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와 와인
돈키호테와 와인
원작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여 2016년에 미국에서 만든 영화 <돈키호테: 맨 오브 라만차(Don Quixote: The ingenious gentleman of La Mancha)가 금년 1월 국내에서 개봉되었다. 소설가 천운영은 2013년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스페인 말라가에 머물면서 어릴 적 문고판으로만 읽었던 <돈키호테>를 다시 읽었는데 여기에서 소개된 다양한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작년 12월에 스페인 레스토랑 ‘라 메사 델 돈키호테(돈키호테의 식탁)’이라는 스페인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스페인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redra, 1547~1616)가 1605년에 발표한 <돈키호테>의 전편은 “유명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의 인물됨과 일상에 대하여”라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부분의 맨 앞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보통 양고기보다 소고기를 더 많이 넣은 요리와 소금을 넣어 잘게 다진 고기 요리를 저녁으로 먹고 토요일에는 베이컨이나 햄 조각을 넣은 달걀 요리를, 금요일에는 납작한 콩 요리를, 일요일이면 새끼 비둘기 요리를 곁들여 먹느라 재산의 4분의 3을 지출했다.”(안영옥 옮김, 돈키호테 1, 65쪽). 여기에 등장하는 달걀 요리의 이름이 ‘duelos y guebrantos’인데 ‘노고와 탄식’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유대인이나 이슬람교도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데 정치, 사회적으로 강요에 의해 기독교로 개종한 뒤 그 진실성을 확인 받는 방편으로 그것을 먹도록 강요당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고 한다. 그러니 음식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돈키호테>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해볼 필요를 느낄 법도 하다. 실제로 <돈키호테>에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를 통해 이 소설의 배경이 된 당시의 음식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돈키호테>의 배경이 된 라만차(La Mancha) 지방은 약 190,000ha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어서 스페인 최대의 와인생산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돈키호테>에 음식뿐만 아니라 와인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할 법하다. Félix Solís라는 스페인 와인회사의 홈페이지에 의하면 <돈키호테>에 와인에 대해서 모두 43회에 걸쳐 언급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것은 1615년에 출판된 <돈키호테> 후편에 있는 “두 종자가 나눈 점잖고 새롭고 부드러운 대화와 함께 <숲의 기사>의 모험이 계속되다” 부분에 등장한다.
“산초는 술 자루를 쳐들어 입에 댄 채 15분이나 하늘의 별을 쳐다보고 있더니 다 마시고 나자 머리를 한쪽으로 떨구며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오, 창녀의 새끼 망나니여! 이렇게 훌륭할 수가!」
「그것 봐요!」 산초에게서 <창녀의 새끼>라는 소리를 들은 <숲의 기사>의 종자가 말했다. 「댁도 이 포도주를 <창녀의 새끼>라고 하면서 칭찬하잖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산초가 대답했다. 「고백건대 누구든 어떤 사람을 <창녀의 새끼>라고 부르는 게 그자를 불명예스럽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겠어요. 칭찬하고자 할 때는 말이죠. 그런데 종자 양반, 댁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두고 맹세하며 말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이 포도주는 시우다드 레알 산이 아닌가요?」
「술맛을 제대로 아시는군!」 <숲의 기사>의 종자가 대답했다. 「정말 그곳에서 나온 술로 몇 년 묵은 겁니다.」
「그 일엔 내가 귀신이지!」 산초가 대답했다. 「내가 술에 대해 모르고 지나치는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마시죠. 종자 양반, 술을 알아보는데 정말이지 훌륭하고도 타고난 재능이 내게 있다는 게 대단하지 않은가요? 어떤 술이든 냄새만 한 번 맡으면 산지가 어디인지, 족보가 어떻게 되는지, 맛은 어떻고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술통을 몇 번이나 바꿨는지, 술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지 알아맞히거든요. 하지만 놀랄 건 없어요. 내 핏줄에 우리 아버지 쪽으로 오랜 세월 동안 라만차에서 알려진 아주 대단한 술 감정사가 둘이나 있었으니 말이죠. 이 말에 대한 증거로 그들에게 있었던 일화를 지금부터 들려 드리죠. 사람들이 그 두 분에게 어떤 통에든 포도주 감정을 부탁했지요. 술 상태며 품질이 괜찮은지 나쁜지에 대해서 그분들의 의견을 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한 사람은 혀끝으로 맛을 보고 다른 사람은 코에다 그것을 가져다 대기만 했죠. 첫 번째 사람이 그 술에는 쇠 맛이 난다고 말했고, 두 번째 사람은 그보다는 양가죽 맛이 난다고 했어요. 주인이 말하기를 술통은 깨끗하며 쇠나 양가죽의 맛이 날 만한 처리는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어요. 그래도 그 두 명의 유명한 술 감정사들은 자기들이 한 말이 맞는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술이 다 팔려 술통을 청소해 보니, 거기에서 양가죽 끈에 달린 조그마한 열쇠가 발견된 겁니다. 이런 혈통을 가진 사람이니 그 비슷한 일에 있어서 자기의 의견을 낼 수 있다는 것 댁이 알아줬으면 해서 말입니다.」” (안영옥 옮김, 돈키호테 2, 189~191쪽)
<돈키호테의 마을 Villanueva de los Infantes의 중앙 광장에서>
지난 3월 필자는 스페인의 와인 생산자 도움으로 라만차에 있는 <돈키호테>의 고향인 Villanueva de los Infantes를 방문하게 되었다. 종래에는 <돈키호테>의 고향이 Argamasilla de Alba라고 짐작했었다. 그러나 몇 년 전 마드리드에 있는 Complutense 대학의 연구에 의해 기존의 설이 흔들리고 있다. 아무튼 현재 이 두 도시는 서로 이 문제로 다투고 있다. 스페인 생산자는 <돈키호테>가 와인과 연관된 의미가 있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이를 계기로 다시 <돈키호테>를 읽고 위의 내용을 확인하게 되어 참으로 기쁘다. 필자가 스페인에 체류하던 지난 3월 서울에서 라만차 와인 시음회가 열린 것은 흥미로운 우연이었다.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라는 이름을 가진 와인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돈키호테>에서 와인의 맛을 “창녀의 새끼”라고 표현한 것은 놀랍다. 이러한 표현이 긍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하기는 물론 어렵겠지만.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종자 산초 판사가 와인 테이스터로서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한 세르반테스의 전개는 스페인이 오랜 와인생산의 전통을 가지고 있고 와인이 일상의 음료이기 때문에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오늘날 와인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문헌을 통해 더 확인해 보아야겠지만 <돈키호테>가 어쩌면 직업적인 와인 테이스터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는 최초의 문헌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와인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해보는 것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Wine Writer / Consultant
University Lecturer (Kyung Hee University, Catholic University of Pusan)
Asia Director of Asia Wine Tr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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