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이여, 사랑의 고백은 소아베(Soave) 와인으로!
남성들이여, 사랑의 고백은 소아베(Soave) 와인으로!
2010년에 개봉된 ‘레터스 투 줄리엣(Letters to Juliet)’은 셰익스피어의 불멸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이태리의 베로나(Verona)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로맨틱 스토리를 담은 영화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언뜻 단순하고 통속적인 사랑이야기로 보이지요. 50년 전 뜻하지 않게 헤어졌던 첫사랑의 남자를 찾아나선 70대 할머니의 옛사랑 찾기 그리고 약혼자와 예비 신혼여행을 위해 미국에서 베로나로 온 한 여기자가 70대 할머니의 사랑찾기에 동행했다가 할머니와 함께 왔던 손자와 눈이 맞아 약혼자와 결별하고 새로운 사랑을 이룬다는 이야기가 그 줄거리인데, 실제로는 통속적인 러브 스토리가 아니고 신선하면서도 애절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세대를 달리하는 두 종류의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50년이 넘어서도 잊지 못하는 은근하면서도 애절한 첫사랑, 금방 불붙었다 식었다를 되풀이하는 젊은 세대의 사랑. 그러나 젊은 여주인공 소피는 70대 할머니인 클레어에게, 클레어는 다시 소피에게 용기 있는 사랑의 선택을 유도함으로써 사랑은 세대를 뛰어넘는 가치임을 음미하게 합니다.
‘레터스 투 즐리엣’의 가장 중요한 배경이 된 이태리의 고도 베로나에서는 매년 봄 빈이태리(Vinitaly)라는 국제와인박람회가 개최됩니다. 이 행사에서는 이태리에서 생산되는 수많은 와인들을 맛볼 수 있습니다. 1913년 베르디(Verdi)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처음 개최된 이래 오페라 페스티벌(Arena di Verona Festival)이 매년 여름에 베로나에서 열립니다. 그 개최장소는 고대 로마 유적인 아레나(Arena)입니다. 이곳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바탕으로 도시 마케팅 차원에서 만든 ‘줄리엣의 집(Casa di Giulietta)’은 베로나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입니다. ‘줄리엣의 집’ 마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벽이 관광객들의 낙서로 까맣게 보일 정도이며, 줄리엣 동상의 오른쪽 가슴은 사람들의 손길을 타서 반질반질합니다.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믿음 때문이지요.
베로나가 속해 있는 베네토(Veneto) 주(Region)는 이태리 최대 와인산지 중의 하나이며 다양한 와인이 생산됩니다. 그 중의 하나가 소아베(Soave) 와인입니다. 소아베는 베네토 주에 속해있는 베로나(Verona) 지방(Province, 베로나는 시의 이름이기도 하며 동시에 지방의 이름)에 있는 인구 약 7,000여명의 작은 마을(Comune)의 이름이기도 하고, 이 마을과 인근 마을들에서 생산되는 화이트 와인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은 베로나는 물론 토스카나 지방과 소아베를 배경으로 촬영되었지요. 소아베는 베로나에서 베네치아가 있는 동쪽 방향으로 약 20km 떨어져 있습니다.
/베로나의 아레나를 배경으로 소아베 한 잔을 찍은 모습(소아베 와인협회 제공)/
소아베라는 단어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로미오가 줄리엣과 만나 와인을 마시고 “Soave!”라고 외쳤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 때 와인을, 줄리엣을 혹은 줄리엣과의 키스를 “소아베”로 묘사했다고 다양하게 말합니다. 이태리의 시인인 알리기에리 단테(Alighieri Dante)가 소아베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마시고는 “Soave”라고 표현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Soave”는 이태리어로 “부드러운”, “사랑스러운”, “감미로운”이라는 뜻을 가졌지요.
이태리 와인의 전문가인 독일인 슈테펜 마우스(Steffen Maus)는 그의 저서 ‘이태리의 와인세계(Italiens Weinwelten)’에서 소아베 와인협회(Consorzio Tutela Vini Soave)의 홈페이지에서조차 소아베의 이름과 관련하여 “신비스런 우연”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도 단테의 이야기도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독일 슈바벤(Schwaben) 사람들이 6세기에 소아베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소아베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말하는 역사가들의 의견에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슈바벤 사람들을 “Sueben”이라고 표현했었죠.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사실 소아베 와인의 마케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조금은 알려진 사실입니다. 소아베의 어원에 대해 사실적으로 접근하려는 슈테펜 마우스는 그래도 소아베를 “줄리엣을 위한 와인(Wein für Julia)”이라고 서슴없이 소개합니다. 소아베라는 단어가 존재해 오지 않았다면 광고 기획사가 이 단어를 만들어 냈어야 한다면서… 소아베를 로미오와 줄리엣의 와인이라고 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매년 발렌타인 데이를 즈음하여 베로나에서는 ‘Verona in love’라는 행사가 열리는데 2008년에 소아베가 ‘Verona in love’의 공식와인으로 선정되었던 사실 때문입니다.
‘My way’라는 노래로 유명한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는 소아베 와인을 서빙하지 않는 테이블에는 앉지 않았을 정도로 소아베 와인의 팬이었다고 합니다. 이태리의 문학가인 가브리엘레 단눈치오(Gabrielle D'Annunzio, 1863~1938)는 그가 즐겨 마시던 소아베 와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찬한 적이 있습니다.
“이 와인은 젊음과 사랑의 와인이다. 오랜 세월 동안 점차 신중해지고 사려 깊어진 나에게 더 이상 어울리는 와인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내 화려한 과거에 대한 찬미로 이 와인을 마신다. 이 와인이 나에게 다시 젊음을 돌려주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다시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소아베 와인이 헥타르 단위 생산량을 많이 줄이고, 현대의 발달된 양조기술에 의해 장기 숙성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단눈치오가 경험했더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아베 와인을 젊음의 와인이라고 국한시킬 수는 없지요. 매년 모든 생산자의 소아베 와인을 시음하는 소아베 마을 최고의 소믈리에인 Chiara Maria Mattiello는 소아베 와인의 장기 숙성 가능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자신 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2017년 소아베를 방문했을 때 2009년 빈티지의 소아베 와인을 마시며 그녀에게서 소아베 와인에 대한 많은 설명을 들었을 때 단눈치오의 소아베 예찬은 사랑의 와인이라는 점에서만 맞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와인이라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La Bohème)’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제1막에서 로돌포는 미미에게 ‘오, 사랑스런 아가씨(O soave fanciulla)’라는 아리아를 부른다는 것을… 운명적인 상대방을 만나 마법처럼 한 순간에 사랑이 이루어지는 환상적인 장면에서 들려줍니다.
/필자에게 소아베 와인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는 소믈리에 Chiara Maria Mattiello. 많은 이태리 사람들처럼 그녀도 대화 중에 손 움직임이 많았는데 이러한 사실을 이야기하며 같이 많이 웃기도 했습니다./
사랑에 빠진 남성들이여! 시간이 허락하면 그녀와 이태리의 베네토 주로 여행해 보기를 권합니다. 가능하면 베로나에서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리는 여름에. 아레나에서 오페라를 관람하고, ‘줄리엣의 집’을 가보세요. 줄리엣 동상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며 당신의 사랑고백이 성공하기를 기원해 보세요. 그리고 베로나 최고의 와인 바인 ‘Bottega Vini’에서 소아베 한 잔 마시기를 권합니다. 이어서 다른 와인을 마시고 싶으면 마찬가지로 베네토에서 생산되는 아마로네와 발폴리첼라가 제격이겠죠.
베로나 다음의 코스로 소아베 마을에 가보시기 바랍니다. 소아베는 토스카나와 프로세코 생산의 중심지를 물리치고 이태리 정부가 2017년에 처음으로 선정한 historical landscape에서 1위에 선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소아베 와인의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밝고 깔끔한 성벽을 지나 작고 아름다운 소아베에서 부드럽게 사랑을 고백해 보세요. 언덕 위에 우뚝 솟은 소아베 성(Castello di Soave), 성벽 밖의 포도밭들과 멀리 보이는 알프스가 낭만적인 조화를 이룹니다. 소아베 마을 중심에 있는 레스토랑 Palazzo di Giustizia의 로맨틱한 분위기, 다양한 소아베 와인들과 베네토식 음식이 더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소아베 사람들의 친절함에 감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소아베에서 멀지 않은 베네치아에 가서 곤돌라를 타며 피날레를 장식하시기 바랍니다. 베로나 – 소아베 – 베네치아로 연결되는 서에서 동으로 향하는 루트는 사랑에 빠진 남자들이 와인에 관심을 갖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에 최고입니다.
/소아베에 있는 레스토랑 Palazzo di Giustizia의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모습/
소아베 와인은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입니다. 가르가네가(Garganega) 품종을 주로 하여 보통 샤르도네나 트레비아노(Trebbiano di Soave)를 블렌딩합니다. 이 경우 가르가네가가 70% 이상을 차지해야 합니다. 가르가네가 품종은 여성적이고 트레비아노는 남성적인 성격을 갖는데 가르가네가 품종만을 사용하여 소아베 와인을 만드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양조에 따라 밝은 볏짚 색부터 황금색을 띠는 소아베 와인은 풋사과, 배, 복숭아, 꿀, 아몬드 향이 두드러지고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이지만 DOCG 등급의 경우 질감이 많이 느껴지며 더욱 부드러우면서도 복합적인 느낌을 선사합니다. 국내에서는 그 기회를 얻기가 흔하지 않겠지만 약 5년 이상 숙성된 소아베를 마시면 그 진가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부드럽고 가벼운 편이며 알코올 도수가 비교적 낮고 산도가 잘 뒷받침되는 소아베는 마시기 편해서 이태리의 모젤와인이라고 묘사하기도 합니다. 드라이한 와인이지만 이러한 특성들 때문에 소아베가 사랑의 와인으로 자주 소개되고 있는 것이겠지요.
/소아베의 숨은 보석을 생산하는 Vincentini Agostino/
소아베 와인은 오늘날의 와인등급 제도가 탄생하기 전인 1931년에 이태리 와인 중에서는 최초로 ‘Fine Italian Wine’이라는 등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태리 최초로 아펠라시옹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지요. 소아베 와인이 현재의 DOC 등급을 받은 것은 1968년이며, 1998년에는 베네토에서 생산되는 와인 중에서는 최초로 Recioto di Soave가 DOCG 등급을, 이어 2001년에는 Soave Superiore가 DOCG 등급을 받았습니다. 그 외에 Soave Classico DOC는 소아베 마을과 Monteforte d’Alpone 마을의 언덕에 있는 가장 오래된 포도밭에서 생산된 경우에만 받을 수 있습니다. Soave Superiore DOCG는 대부분 Classico에 속하는 포도밭에서 생산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Soave Colli Scaligeri Superiore DOCG로 표기합니다.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Wine Writer / Consultant / Lecturer
Asia Director of Asia Wine Tr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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