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영의 보르도 샤토 방문기 ‘열네 번째’ – 샤토 라 콘페시옹(Château La Confession)

2021.04.25 최고관리자
프랑스 0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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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에 샤토를 방문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다

샤토도 휴면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일하는 직원들도 정말 꼭 필요한 인원만 빼고는 “레이오프” 시킨다. 큰 샤토라고 해도 풀타임으로 일하는 직원은 30명을 넘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들, 꺄브에서 일하는 직원들, 포도밭에서 가지치기를 하는 직원들 그리고 샤토에서 자잔한 일을 하는 직원들 이외에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직원을 채용할 때 ‘시즈널’로만 뽑고, 바쁜 시즌이 끝나면 자동적으로 시즈널 직원들의 일도 끝나는 구조다


이런 노동 구조는 관광도시 또는 샤토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곳 보르도의 메독지역 샤토들 또는 생테밀리옹지역 샤토들은 농업에 관련된 관광도시이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더욱 뚜렷하다. 매년 5월에서 10월까지는 관광객이 많이 찾고 또 포도 농사에 관한 일 때문에 아주 바쁘고, 10월이 넘어가면서부터 완전 비수기로 들어간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완전히 문을 닫는 곳도 많이 있다. 조금 덧붙이자면 생테밀리옹에서 와인 샵 또는 선물가게를 하는 사람들이 6개월 일을 하고, 나머지 6개월은 동남 아시아에서 휴가를 즐기는 일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


오늘은 이런 꼭꼭 닫힌 샤토 문을 삐 집고 방문한 샤토 라 콘페시옹(Château La Confession)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샤토 라 콘페시옹은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록되어 있는 아름다운 생테밀리옹에 둥지를 틀고 있다



“좌청룡 우백호”라고 표현하듯 보르도 또한 “좌 메독, 우 생테밀리옹”이라고 불린다. “좌 메독”이란 메독, 소테른, 그라브, 뻬싹 레오냥… 그리고 “우 생테밀리옹” 이란 생테밀리옹, 뽀므롤… 지역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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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까지 샤토를 방문하면서 샤토 오너의 직무실까지 초대받아 구경하기는 처음이었다

샤토에 도착한 시간에 마침 샤토 오너가 직원들과 무엇인가를 열심히 상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덩치있는 사람이 오너인지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말이다


문 맨 앞에 있는 여직원에게 “샤토 좀 둘러보고, 와인 테이스팅을 할 수 있나요?”라고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방문 예약도 안하고 왔으니 퇴짜 맞을 각오를 하고 턱을 들어 또박또박 이야기를 했다


여직원은 내 질문을 받자 허리를 돌려 뒤쪽에 골격이 단단해 보이는 중년 남자쪽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남자는 나보다 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혀에 근육이 생길 정도로 딱딱하게 나를 쳐다보면서 “투어는 25유로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포스에 한 번 기가 죽고, 투어 25유로 라는 소리에 다리 기운이 빠졌다

그렇지만, 쪽 팔리게 “그러면 다음에 올게요.”라는 소리는 못했다내 머리 속에는 ‘까르프 가서치맛살 소고기 900g 사서 와인 한 병과 식구들이 다같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돈인데’라는 계산이 스쳐 지나갔다. 샤토 이름처럼 ‘고해성사’ 하듯 정직하게 “비싸서 안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또 꼼수를 한 번 부려봤다.


“네 지금 가능합니다. 혼자세요?”라는 확실하고 명확한 대답이 또 한 번 소고기하고 와인 한 병이 떠오르게했다. 이렇게 샤토 투어는 시작됐다. 그래도 운 좋게(?) 사장님이 직접 샤토 설명을 해주는 걸로 위안을 삼으려 애쓰고 또 노력했다.


샤토 투어를 해주는 동안 사장에게 카톨릭에 관한 설명을 많이 들었다. 여기저기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도 카톨릭에 관한 그림도 많이 있었고, 프랑스 사람들이 왜 와인을 많이 마시게 되는지 또한 카톨릭에 연관을 지어서 설명하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일요일에 분명히 하루도 빠지지않고 성당에 나가는가 보다. 못나갈 경우에는 집에서라도 혼자 기도를 할 정도의 독실한 카톨릭 신자 같아 보였다. 벽에 걸린 예수님 상과 십자가들, 그리고 성경책들이 마치 와인을 지켜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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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오너의 이름은 졍 필립(Jean Pilippe)이다. 필립은 생테밀리옹뿐만 아니라 뽀므롤, 그리고 보르도 아펠라씨옹의 와인을 포함해서 총 5종류(20 Miles, La Confession, Le Conseiller, La Croix St Georges, Croix Mouton)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투어 중간에 배럴 테이스팅도 하게 해주었다. 배럴 테이스팅이란 배럴 안에서 와인이 어떻게 익어가고 있는지를 직접 맛보게 해주는 것이다. 2012년 빈티지에 대해서 물으니 보통 메독 지역 샤토에서는 일조량이 좀 부족하다는 불평들을 하지만 본인은 아주 만족해 하는 빈티지라고 한다. 필립은 샤토 라 콘페시옹뿐만 아니라 다섯 개의 샤토를 더 소유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인 Château Croix Mouton의 와인 라벨은 본인이 직접 매년 M을 디자인해서 바꾼다는 것이다(Mouton 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샤토들은 디자인하는 것 좋아하네!). 샤토 무통 로칠드는 매해 전세계의 화가 중에서 한 명에게 부탁을 해, 매해 라벨에 그 화가의 작품을 넣는다.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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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가 끝나고 필립은 나에게 시간이 있냐고 묻는 것이었다. 내가 괜찮다면 자기 사무실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는 ”땡큐 베리 마치”라고 하면서도, 곧바로 “네!” 라고 대답하면 싸구려 같아 보일 까봐 괜히 바쁜 척 손목시계를 쳐다보면서 “음~ 한 20분 정도는 시간이 있을 것 같네요!”라고 말하면서 쓸데없는 거만함을 살짝 비췄다. 속으로는 25유로 와인 테이스팅비도 걱정하면서 말이다. 

필립의 직무실은 2층에 있었고, 들어가자 벽난로 신문지 뭉치에 불을 붙여서 넣고는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와인 이야기를 떠나서 개인적인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었다. 아이들 이야기, 외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프랑스에서의 생활… 마치 오래 사귄 친구 같은 화제들로 한참 이야기를 했다. 

필립은 개구쟁이 아들 두 명이 있다는 것이다. 나도 말꽤나 안듣는 아들내미 한 명, 딸내미 한 명 있다고 받아 쳤다. 정말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편안하고 정감이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캐나다 이야기가 나오고 나는 이니스킬린 와이너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필립도 나이아가라 와이너리를 방문했을 때 가본 적이 있고, Cave Spring이라는 와이너리 쪽과는 친분이 있다는 것이다. Cave Spring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토론토로 가다보면 있는 와이너리다. 나도 두 번 정도 방문한 적이 있는 와이너리이기도 하다. 소소한 캐나다 이야기도 나누었다. 필립은 나와 우리 가족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아이들끼리도 또래 나이이고, 필립과 나도 연배가 얼추 비슷해 보였다. 본인이 미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면 주말에 우리 가족을 집으로 초대를 할 테니 와서 같이 저녁을 먹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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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저녁식사 초대까지 받고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포도밭에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말인지 개인지 재봐야 알 것 같은 큰 개 한마리가 이리저리 어슬렁거렸다. 필립이 키우고 있는 티땅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하게 큰 개였다. 티땅은 영화 타이타닉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필립에게 와인 테이스팅비 이야기를 했다. 필립은 웃으면서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이 따뜻한 가장이 프랑스에 또 있을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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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간, 좋은 사람, 좋은 추억을 만들고 집에 오는데 약간은 씁쓸했다. 필립은 현재 샤토를 5개나 가지고 있는데, 나는 뭐했지? 그 사람하고 나하고 똑같은 것은 아들 나이가 똑같은 것 밖에 없네! 25유로 아낀 걸로, 치맛살에 와인 한 병 사가지고 집에 가서 애들 배에 기름기 좀 채워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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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정민영 (Min Young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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