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나비부인…… 그리고 샴페인

2021.05.06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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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나비부인…… 그리고 샴페인


천 가지 음색으로 연기할 수 있는 오페라의 여신”, “오페라의 성녀”, “오페라의 처음과 끝”, “20세기 최고의 디바등등 많은 수식어가 붙으며 극찬을 받았던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는 그리스계 이주민의 딸로서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났다. 13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언니인 재키(Jackie)와 함께 그리스로 건너간 그녀는 훌륭한 스승 엘비라 데 이달고(Elvira de Hidalgo)와의 만남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당당히 아테네 국립오페라 무대는 물론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등의 무대에 설 수 있었다.

1949년 스물여섯 살에 자신의 나이보다 곱절이나 많은 이탈리아 기업인인 조반니 메네기니(Giovanni Battista Meneghini)와 결혼한 그녀는 이후 그의 조언과 후원에 힘입어 승승장구 했지만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Aristoteles Onassia)와의 잘못된 만남으로 그녀의 인생과 경력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마리아 칼라스가 결혼한지 10년이 지난 1959년에 선상투어를 겸한 파티에서의 강렬한 첫 만남 후 그들은 그 해와 다음해에 각자의 가정을 등졌고 10년간 동고동락했다고 한다.

그러던 1968년의 어느 날갑자기 오나시스와 케네디의 미망인인 재클린 케네디와의 결혼이 발표됐고칼라스는 졸지에 버림받는 신세가 된다. 마치 그녀가 출연한 오페라 나비부인(Madama Butterfly)의 스토리가 복선이 되듯 말이다나비부인은 널리 알려진 스토리처럼 일본에 주둔한 미국병사의 현지처인 나비부인이 사랑에 실패한 후 자결하는 것으로 막을 내리는 푸치니의 오페라이다.

오나시스는 사랑은 칼라스와 했으나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재클린 케네디의 유명세를 더 사랑한 셈이었고칼라스는 그들의 결혼에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다문득 그녀가 실연 당시무슨 와인을 마시며 스스로를 달래며 다독였을지 궁금해졌다. 일설에 의하면 그녀는 샴페인을 매우 사랑했고오나시스와 함께 파리의 유명 식당 맥심(Maxim’s)을 수시로 드나들었다고 한다오나스시가 마리아와의 요트여행에서 그녀가 좋아하는 샴페인을 박스 채 실을 정도였다니 칼라스의 샴페인 사랑은 대단했던 것 같다몸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샴페인 한 잔을 촌충과 함께 삼키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다칼라스에 대한 전문가인 브루노 토시(Bruno Tosi)에 따르면 칼라스는 드물게 스틸 와인을 마셨지만칼로리가 적다는 이유 때문에 샴페인을 즐겨 마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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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 Krug을 주제로 만든 독일 사진작가 귄터 크링스(Günter Krings)의 작품>

 


골드 빛 샴페인의 오묘한 빛깔, "뽀글뽀글마치 진주 알갱이처럼 끊임없이 피어 오르는 은은한 기포흰 꽃과 청사과의 향갓 구워낸 빵 냄새에 고급스런 산미와 풍부한 미네랄……

프랑스의 최고 미녀로 불리는 퐁파루드 부인(Madame de Pompadour) "취한 후에도 여전히 여성을 아름답게 해주는 유일한 술"이라며 극찬을 했던 샴페인은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듯한 칼라스의 기분을 일시적이나마 포근하고도 황홀하게 수면위로 끌어 올리지 않았을까? 자조적으로 자신의 스토리 같은 나비부인을 부르며 자기의 슬픔을 샴페인에 실어 나르면서 말이다.

전형적인 나쁜 남자였던 오나시스는 재클린과의 결혼 중에도 칼라스와의 만남을 지속하면서 그녀와의 재결합을 꿈꾸었지만근무력증과 폐렴 합병증으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게 된다쓰라린 실연 후 애인의 죽음으로 두 번이나 철저히 버림받은 - 이젠 미워할 상대마저 남지 않은 그녀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그녀는 오페라 가수답게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Tosca)에 나오는 아리아 "노래에 살고사랑에 살고(Vissi darte, vissi damore)"를 읊조리며 역시 샴페인에 몸과 마음을 맡기며 처절하게 흐느꼈을 것 같다.

 

칼라스 역시 오나시스를 따라가듯 2년 후 우울증과 약물중독에 빠져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노래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라고 외쳤던 진정한 로맨티스트였던 그녀……

마리아 칼라스나비부인샴페인은 적어도 내게 있어 잊혀지지 않는 슬픔이 될 것 같다.

 

Written By 정세은

Writer / Artist / Wine Consult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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