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영의 보르도 샤토 방문기 ‘스물세 번째’ -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Château Smith Haut Lafitte)
정민영의 보르도 샤토 방문기 ‘스물세 번째’ -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Château Smith Haut Lafitte)
만약에 나라면 그렇게 했었을 수 있을까? 내가 대한승마협회 임원이고, 내 아들이 마술(馬術) 경기에 참가했는데, 진심으로 추가 점수 없이, 내 눈에 비친 그대로 채점표에 점수를 적어서 운영진에 채점표를 넘길 수 있을까? 아니면, 내 딸아이가 ‘코리아 갓 탤런트’에 출전을 했는데 정말 모른 채하고 실력이 안되면 떨어뜨릴 자신이 있을까? 쉽지만은 않은 결정들이다. 이러한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샤토가 있다. 바로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Château Smith Haut Lafitte)가 그곳이다.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가 위치한 곳은 마띠악(Martillac)이라고 하는 보르도에서 20km 정도 남쪽으로 떨어진 곳이다. 마띠악이라고 하는 지역은 그라브(Grave)라는 지역에 속해있는 작은 마을이다. 1987년, 그러니까 대한민국 88올림픽이 열리기 한 해 전까지만 해도 그라브라는 아펠라씨옹을 사용했었다.
그렇지만 마띠악을 포함한 8개 지역이 그라브 아펠라씨옹에서 독립해서 “뻬싹, 레오냥”이라는 아펠라씨옹을 다시 만들었다. 8개 지역에는 와인 병을 따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만한 샤토 오브리옹, 샤토 빠쁘 끌레멍 등도 포함이 되어있고, 레드뿐만 아니라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서 화이트 와인도 생산한다는 점이 중요한 이유는 "뻬싹,레오냥" 아펠라씨옹을 붙일 수 있다는 점이다. 생떼밀리옹에서 아무리 화이트 와인을 만들어도 생떼밀리옹 화이트라는 것을 붙일 수는 없다. 왜? 생떼밀리옹 아펠라씨옹에는 화이트 와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를 방문한 횟수는 15회 정도가 되는 것 같다. 많이 방문한 것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고, 첫 번째 방문 했을 때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싶어서이다. 요즘은 구글 맵의 프로그램이 잘 되어있어서 샤토의 위치를 정확하게 한 번에 찾을 수 있지만, 내가 처음 샤토를 방문했을 때는 포도밭 한가운데에 나를 데려다 놓고는 GPS가 하는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라는 안내를 듣기가 비일비재했다.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 또한 정확한 주소가 없다. 우편번호와 동네 이름 적혀있는 게 전부다.
포도밭에서 몇 번을 헤매다가 샤토의 간판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샤토의 이름이 “Châteav Smith Havt Lafitte”라고 적혀있는 것이다. U를 사용하지 않고 V를 적어놓은 것이다. 요거 요거 정말 궁금해지는데……
내가 샤토에 도착을 했을 때 시간은 벌써 오후 5시가 됐다. 그러니깐 샤토에서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진상 손님이 된 것이다. 이유는 샤토 직원들도 마지막 정리를 하고, 퇴근 준비를 해야 하는 데 그때 나타났으니 좋아할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부틱의 안을 들여다보니, 아마도 4시부터 투어를 시작한 그룹의 투어가 끝이나고, 테이스팅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려고 하니 부틱의 문은 안에서 잠겨있었다. 그렇다고 문을 두드리면서 직원을 부를 용기는 없었다.
할 수 없이 이리저리 샤토의 정원을 서성이는데, 정원일을 하시는 것 같은 중년 남성분이 눈에 띄었다. 나는 내가 늦게 온 것에 대해 전혀 모르는 척 “샤토 투어 좀 할 수 있을까요?”라는 멘트를 날리자, 그 분은 투어는 끝났을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깐 저쪽 건물의 벨을 눌러 보라는 것이다.
안내 받은 건물로 가서 벨을 찾으니 벨은 없고, 옛날 국민학교에 있었던 종이 보이고, 종에 연결된 긴 동아줄 같은 게 늘어져 내려있었다. 혹시 이걸 흔들어보라는 소리였었나?
밧줄을 한 번 힘껏 내리는 순간, 시골 교회당에서 교회에 모이라는 종을 울리는 듯한 큰소리가 샤토에 울려 퍼졌다. 종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조용했던 샤토는 시골 동네 어르신들 장기 두다가 싸움 나는 것처럼 쩌렁쩌렁 건물 곳곳으로 파고 들었다. 속으로는 미안함보다는 무섭기까지 했다. 2분이나 흘렀을까? 아주 어린 티가 나는 젊은 청년이 내려오는 것이다. 나는 간단하게 내 소개를 하고 샤토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 몇 개를 구사했더니, 그 직원은 투어는 끝났지만, 간단하게라도 상관 없으냐고 묻는 것이다. 나야 땡큐지! 간단하게가 아니고, 훑어만 봐도 좋은데……
나는 가장 궁금했던 사항들부터 질문을 했다. “오다 보니깐 샤토 간판에 U가 아니고 V를 썼던데 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유?” 샤토 직원의 이렇게 대답을 했다. 라틴어에 원래는 U라는 글자가 없었고, U 의 알파벳은 나중에 새로 추가된 글씨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돌에다가 U의 글씨를 조각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V를 사용했었다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그러면 C를 새겨서 위로 세우면 되지 않나? 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직원이 나를 처음 안내한 곳은 오크 발효통이 즐비한 장소였다.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의 밭의 면적은 130헥타르다. 130헥타르는 대략 40만평이 된다. 이중에 절반 가량인 67헥타르만 포도나무가 심어져 있고, 나머지는 휴농지로 놀리고 있단다. 대략 80%는 레드 와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이 심어져 있고, 나머지 20%에는 화이트 와인용 포도품종이 심어져 있다고 한다. 레드는 알코올 발효도 오크나무에서 이루어지고, 화이트는 2층 구조로 된 스테인레스 통에서 1차 발효가 진행한다고 한다.
발효에 대한 설명을 듣고, 계단을 따라 내려갔더니 육상 선수 우사인 볼트도 넘어지지 않고 10초 이상은 뛰어야 끝을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길고 긴 꺄브가 펼쳐졌다. 이거 대박이네! 꺄브에 오크통을 많이 저장하면 2,400통 이상도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직원이 꺄브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카메라에 꺄브의 광경을 담으려고 애썼다. 꺄브의 빛이 많지 않았고, 카메라 삼발이를 가져가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만 흔들려도 사진이 명확하게 안 나왔다. 높이가 맞는 곳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사진을 찍으려니까 노란색 불빛의 깡통로봇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모양을 만들지는 않았을 테고, 나는 직원에게 저 모양이 특별히 상징하는 게 있는지 물었다. 제일 상단에 있는 쾌걸 조로가 쓰고 있는 가면 같은 모양은 샤토의 오너였던 George Smith의 세 자녀를 상징하고, 그 아래 반달 모양은 “달의 항구”라 불리던 보르도를 상징한다고 한다. 캬~ 멋있다. 어떻게 “달의 항구”라는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맨 아래쪽에는 백합이 그려져 있다. 14세기에 처음 샤토 창업자인 Verrier du Dubosc의 가문이 귀족 집안이었기 때문에 귀족 가문을 상징하는 백합으로 장식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의 제일 처음 문양에는 맨 위에 그려진, 조지 스미스의 자녀를 상징하는 것은 없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조지 스미스가 샤토를 인수를 했던 것은 1720년이었으니까……
지금부터 내가 이 글의 처음에 언급한 대한승마협회와 코리아 갓 탤런트에 대한 설명을 해보자.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의 예전 소유주 중에는 Lodi-Martin Duffour Dubegier라는 사람이 있었다. 짧게 “로디 마땅”으로 호칭하자. 로디 마땅은 34세의 나이에 보르도 도의원으로 그의 정치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47세에 도의회의 의장으로 10년간 의정 활동을 한 인물이다. 그리고 1846년부터 1860년까지는 보르도 상공회의소 소장으로 재직을 한다. 여기서 그의 강골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 벌어진다. 우리가 와인의 족보처럼 알고 있는 1855년 메독 그랑크뤼 클라세 시스템이 정해진 것이 1855년이다. 다시 말해서 로디 마땅이 보르도 상공회의소 소장으로 재직할 당시의 일이라는 것이다. 나폴레옹 3세의 명을 받아서 보르도 상공회의소는 샤토에 등급을 메기는 작업을 이행해야만 했었지만, 로디 마땅은 본인이 소유하고 있던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를 등급 심사에 일부러 출품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쓸데없는 뒷담화를 들을 필요도 없고, 등급 심사의 공정성에 오류를 남기기 싫어서였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 일이 나에게 일어났었다면 어떻게 했었을까? 1등급은 너무 속보이니까 2등급 혹은 내가 아니더라도, 내 밑에 직원들이 점수를 후하게 주지 않았을까? 역사란 “만약”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기도 쉽고, 어렵기도 하다. 그렇지만 만약에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가 그랑크뤼 시스템 등급 심사에 출품을 했다면, 분명 한자리는 꿰차지 않았을까?
나에게 샤토 안내를 해준 젊은 직원은 샤토에 실습을 나와있는 학생이었다. 그 학생의 장래 꿈은 보르도에서 큰 네고시앙(와인 중개업)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모쪼록 그 학생이 먼 훗날에 본인이 이루고 싶은 꿈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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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정민영 (Min Yo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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