레이디 가가(Lady GaGa)가 입었던 소고기 옷은 도대체 누가 구워 먹었을까?
+WRITTEN BY 정민영 (Min Yo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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