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영의 보르도 샤토 방문기 ‘스물한 번째’ – 오크통 제작 업체 방문기
정민영의 보르도 샤토 방문기 ‘스물한 번째’ – 오크통 제작 업체 방문기
외도(外道) 한 번 합시다! 여기서 "외도"라고 적었다고 다른 오해를 하는 사람이 없기 바란다.
오늘 내가 "외도"를 하고 싶은 상대는 와인을 생산하는 샤토가 아닌 와인을 숙성시키는 오크통 제작 업체에 대한 기록이다. 지금까지는 샤토 방문기를 많이 써왔지만, 오늘은 와인 오크통 제조업체 방문기이다.
와인과 오크통은 어떤 관계일까? 회사 부장님과 인턴사원과의 관계? 숙제 많이 내 준 선생님과 숙제를 안 해간 학생과의 관계? 내가 생각하는 와인과 오크통과의 관계는 ‘간호사와 환자와의 관계’ 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글 아래쪽에 설명을 하기로 하고, 외도의 현장으로 들어가보자.
프랑스어로 오크통 제작업체를 “Tonnellerie”라고 한다. 2015년 프랑스 오크통 협회의 자료를 인용해 보면 프랑스에서 오크통을 생산하는 업체의 수는 50개이고, 1년에 생산하는 오크통의 수는 592,000개 정도라고 한다. 내가 방문했던 오크통 제작 업체의 이름은 “Nadalie”라고 하는 회사이다. Nadalie 직원의 설명으로는, 본인 회사가 프랑스에서 오크통 제작 규모로는 3위에 랭크가 된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오크통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02년부터라고 하니, 115년의 전통이 있는 오크통 제조 업체이다.
내가 Nadalie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다시 찾은 이유는 일반인에게 관람을 허락하는 “Open House” 같은 개념의 특별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오크통 회사를 방문할 경우, 직원들의 초상권 문제로 방문객이 오크통 제조 과정이 이루어지는 실내 촬영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픈 하우스의 경우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구석구석 사진을 찍는 것을 허락하기 때문에, 단단히 벼르고 집을 출발했다.
내가 Nadalie에 도착한 시간은 9시 30분쯤이었다.
10시부터 행사는 시작된다고 했지만, 이미 많은 방문객들이 Nadalie의 투어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크통을 만드는 회사라고 오크통만 생산을 하는 게 아니고, 와인도 생산을 하고 있었다. 보르도 대표 포도 품종인 까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까베르네 프랑, 쁘띠 베르도, 말벡 등의 다섯 종류의 포도를 혼합해서 만든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방문객이 대략 10명 정도의 그룹이 되면, 회사 직원이 그룹을 인솔해서 공장 견학을 시켜주고 있었다. 내가 속한 그룹은 10명 정도의 성인들과 그리고 엄마, 아빠를 따라 온 아이들. 아이들은 그 곳이 무엇을 하는 곳이지 영문도 모른 채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있었다.
투어는 프랑스어로 진행이 되었다. 그룹에서 외국인은 나 혼자인 것 같았다. 우리를 인솔할 직원은 한 명뿐인 동양인 나에게 “프랑스어로 설명을 해도 괜찮겠어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괜찮습니다. 듣다가 이해가 안되면 질문하겠습니다.”라고 답변했고, 바로 공장 견학은 시작 되었다.
이제 본격적인 방문기로 들어가기 전에 “왜 와인을 오크통에서 숙성을 시키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보자. 지금이야 탄닌, 부케, 색상, 마이크로 옥시젼 등등의 이유로 오크통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시 되어있지만, 초창기에 오크통은 보관과 운반이 다른 어떤 재료보다 용이했기 때문에 사용이 됐었다.
오크나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나무 재질의 통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 맞을 것 같다. 나무통에 와인을 저장, 운반하기 이전에는 흙으로 빚은 항아리를 사용했었다. 하지만 그 옛날 항아리 제조 과정이 지금 같이 견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균열이 생기고, 운반하는 과정에서도 쉽게 깨지는 경우가 발생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소달구지 타고~ 시골길을 지나면~~”이라는 문구는 낭만적인 것 같지만, 포장이 되어있지 않은 자갈과 흙으로 된 시골길에서 소달구지 타면 엉덩이에 굳은 살 배기고, 달구지에서 내려도 머리가 통통 튈 것처럼 시골길은 쿠션이 없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항아리가 운반 도중에 깨졌겠는가? 이런 이유로 인해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안한 재료가 나무였던 것이다. 나무 또한 처음부터 오크나무를 사용했던 것이 아니고,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나무들이 사용됐었다.
예를 들면, 소나무라든지, 밤나무라든지 이런 나무들로 말이다. 그런데 이 소나무라는 애는 아무리 밖에다 비 맞히고, 건조시키고, 햇볕에 썬텐을 시켜도 송진 냄새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이 송진은 와인의 맛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밤나무의 경우 단점은 나무 결이 너무 넓어서 증발하는 와인의 양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천사의 몫”으로 날라가는 양이 “몫”으로 날라가는 게 아니고, 천사들을 알코올 중독 시킬 정도의 양이 빠져나갔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밤나무 통을 처리해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 많았다.
한가지 더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아카시아 나무 또한 사용을 했었다. 아카시아 나무를 사용할 경우 화이트에는 궁합이 맞을 수 있지만, 레드 와인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와인 메이커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요즘 그라브(Grave) 지역에는 몇몇 샤토들이 화이트 와인에 한해서 아카시아 나무를 사용하는 곳도 있기는 하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흐르다 보니, 와인을 저장하는데 가장 이상적이고 유용한 것은 오크나무가 제 격이고 오크통 내부를 가열하고, 가공하면서 얻을 수 있는 추가적인 부케 향들이 와인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와인 숙성과 운반에는 본격적으로 오크나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다시 방문기로 돌아가자.
오크통 생산 공장의 밖에서는 이벤트로 직원들이 오크통을 직접 제작하는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노련하고 숙련된 연세가 있어 보이시는 분과 누가 봐도 논산 훈련소에 방금 머리 깎고 들어온 훈련병처럼 보이는 젊은 직원이 숙련된 분의 잔 심부름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할아버지와 손자와의 관계일 수도 있지만, 그 관계에 대해서 묻지는 않았다.
그때 내 눈에 띈 한 장면!
오크통을 만들기 위해 차곡차곡 쌓아놓은 오크나무 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와인을 마시는 매니아라면 보르도 오크통의 크기는 225리터이고, 부르고뉴 오크통의 크기는 228리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오크통을 만들 때 들어가는 오크나무 조각의 숫자가 보르도는 30개이고, 부르고뉴는 34개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확실하지 않은 이야기). 쌓여져 있는 나무 조각을 한 줄 한 줄 세어보니, 진짜 한 줄에 30개씩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 것이었다.
위에서부터 네 번째 있는 줄은 32개였다.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설명하는 직원에게 내가 궁금한 부분에 대해서 물었다. 하지만 내가 묻는 질문에 직원은 “어~~ 그러네요! 글쎄요~~ 그것이… 전통적인 방법은 모르겠는데요.”라고 하면서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글을 읽는 사람들도 세어보겠지만, 한 줄에 진짜 30개의 나무 조각이 놓여져 있다. 이이기는 UFS다(Unidentified Flying Story). 미확인 비행 썰이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자그마한 사고(?)가 발생했다. 직원이 오크통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손가락이 무엇에 베었는지 피가 조금씩 흐르고 있는 것이었다. 많은 양의 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회사를 방문한 사람들 앞에서 손가락에 피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직원으로서는 절대 마음 편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10명이나 되는 내 그룹에서 직원에게 휴지를 건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다.
어쩌면 피가 흐르는 것을 못 봤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 가방을 뒤적거렸다.
내 가방에는 혹시나 필요할지 몰라서 밴드, 빨간 약, 진통제, 멘토스 등등의 온갖 잡동사니가 몇 개씩 있다.
가끔 이런 잡동사니들이 아주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기 때문에 준비를 해서 다닌다. 나는 가방 안을 뒤져서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밴드 하나를 꺼내서 “저기~ 이거요!”라고 말하며 직원에게 건네주었다. 직원은 마치 지혈을 해준 간호사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는 환자의 눈빛으로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같이 터져 나온 내 그룹의 탄성과 박수소리.
나는 또 가방에서 빨간 약을 꺼내고는 직원에게 “이것도 있는데요~”라고 하자, 방금 전의 내 그룹 일행들의 탄성과 박수소리는 웃음으로 바뀌었다.
참! 작은 것 하나로도 이렇게 다 같이 웃을 수 있다니… 그 간단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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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정민영 (Min Yo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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