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난영 소믈리에의 Citta del Vino 시리즈(1) 지중해 와인의 매력 덩어리 - 리구리아 와인

2021.04.25 최고관리자
이탈리아 0 378


백난영 소믈리에의 Citta del Vino 시리즈(1)

지중해 와인의 매력 덩어리 리구리아 와인

 

몇 년 전 이탈리아 부호들의 휴양지인 포르토피노(Portofino)에 간 적이 있다. 별장이나 요트가 없는 이탈리아인들이 이곳에 가는 이유인 쪽빛 리구리아 바다에 떠있는 흰 요트나 구릿빛 피부에 걸친 흰셔츠가 멋지게 어울리는 이탈리아 남성이 모는 빨간색 페라리를 보러 간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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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구리아의 진주 포르토피노 항> 


포르토피노의  물살을 가르는 흰 요트 밑 해저에서 심연의 스푸만테Spumante Abissi”가 숙성되는 장소를 보고 싶었고 잠수하는 건 불가능할 테지만 배를 타고 근처만이라도 가볼 수 있을까 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었다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물살이 높아 유람선은 항구에 묶여있었고포르토피노의 유명 와인 샵에 갔는데도 스푸만테(스파클링 와인)는 예약한 고객만 살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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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연의 스푸만테는 포르토피노 심해에서 병 숙성을 거친다.>

(사진출처http://www.bissonvini.it/p.php/5368/lo-spumante-sommerso.html) 


심연의 스푸만테라는 이름도 독특하지만 바다 밑의 바위처럼 불가사리해초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병 포장도 재미있다이 와인은 고대에 바다에 침몰한 난파선에서 건져 올린 와인이 수 십 세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침몰 당시의 향기를 보존하고 있는 것에 주목한 루가노(Lugano)씨의 아이디어다바다를 열린 숙성실로 만들고 싶었던 루가노씨의 꿈은 포르토피노에서 30km 떨어진 조류가 느리고 햇빛이 도달하지 않아 연중 15도를 유지하는 ‘Cala degli Inglesi’ 바다 밑 60미터 지점을 발견해낸 후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속하게 추진됐다. 모래를 품은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 내듯 포르토피노 바다가 2년 동안 품어 숙성시킨 심연의 스푸만테의 연간 생산량은 6500병 정도다매년 성탄절 이브에 심연의 스푸만테가 출시되지만 사실은 1년전부터 예약자 명단에 있는 고객한테 약속한 스푸만테를 전달하는 이벤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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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연의 스푸만테 병에는 불가사리해초굴 등이 붙어있다.>

 

루가노씨의 독특한 아이디어가 만든 스푸만테가 희귀 와인이라 구하기 쉽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 리구리아 와인의 현주소를 알려준다리구리아주는 리구리아 해안과 평행으로 뻗어있는 아펜니노 산맥을 따라난 좁고 긴 분지에 인구와 주거지가 몰려있다그렇다 보니 포도밭은 해안을 면한 가파른 아펜니노 절벽에 조성돼있고 면적은 헥타르 단위로 측정되기에는 협소하기 때문에 보통 제곱 미터(m2)로 표현된다.또한리구리아주의 푸른 바다와 이국적 풍경은 관광객을 연중 끌어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머물다 간 곳 에서 생산된 와인은 거의 동이 난다리구리아 자체 내에서 와인이 거의 다 소비되기 때문에 주 경계 밖의 이탈리아 내에서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리구리아주 서쪽 끝토스카나주 북쪽과 맞닿은 루니(Luni) 지역은 사정이 좀 다르다리구리아의 비좁은 분지를 관통하던 아펜니노 산맥이 동쪽으로 한 발짝 물러나고 갑자기 평지가 나타나는 곳에 위치한 루니에 도달하면 마치 막혔던 속이 뚫린 것처럼 시원해진다.평지와 바다의 수평선이 닿는 지점에는 한여름인데도 눈을 덮고 있는 듯한 산이 보이는데 푸른 밀밭과 기괴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이 산은 카라라(Carrara) 대리석 광산으로  순도 높은 백색 대리석으로 명성이 높다이곳에서 캐낸 카라라 대리석은 판테온신전트라야누스 기둥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피사와 피렌체의 두오모 파사드(정면장식에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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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억 톤의 대리석이 채굴되는  카라라 광산>

(사진출처: William Domenichini -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775720)

 

카라라 대리석은 세계인을 감탄시키는 우아한 예술품으로 변신했고 근교의 루니 지역 와인은 로마인을 열광하게 했다현재 루니 와인은 콜리 디 루니(Colli di Luni DOC)’의 이름으로 생산되지만 로마인들은 Palma 와인으로 불렀다(Etruriae Palmam Luna Habet, 대플리니우스가 저작한 Naturalis Historia에서 인용). 채굴된 대리석은 루니로 옮겨진 다음 이곳의 항구를 통해서 지중해 연안 도시로 수출되었다대리석이 실린 배에는 루니의 베르멘티노 와인도 실려있었고 대리석이 하역되는 곳에 루니 와인도 함께 내려졌다. 루니는 기원전 177년 로마인에 의해 세워진 도시로 성곽 밖에 로마의 콜로세움에 비견될 만한 규모의 원형 극장이 건설되었고 관중석은 모자이크로 장식될 정도로 화려했다한 에피소드에 따르면 롱고바르드족이 루니에 침입했을 때 이 원형극장만 보고 로마라 착각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 규모는 가히 짐작할 만하다후에 사라센해적과 게르만족의 잦은 침입 때문에 루니는 폐허가 되었고 이곳에 부를 가져다 주던 항구는 근처에 흐르던 강에 실려온 모래와 흙이 바다를 메워버려 카라라 대리석을 실은 배는 더 이상 로마로 향할 수 없게 되었다한참 발굴작업 중인 옛 루니 유적지에서 저만큼 멀어져 있는 해안을 보니 문득 자연의 힘에 굴복한 과거의 영광이 덧없게 보여졌다루니 지역은 리구리아 와인의 70%가 생산되는 리구리아 와인의 수도이자 허브다다수의 포도재배 농들과 이들로부터 구매한 포도와 생산자가 소유한 포도원에서 직접 재배한 포도를 양조해서 연 평균 20~30만 병을 생산하는 소수의 중소규모 와이너리가 공존한다루니 와인은 베르멘티노와 산조베제로 대표된다베르멘티노는 짠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야만 제 맛과 향을 낼 수 있는 바다친화 품종이다그래서 지중해에 접한 스페인프랑스 해안과 이탈리아 서해안이 최대의 생산지가 된 건 우연이 아니다이탈리아에서는 강렬한 햇빛과 염기 품은 바람이 불어오는 루니 지역 (리구리아 서북부와 토스카나주 북부 해안), 볼게리사르데냐섬에서 생산된 베르멘티노 와인을 최상의 품질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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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li di Luni  베르멘티노와 산죠베제 와인, La Baia del Sole 와이너리>

 

루니 베르멘티노의 빛깔은 영롱하면서 투명한 짙은 노란색이며 복숭아라임골든 사과허브미네랄의 농축된 향기는 화사하고 개별 향기를 구별해낼 수 있을 정도로 또렷하다적절한 산미와 두드러지는 짠 맛목에 넘긴 후 혀에 남는 쌉쌀한 아몬드 맛이 일품이다베르멘티노의 향기만 맡으면 프레쉬한 치즈나 구운 생선올리브유를 듬뿍 넣은 봉골레 스파게티와 마시고 싶지만 실제로 입에 넣어 혀로 굴리면 토마토소스에 익힌 생선요리허브를 듬뿍 넣어 구운 송아지 스테이크와 함께 해도 좋을 만큼 깊고 풍부한 맛이 난다.

 

루니 산조베제는 토스카나 내륙 쪽의 산조베제와는 구분된다칠흑 같이 어두운 밤의 빛깔말린 꽃과 검붉은 과일향복합적인 부케가 농축되어 집중된 힘이 느껴지는 끼안티 클라시코부르넬로 디 몬탈치노까르미냐노 산조베제와는 사뭇 다르다루니 산조베제는 약간의 칠리에졸로카나이올로 품종과 블랜딩해서 코르크를 여는 순간 제비꽃핑크빛 장미체리스파이시향이 파도처럼 밀려온다날카로운 산미는 알코올의 실키함과 만나 둥글게 느껴지며 타닌은 영 와인의 힘과 잘 숙성된 레드의 부드러움을 갖는다.

 


+WRITTEN BY 백난영(Nanyoung Baek)

(이태리 AIS 공인 소믈리에, Barbarol Scuol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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