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페리뇽(Dom Pierre Pérignon, 1638-1715)
동페리뇽(Dom Pierre Pérignon, 1638-1715)
동페리뇽과 루이 14세
이 두 사람이 같은 나라에서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해에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생전에 둘이 만난 적은 없지만, 한 사람은 샴페인의 명성을, 또 한 사람은 절대왕정을 구축하였다고 할 수 있다. “짐은 곧 국가다”라고 외친 태양왕 루이 14세는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을 짓고 정복전쟁으로 영토를 넓히면서, 전형적인 전제군주로서 무려 72년 간 프랑스를 다스렸다. 유럽에서 프랑스의 세력과 국위가 정점에 이른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는 황태자와 황태자의 아들보다 더 오래 살았으며, 1715년에야 그의 증손자가 다섯 살의 나이에 왕위를 계승하여 루이 15세가 된다.
동페리뇽(Dom Pierre Pérignon, 1638-1715)은 20세에 베네딕트 수도원의 수도사가 되어, 30세부터 랭스에 있는 오빌레 수도원에서 일하기 시작하여 수도원 생활에 필요한 생활용품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는 와인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와인을 잘 만들고 사업적인 수완도 좋아서 수도원의 포도밭을 넓이고, 수도원의 와인 가격도 주변보다 네 배나 비싸게 받을 수 있었다. 또 레드 와인 품종으로 화이트 와인을 최초로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가지치기를 짧게 해서 단위면적 당 수확량을 줄여서 와인의 질을 높였으며, 기온이 낮은 아침에 포도를 수확을 하여 아로마를 보존하고, 포도밭에 압착기를 설치하여 수확 즉시 압착하여 주스를 짰다. 그러면서 포도밭을 구분하여 와인을 별도로 담그고, 나무통보다는 유리그릇에 와인을 보관하여 와인의 신선도를 유지하였다.
<오빌레 수도원 전경, 이미지출처: 위키미디어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autvillers,_view_to_Dizy.JPG >
동페리뇽이 샴페인 발견?
사실, 동페리뇽이 만든 와인은 신선한 레드 와인이 대부분이었었다. 루이 14세는 이 와인을 프랑스 최고의 와인이라면서 즐겨 마셨고, 이에 귀족들도 즐겨 마시면서 샴페인의 명성이 올라간 것이다. 스파클링 샴페인은 이후 몇 십 년이 더 흐른 다음에 유행하게 된다. 1715년 루이 14세가 죽은 후에 루이 15세의 섭정을 맡은 오를레앙 공작이 스파클링 샴페인을 즐겨 마셨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때부터 샴페인 지방에서 스틸 와인에서 스파클링 와인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1700년대 말까지 샹파뉴 지방 와인의 90 %는 스틸 와인이었다. 이렇게 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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