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영의 보르도 샤토 방문기(6)
장바구니를 옆에 끼고 마트를 둘러볼 때 시식 코너에서 한번 먹어 볼까 말까 고민도 해보지만 농수산품 코너에 적혀있는 ‘신토불이’ 혹은 ‘유기농’이라고 적혀있는 문구 앞에서도 여러 가지 고민을 해본 적 또한 있을 것이다. 본인 또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는 유기농이 유익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격표 앞에서는 망설여진다. 머리와 마음은 신토불이와 유기농에 대해서 열려 있는데, 지갑은 좀처럼 열릴 줄 모르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가격 때문에 소비자가 이 정도로 망설인다면 생산자는 분명 소비자보다 더 큰 고민을 어깨에 짊어져야 한다는 것은 눈으로 안 봐도 비디오다. 아무리 정성껏 만들어도 소비자에게 외면을 받으면 생산을 지속적으로 할 수 없는 것 또한 생산자들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농산물에는 ‘AB’ (Agriculture Biologique)를 예쁘게 디자인해서 라벨에 집어 넣는다. 바이오 식품들이 유행하면서 프랑스 마트에서 이런 AB제품들을 발견하는 일은 결혼 4년차 이상인 부부가 부부 싸움을 하는 것처럼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프랑스 와인업계도 바이오 와인들을 생산하려는 샤토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유기농법을 지켜가면서 와인을 생산한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일 만은 아니다. 바이오 와인 제조 과정은 일반 와인 생산 과정보다 손이 훨씬 많이 가고 까다롭다. 이런 어려운 조건들을 이겨내고 바이오 와인을 생산한다는 것은 결혼 4년차 이상인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처럼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오 와인 생산에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도전하고 있는 대표적인 샤토가 바로 포이악에 위치한 샤토 퐁테-카네(Château Pontet-Canet)이다. 이 샤토는 메독 그랑 크뤼 클라세 명단에 문패를 걸어 놓고 있으면서, 샤토 무통 로칠드에서 5번 우드를 치면 온(on)시킬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샤토 퐁테-카네가 처음부터 80헥타르의 포도밭을 전부 바이오 농법으로 재배했던 것은 아니다. 2004년에 14헥타르를 시작으로 조금씩 바이오 포도 생산을 확대해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2007년도에는 습도가 너무 높은 기후 탓에 포도에 질병이 급격히 번져 유기농법을 이용한 포도농사에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다고 한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한국 전쟁 때 압록강에서 인해전술로 밀려오는 중공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후퇴했던 심정처럼, 포도나무에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농약을 다시 뿌렸다고 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것은 프랑스도 똑같다. 하지만 이런 결정을 내린 샤토의 오너는 지금도 그때의 결정에 후회를 하고 있단다.
샤토 퐁테-카네는 그때의 잘못된 결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줬다. 보디 빌더들이 근육을 키우기 위해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다.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으면 조금만 운동을 해도 근육이 부풀어 오르는 속도가 빨라지고 겉으로는 건강해 보이겠지만, 면역력은 점점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테로이드 양을 지속적으로 늘려서 맞아야만 그 근육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저항력이 떨어져 쉽게 병이 들거나, 나약해 진다는 것이다. 유기농법도 이와 똑같다. 아프고 힘들더라고 포도나무가 스스로 면역력을 키워 나가는게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는 더욱 값어치가 있다는 것이다. 샤토 오너는 2007년도의 잘못된 결정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로 유기농법에 의한 와인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니까 ‘아프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이 뜻인 것 같다.
샤토 퐁테-카네를 방문하면 골프 카트를 타고 포도밭에 가서 유기농법에 대한 설명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샤토 직원의 설명에 의하면 현재 6마리의 말이 있어서 트렉터가 하는 일을 말이 대신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랙터 대신에 말을 이용하는 장점은 다음과 같다.
크기에 따라서 트랙터의 중량 또한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포도밭에서 움직이는 트랙터의 경우 4톤 이상이다. 4톤의 무게가 몇 번 지나가면 흙의 형태는 공간이 없이 딱딱하게 눌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흙이 숨을 쉴(?) 공간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흙으로 수분이 잘 스며들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트랙터의 무게에 눌려서 포도나무 뿌리가 밑으로 뻗질 못하고 마치 ‘ㄴ’모양으로 휘게 되는 현상도 발생을 한다. 물론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적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트랙터에서 나오는 매연이 포도에 내려 앉을 걱정은 분명히 없을 것이다.
포도밭에서 유익한 설명을 듣고 샤토 건물 안 쪽으로 걸어가다가 발견한 깃발 세 개.
하나는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 국기, 다른 하나는 샤토 퐁테-카네의 깃발, 그리고 네달란드 국기 같아 보이는 깃발 등, 총 세 개가 새로 개업한 이동통신사 매장 앞에서 도우미 언니들과 같이 춤추고 있는 공기풍선처럼 정신이 없었다.
이날 필자가 샤토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10시인데, 테이블 위에는 벌써 테이스팅 잔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샤토 직원에게 실없는 농담을 툭 던졌다.“아니, 나보다 먼저 해장술 하고 간 사람도 있나요?”라고 물었다. 직원 왈 “어제 오후에 러시아에서 그룹이 왔었는데 정리를 하지 않고 퇴근해서 지금 치우는 중” 이라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 왔다. 필자는 혼잣말로 “넌, 사장이 안 보았기 다행이지. 걸렸으면….”
와인 제조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데 오크통 숙성고 옆에 단무지를 잔뜩 담아놓은 것 같은 노란색 큰 항아리들이 이색적이었다. 직원 설명에 의하면 샤토 퐁테-카네는 와인을 오크통과 저 큰 항아리에 번갈아 담아 가면서 숙성을 시킨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항아리를 빚을 때 사용했던 흙도 바로 샤토 퐁테-카네의 포도밭에서 캐낸 흙을 사용해서 빚었다는 것이다. 정말 뼛속부터 신토불이를 실현하는 또 한번의 감동이었다.
여기서 쉬어가는 의미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퀴즈를 한번 내 보도록 하자.
문제 나갑니다.
<문제> 포도 농사에 소보다는 말을 이용하는 이유는?
밑에 서술한 내용을 읽기 전에, 스스로 생각해보기 바람
5.
4.
3.
2.
1.
눈을 감고 생각해 보셨나요?ㅎㅎ
한 번 시작해 보죠.
첫 번째 이유: 말이 소보다는 말을 잘 듣는다. 그래서 ‘말’이라고 부르나?ㅎㅎ
두 번째 이유: 소는 위가 네 개이기 때문에 밭 일을 하다가 배가 고프면 포도잎을 먹는다.
하지만, 말은 위가 하나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적다.
세 번째 이유: 지구력은 소가 말보다 강하지만, 힘은 말이 소보다 강하다 (그래서 소고집이라고 하나? 말고집은 들어본 적이 없다. 또 340마력의 자동차라고 하지 340우력 자동차는 안 어울리는 것 같다).
네번째 이유: 유럽 사람들은 소를 음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상은 문헌에 나오지 않는 내용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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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정민영 (Min Yo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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