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영의 보르도 샤토 방문기 ‘스무 번째’ – 샤토 라 콩세이엉트(Château La Conseillante)
정민영의 보르도 샤토 방문기 ‘스무 번째’ – 샤토 라 콩세이엉트(Château La Conseillante)
얼마 전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면서 적어놓은 글이다.
“행복이라는 게 별거 있나? 미쉘 롤랑이 나와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행복이지!”
미쉘 롤랑(Michel Rolland)이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그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로버트 파커 은퇴 이후, 세계 와인업계에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두 사람 중에 한 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또 한 사람은 누구일까? 닐 마틴(Neal Martin)이라고 하는 영국인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고 누가 정했냐?”라고 묻지 마세요.
그냥, 이 글을 읽는데 집중이 될까 해서 적었으니… ㅎㅎㅎ
감히 내가 미쉘 롤랑을 짧게 표현한다면, 와인의 맥을 잘 짚는 어의! 또는 풍수지리에 도통한 지관! 이라고 하고 싶다. 미쉘 롤랑이 전세계에 소유하고 있는 샤토만해도 13개가 되고, 보르도 근교의 100개 가까운 샤토에서 와인 양조뿐만 아니라 포도밭 관리까지 그의 도움을 받고 있다. 미쉘 롤랑은 이런 식으로 각각의 샤토에 원 포인트 레슨을 해준다. 오늘 내가 소개하는 샤토는 미쉘 롤랑의 고향인 뽀므롤(Pomerol)에 위치한 샤토 라 콩세이엉트(Château La Conseillante)이다.
샤토 라 콩세이엉트 또한 미쉘 롤랑이 함께 와인 양조에 참여를 하는데, 마침 내가 방문한 날, 포도가 수확이 돼서 들어왔기 때문에 운 좋게 미쉘 롤랑과 같이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었다.
미쉘 롤랑이 그 많은 샤토들을 다니면서 어드바이스를 해 줄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샤토가 가지고 있는 토양과 수확이 되어서 들어오는 포도의 분석 자료를 정확하게 맥을 짚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한 샤토에 머무르는 시간은 오랜 시간이 아니다. 자료를 분석하고,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샤토의 와인 메이커와 의견을 나누고 처방을 내리고 또 다른 샤토로 이동을 하는 게 그의 스타일이다.
샤토 라 콩세이엉트는 그 유명한 페트뤼스와 바로 이웃에 위치하고 있다. 샤토 라 콩세이엉트와 페트뤼스는 서로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깝게 붙어있다. 정확한 거리를 재 본 것은 아니지만, 차로 2분 정도도 안 걸리는 것 같다. 라 콩세이엉트 건물 뒷길로 걸어가면 페트뤼스 포도밭이다.
내가 샤토를 방문했을 때는 포도 수확으로 직원들이 아주 분주했다. 와인 메이커는 포도가 수확돼서 들어오는 공간 확보와 설비 점검에 신경이 곤두서 있어 보였다. 트랙터에는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들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고, 샤토의 직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실수를 줄이기 위해 이것저것 의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알코올 발효를 할 탱크들은 마치 어미 제비가 물어 온 먹이를 달라고 조르듯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새끼 제비 입 모양처럼 보였다.
내가 왔다는 것을 사무실에 알리고 밖에서 잠시 기다리는 동안 포도를 실은 트랙터는 계속해서 샤토로 들어오고 있었다. 수확되어 들어오는 포도 향에 내 코가 호강을 하고 있는 사이 사무실에서 여성분이 나왔다.
왠지 매니저 급 같아 보이는, 필라테스 강사처럼 몸에 군살이 하나도 없는 여성이 나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직원은 간단한 샤토의 역사와 함께 주위의 샤토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름을 말해줬다.
“저기 앞에 있는 샤토가 레방질이고요, 그리고 요 뒤에 있는 샤토가 페트뤼스예요. 우리 포도밭은 페트뤼스와 붙어있어요.”라고 말한 뒤 “포도밭은 붙어있지만, 와인 가격은 차이가 많이 납니다.”라고 첨언하면서 작은 미소를 보였다. 여기서 잠깐 토양에 대한 설명을 해보자.
뽀므롤 지역의 기본적인 토양은 자갈, 진흙과 석회질이다.
물론 진흙과 석회질 토양이 주이기 때문에 메를로 포도 품종이 뽀므롤 지역에서는 주 품종이다.
그런데, 어째서 같이 붙어있는 포도밭의 페트뤼스는 한 병에 기본 140만원이 넘고, 샤토 라 콩세이엉트는 한 병에 20만원이 채 넘지 않는가 말이다. 샤토의 인지도, 마케팅 전략, 와인 맛 등등을 배제하고 토양만 가지고 따져보자. 페트뤼스의 토양은 진흙(Clay) 중에서도 푸른 진흙(Blue clay)이다.
이 Blue clay 토양이 100%로 되어 있는 포도밭은 지구상에 페트뤼스 뿐이다. 물론 샤토 라 콩세이엉트와 샤토 레방질의 포도밭 토양에도 Blue clay가 조금은 포함되어 있지만, 회색 점토(Gray clay)가 주 토양 층이다. 그렇다면 Blue clay는 Gray clay 보다 뭐가 그리 잘났다는 말인가? 통상적으로 Blue clay는 다른 진흙 보다 칼슘과 철분의 함유량이 많다. 그리고 진흙 중에서 가장 강도가 단단하다.
다시 샤토 방문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수확되어 샤토에 도착한 포도들은 옵티칼 머신으로 바로 들어갔다.
옵티칼 소팅 머신이란 포도를 수작업으로 선별하기 전에 1차적으로 포도를 선별하는 기계이다. 1차 기계 선별이란 포도 이외의 불순물뿐만 아니라 포도의 크기, 껍질의 색깔까지도 규격에 맞지 않는 것을 걸러낸다. 에이, 그냥 사람 쓰면 되지, 뭐 이런 기계까지 필요해? 라고 하겠지만, 이론상으로는 사람 25명이 1 시간 동안 할 작업량을 이 기계가 혼자서 12분만에 끝낸다. 1차 포도 선별 작업이 끝나면, 2차적으로 사람이 육안으로 확인해서 최상의 포도만을 와인 양조에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좋은 음식의 첫 번째 조건이 좋은 재료이듯이, 와인도 좋은 포도 선별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요즘 보르도 와인 양조의 유행은 레드 와인의 알코올 발효부터 에이징까지 모두 오크 배럴에서 하는 것이다. 물론 화이트 와인은 전부터 이런 방식으로 한 경우가 많지만, 레드 와인을 이렇게 하는 것은 흔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샤토들이 전면적으로 시스템을 바꾸지는 않고, 시험 삼아 하는 샤토가 늘어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샤토 라 콩세이엉트 또한 이런 샤토들 중에 한 곳이다. 미쉘 롤랑의 와인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조금은 늦은 수확시기, 긴 시간의 침용 기간, 그리고 약간 높은 알코올 도수를 지향하고 있다.
나는 테이스팅 룸으로 안내되었다. 샤토 라 꽁세이엉트는 테이스팅 룸에서는 다른 샤토 보다 보라색이 많이 눈이 띄었다. 와인 캡슐도 보라색, 그리고 심지어 내프킨도 보라색이었다. 나는 직원에게 “샤토에서 보라색을 많이 사용하는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라고 물었다. 물론 속으로 다음과 같은 대답을 기다려봤다. “와인이 병입될 때의 색깔을 상징하기 위해서, 토양의 색깔인 진흙을 더욱 표현하기 위해서, 혹은 중세시대의 귀족들의 고귀함을 상징하기 위해서.”그런데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오너인 니콜라스가 좋아하는 색이 보라색이랍니다.”“아~네!”
그리고는 내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기억의 문신을 뇌에 새긴 사건이 벌어졌다.
테이블에는 2013년과 2005년의 빈티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빈티지가 8년이나 차이가 나니, 두 와인을 비교하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조합이었다. 2013년부터 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2005년 빈티지가 잔에 따라지는 사이 직원과 나는 2013빈티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2005년 빈티지의 와인을 마시는데 뭔가 입 안에서 걸리는 게 있었다. 나는 속으로 “2005년도 빈티지인데 벌써 코르크가 삭기 시작했나?”하면서 내프킨을 찾았다.
입은 못 벌리고 “음~음”의 의성어를 내는 나에게 직원은 보라색 내프킨을 건네 주는 것이다.
그리고는 내 입에서 뭐가 나오나? 하고 지켜봤다. 당연히 샤토의 직원도 코르크가 떨어졌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나 또한 그랬다. 그런데 내가 내프킨에 밷어낸 것은 코르크 부스러기 아니었다.
우리 둘의 예상은 이미 안드로메다에 가있었다.
내 입안에 들어 있었던 이물질이 무엇이었는지는 여기서 밝히지 않겠다.
샤토 직원은 나한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당황했다. 너무 미안해해서 내가 더 미안할 정도였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직원의 잘못도 아니고, 사람이 살면서 그런 경험도 할 수 있는 거지 뭐!
이렇게 가볍게 넘겨야지. 하지만 ‘기억의 지우개’가 있다면 지워버리고 싶은 사건이었다.
조금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울 수 있는 그런 기능을 하는 기억의 지우개로 말이다.
혹시 이 글의 마지막 내용이 샤토 라 콩세이엉트 전체의 와인이라는 오해는 절대로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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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정민영 (Min Yo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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