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옹> 루시옹에 가다(1)
루시옹에 가다(1)
외국의 와인생산자들이 우리나라를 많이 찾아오면, 특히 와인협회의 경우 여러 가지 면에서 장점이 있다. 첫째, 국내의 와인 수입사들이 외국의 와인생산지를 방문하지 않고서도 새로운 와인을 발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둘째, 국내 와인업계 종사자들이 시음을 통해 와인에 대한 지식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 셋째, 전시회나 시음회 행사를 주관하는 측의 수익이 발생한다.
외국의 와인생산자들이 우리나라를 자주 찾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와인시장이 매력적이어야 한다.
유럽의 와인생산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와인 생산 지역, 자국, 그리고 유럽의 다른 국가에서 개최되는 주요 와인 박람회에서 전시 참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유럽의 와인 시장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그 외 미국이나 아시아 시장이 중요한데 일본이나 중국(홍콩 포함)에 비하면 우리의 와인시장은 - 인구수 때문에도 - 상대적으로 규모가 훨씬 작다. 유럽의 와인생산자들이 일년에 아시아를 두 번 이상 방문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와인박람회에 유럽의 와인생산자를 유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개최되는 와인 행사에 우리나라의 와인 분야 종사자가 초대받는 것에도 마찬가지의 논리가 적용된다. 우리의 와인 시장이 매력적일수록 자주 그리고 많이 초대될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소믈리에보다는 바이어나 저널리스트를 선호한다. 바이어의 경우 직접적인 수출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으며, 저널리스트의 경우 홍보 효과를 계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믈리에의 역할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업장에서의 와인소비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보면 루시옹 와인협회(CIVR: Conseil Interprofessionnel des Vins du Roussillon)가 몇 년째 계속 국내에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우리 와인 업계의 바이어와 저널리스트 그리고 국가 대표급 소믈리에를 루시옹으로 초대하여 투어를 해주고 있는 것은 행복하고도 감사한 일이다.
지난 1월말 남프랑스 몽펠리에(Montpellier)에서 개최된 와인 박람회 비니쉬드(Vinisud)에서 루시옹 와인협회의 Export Manager인 에릭 아라실(Eric Aracil)을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그에 의하면 루시옹 와인협회는 현재 프랑스를 제외하고 6개국에서만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 벨기에, 미국, 캐나다, 중국 그리고 한국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을 제외한 다른 5개국은 루시옹 와인이 가장 많이 수출되는 Top 5 국가라고 한다. 특히 중국은 2년 전부터 벨기에를 제치고 루시옹 와인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의 지위에 올라섰다고 한다. Top 5에 속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예외적으로 루시옹 와인협회의 적극적 마케팅 대상이 되고 있으니 그 배경이 어떠하든 우리로서는 행운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에릭 아라실은 앞으로 일본시장에 진출할 계획이 있다고 말하며, 태국, 싱가포르, 대만,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수입량은 적어도 소믈리에들의 높은 자질 때문에 앞으로 이 국가들에서의 전망을 아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금년의 비니쉬드에서 만난 루시옹와인협회의 에릭 아라실>
에릭 아라실은 루시옹 와인이 해외에서 점점 더 인기를 끌고 있는 것에 만족해하고 있다.
약 25년 전부터 퀄리티 향상이 두드러진 루시옹 와인이 이미 포화 상태인 프랑스 와인 시장을 넘어 해외에 눈을 돌린 것은 그 시장의 잠재력 때문이었다. 이러한 성공 요소로 에릭 아라실은 루시옹 와인의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특성을 들고 있다. “Unique”, “Different”, “Quality”, “Terroir”.
로제 와인의 경우 여름이 긴 루시옹 내에서 많이 소비가 되고 있고, 레드 와인이 역시 수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최근에 독일을 중심으로 화이트 와인의 수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White Grenache와 Grey Grenache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 강세를 보인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에릭 아라실은 앞으로 화이트 와인의 프로모션을 강화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작년 봄에 와인 저널리스트의 자격으로 5개의 수입사와 함께 루시옹 와인협회의 초대를 받아 루시옹 투어를 다녀왔다. 파리에서 출발하여 루시옹의 중심인 페르피냥(Perpignan) 공항에 도착할 때쯤이면 지중해를 왼편에 두고 비행기가 하강한다. 멀리 피레네 산맥이 보이고, 코발트 빛의 지중해와 루시옹의 주황색 기와지붕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과 같다. 페르피냥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피레네 산맥 부근의 마을 투르네(Tournay)에서 출생한 시인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이 쓴 전원적인 시골의 모습, 특히 그의 시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Ce sont les travaux…)> 를 연상시킨다. 공항에 내리면서 느낀 약하지 않은 산들바람은 앞으로 경험하게 될 루시옹의 맛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부풀려 주었다.
<루시옹 투어에 함께 초대된 사람들과 Roc des Anges 와이너리의 포도밭에서>
루시옹 투어는 필자가 경험한 그 어느 와인투어보다도 매력적이었으며 가장 완벽하게 조직되었다.
최근 몇 년간 국내에 수입이 증가한 루시옹 와인의 산지를 방문하는 것 자체로도 만족이었지만 에릭 아라실의 ‘철저함’이 작용하여 완벽하게 프로그램이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루시옹 투어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첫째, 루시옹 와인 생산자들의 이익을 고려하여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관광이라고는 콜리우르(Collioure) 시내 산책 한 시간이 전부였다.
그래도 콜리우르와 바뉼스(Banyuls) 지역의 포도밭 모습은 웬만한 관광 저리가라할 정도로 멋졌다.
둘째, 비즈니스를 위한 매칭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와이너리 방문이고, 다른 하나는 미니 엑스포 형태의 시음회이다. \여기에서 미니 엑스포란 일정한 공간에서 다수의 와인생산자들의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시음회를 말한다.
와이너리 방문이 런치나 디너와 연계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루시옹 와인협회의 입장에서 다수 와인을 동시에 시음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는 미니 엑스포가 효과적이다.
<미니 엑스포에서 시음하는 모습>
<미니 엑스포에서 만난 샤토 나달의 와인들. 아시아와인트로피에서 골드 메달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와인들이다.>
셋째, 와이너리 방문과 무관한 런치와 디너에서도 루시옹이 속해 있는 카탈루냐 식 음식과 루시옹 와인의 매칭이 세심하게 배려되었다. 와인과 음식의 매칭을 중요시하고 소믈리에에게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는 루시옹 와인협회의 비즈니스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콜리우르에 있는 와이너리 Clos de Paulilles 와이너리에서의 런치에 매칭된 와인들. 미네랄과 짠 맛이 음식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우었다>
<페르피냥에 있는 레스토랑 Tire Bouchon에서 런치로 먹은 카탈루냐 특유의 음식>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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