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영의 보르도 샤토 방문기(4)

2021.04.12 최고관리자
프랑스 0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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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세대라면 1980년대 ‘웃으면 복이 와요’, ‘일요일 밤의 대행진’ 같은 프로그램에서 코미디언들이 자주 사용했던 대사를 기억할 것이다.

“당신 없는 이 세상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요, 고무줄 없는 팬티요, 앙꼬(팥) 없는 찐빵이요……” 이런 표현들을 많이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혹시 누가 나에게 “어떤 와인이 좋은가요?” 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야기가 없는 와인은 그냥 술일 뿐입니다.” 라고 똥폼 한 번 제대로 잡고 대답하고 싶다.

이야기가 없는 와인? 그렇다면 반대로 이야기가 있는 와인은 무엇일까?
지금부터 이야기가 있는 와인 샤토 무통 로칠드(Château Mouton Rothschild)로 한번 떠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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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ton은 프랑스어로 ‘양’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샤토와 양과는 무슨 연관이 있어서 이름을 샤토 무통 로칠드라고 하는걸까? 이름에 관한 유래 중 하나는 샤토 무통 로칠드의 오너였던 바롱 필립(Baron Philippe)이 4월 13일, 그러니깐 별자리로 양의 달에 태어났기 때문에 Mouton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바롱 필립이 태어난 해는 1902년이고 등급체계가 정해진 1855년 당시 2등급에 Mouton이라는 이름이 이미 적혀져 있었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다.  혹자는 옛날에 샤토 주변이 포도밭이 아니었고 양을 키우던 목장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무시해도 좋을 듯싶다. 

지금은 Mouton(무통)이 양이란 뜻이지만 옛날에는 Motton이라는 ‘작은 언덕’을 뜻하는 프랑스 고어가 있었다. 언덕에 위치한 포도밭 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언덕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또 다른 유명한 샤토가 바로 샤토 라피트 로칠드(Château Lafite Rothschild), 그리고 1등급 샤토라고 불리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샤토 코스-데스투르넬(Château Cos-d'Estournel)’이 있다. 

불어로 ‘la Hite’, ‘Cos’ 역시도 언덕을 의미하는 단어로, 라 히트가 라피트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이 정도로 샤토 무통 로칠드 이름을 소개 하고 이젠 예술의 문지방으로 발을 들여 보자.

아마도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2013년도에 샤토 무통 로칠드를 방문했다는 글은 좀처럼 찾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2013년도에 샤토 무통 로칠드는 대대적인 공사를 했기 때문이다.

이 와이너리뿐만 아니라 메독에 있는 많은 그랑 크뤼 샤토들이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한 해이기도 하다. 연지 찍고 곤지 찍고 분 바르고 비단 저고리 입고 해서 샤토를 예쁘게 꾸미는 게 문제될 건 없다. 

더군다나 2013년도에는 보르도에서 2년에 한 번 열리는 Vinexpo가 열렸기 때문에 샤토들이 더욱 꽃 단장을 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대대적인 보수공사와 같이 재투자를 하는 이유는 세금하고도 관련이 있다. 
프랑스는 세금의 무게가 꽤나 무거운 나라이다. 그래서 샤토들은 수입 발생과 동시에 많은 부분의 수익금을 다시 샤토에 재투자를 한다. 그래야 비용 처리와 함께 세금 감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샤토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안내되었던 곳은 작은 영화관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조금 큰 비디오 방이라고 해야 할지 애매한 사이즈의 방이었다. 그 곳에서 약 10분간 샤토 무통 로칠드에 관한 역사와 인물, 비지니스 등에 관한 정신교육(?)을 받았다. 특이한 건 스크린 중간 부분이 비너스 가슴 같이 돌출되어 있어 자체 입체 영상이 되었다. 

10분간의 영상을 보고 나오자, 밖에서는 한 눈에도 노련미가 넘치는 여성 한 분이 투어를 해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안내된 곳은 양 머리통을 통째로 박제를 해서 쫘~~악 진열해 놓은 전시룸이었다.

처음에 샤토 투어가 시작됐을 때는 설명에 집중하느라고 알아채지 못했지만, 해병대 돌격대 머리스타일을 한 남자가 내 뒤를 미행하는 것을 알아챘다. 내가 샤토 내부 사진을 찍을 때는 잠시 몸을 숨겼다가 다시 직원 설명이 시작되면 또 다시 나타나는 KGB 요원 아니면 흥신소 시다바리 같은 민첩함을 보였다.
 
나는 궁금해서 “저 분은 누구세요?”라고 물어보니깐 샤또의 보안 요원이라는 것이다. 
처음 샤토 투어를 시작하고 20분 정도는 보안요원이 왜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보안요원이 따라 다녀야 하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한 병당 와인 가격도 비쌀 뿐만 아니라, 샤토 내부에는 두 곳의 박물관이 있는데 그곳에 소장된 것들의 가치 때문이다. 2,000년 전의 그리스 유물을 포함해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진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피카소의 작품을 바로 내 눈 앞에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미술 작품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군다나 피카소의 작품이니…… 언뜻 보기에는 내가 매운 닭 발에 소주 3병 마시고 취해서 그려도 가능할 것 같은 작품처럼 보였지만,  그거야 작품을 이해 못하는 나의 우견(愚見)이고, 내가 서두에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야기가 있는 와인’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 된다.

샤토 무통 로칠드가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한 것은 작년 8월에 타계한 ‘바로네스 필리핀느(Baronne Phillippine)’ 여사가 1970년대부터 아버지와 함께 샤토 경영에 참가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마담 바로네스는 와인 양조와는 상관없이 파리에서 여배우 생활을 했었다. 그래서인지 샤토 무통 로칠드에는 2013년도에 새로 완공된 큰 건물이 있는데, 그 전면이 무대의 은막을 상징하듯 보이고 문은 실제 오크나무로 꾸며 놓았다. 

아마도 그 앞에 심어 놓은 꽃들은 관객을 표현하는게 아닐까 싶다. 예술과 와인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접목시킨 아이디어였다. 
건물 안에서도 발을 한 발 한 발 움직일 때마다 마담 필리핀느의 섬세함이 발에 밞히는 듯 했다. 

오크통이 있는 지하 꺄브로 들어 서려는 순간 입구 바닥에 디자인된 명품 ‘구찌(GUCCI)’ 상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직원에게 바로 물었다.“여긴 바닥도 명품 구찌를 깔았네요?(웃음)” 직원은 나의 웃기지도 않은 농담에 살짝 수긍을 하고 다음과 같은 설명이 이어졌다.

나를 한 쪽 벽면에 서보라고 하더니 오른쪽 창문 밖은 포도밭이 있고, 앞쪽으로는 예술품들이 있으며, 그리고 왼쪽에는 와인이 오크통에서 잘 익어가고 있는 꺄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닥에 새겨진 문형은 구찌 상표가 아니고 포도밭의 자연과 예술과 와인을 연결하는 연결고리를 나타내는 문형이라는 설명이다. 그냥 밞고 지나가면 동네 목욕탕 타일 바닥 같지만 직원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니 나는 철학의 프라이팬 위에 서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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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은 계속 이어졌다. 꺄브 안에서는 랙킹 작업(오크통에서 와인을 빼내는 과정)이 한참 진행 중이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촛불을 켜놓고 침천물을 확인하고 있었다. 와인 한 방울 한 방울을 갓 태어난 어린양처럼 소중히 다루고 있었다. 잠시 동안 직원의 퍼포먼스(?)를 지켜 보고는 옆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옆 방은 찜질방 수면실처럼 샤토 무통 로칠드 와인들이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어찌나 조용하던지 신발을 벗고 걸어야만 할 것 같은 미안함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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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안내된 곳은 샤토 무통 로칠드의 와인 라벨 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매해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를 선정해서 와인 라벨에 그림을 그려 넣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매해 와인 라벨의 디자인이 다르다는 것은 와인 병을 따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중 피카소 작품이 들어가 있는 1973년 와인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나는 1973년 라벨을 피카소가 샤토 무통 로칠드를 위해 그림을 그려준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 

마담 필리핀느는 괸장한 미술 애호가이자 수집가이기도 했다. 그녀는 몇 번을 피카소에게 와인 라벨에 관해서 연락을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1973년 샤또 무통 로칠드 와인 병에 피카소 작품을 넣게 된 뜻밖의 계기가 있었다. 1973년은 파블로 피카소가 세상을 떠난 해임과 동시에 샤토 무통 로칠드가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승격한 해이기도 하다.

마담 필리핀느는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피카소의 가족을 찾아가서 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에게 "피카소의 예술적인 혼을 간직하기 위해 제가 가지고 있는 그의 작품을 무통 로칠드 라벨에 넣어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피카소의 가족들은 흔쾌히 마담 필리핀느의 제의를 받아들이게 됐고 마침내 샤토 무통 로칠드의 1973년산 와인병에는 피카소의 작품을 넣게 된 것이다. 아주 묘하게 스토리텔링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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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내에서의 투어는 마무리 단계로 들어 갔다.
양머리 조명이 인상적인 테이스팅 룸으로 들어가니 이미 테이블 위에는 3종류의 와인, 샤토 다마이악(Château d’Armailhac), 샤토 클레르 밀롱(Château Clerc Milon) 그리고 샤토 무통 로칠드 와인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샤토 다마이악과 샤토 클레르 밀롱은 샤토 무통 로칠드가 소유하고 있는 그랑 크뤼 샤토들이다. 세 병 모두 2012년 빈티지였기 때문에 같은 해에 만들어진 와인이라도 맛의 차이를 충분히 비교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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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샤토 다마이악이다. 조금은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직원이 나에게 와인 잔을 건네줄 때는 와인 잔이 아니고 꽃다발 한 뭉치를 주는 것 같았다. 와인 향을 풍부하게 맡기 위해 흔히들 하는 잔을 돌릴 필요성도 못 느꼈다. 내 코는 충분히 호강을 하고 있었다. 아직 젊은 와인이다 보니 입에 들어가는 순간 탄닌감이 꽤나 잇몸이나 혀를 잡아 당긴다. 

그리고는 피어 오르는 라즈베리, 자두, 블랙 커런트 그리고 흙 향과 버섯 향. 내 혀는 마치 모종을 심어놓은 모종판 같았다.

샤토 다마이악의 바통을 이어받아서 달린 선수는 샤토 클레르 밀롱이다. 
이 와인에서는 과일 향보다는 유난히 Greenish한 피망 향, 풀 향 등이 상당히 진했다. 
속으로 양이 마시면 좋아할 것 같은 와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 선수 샤토 무통 로칠드……  등번호 역시 2012다.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걸쭉해진 딸기 잼, 블랙 커런트와 흑장미, 계피, 민트, 초콜릿 등등이 잔에서 마구마구 흘러내리는 듯 했다. 

마치 잘 설계되어서 지어진 고층 사각 빌딩에 멋진 모자이크 유리창이 장식된 듯 구조가 단단하면서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2시간 30분 동안의 샤토 투어는 길수도 있다. 하지만 샤토 무통 로칠드는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 듯, 2시간 17분 정도가 지나서야 오래 서있어서 다리가 아프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특별한 재미와 철학이 있는 투어다. 

샤토 무통 로칠드에서 멋있게 한 말들이 있다. 2등급에 머물러 있을 때 “나는 1등급이 될 수 없다. 하지만 2등급에 머무르고 싶지 않다. 나는 무통이다.”
1등급으로 승격이 되었을 때 “나는 2등급이었다. 지금은 1등급이다. 하지만 무통은 변하지 않는다.”

나도 다시 한 번 와인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 싶다. “와인은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이야기가 없는 와인은 단지 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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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정민영(Min Yo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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