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아 디 모로나
바디아 디 모로나
올해 초 참으로 부드럽고 긴 피니쉬를 자랑하는 실크 같은 감촉의 이탈리아 끼안티 와인을 만났다. 같은 와이너리의 데일리급에서부터 리제르바까지 화이트와인과 더불어 3~4가지를 마셔보았는데 하나같이 다들 가성비가 뛰어나고 가슴 속에 잔잔한 울림이 있는 와인들이었다.
그리고 이번 토스카나 키안티 지역 와이너리 투어를 결정했을 때 문득 이 와인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렇게 인상적인 와인을 만들어내는 와이너리에 직접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피사(Pisa)에서 볼테라(Volterra)로 가는 중간 지역에 기반을 둔 바디아 디 모로나(Badio di Morrona). 피사 인근에서는 가장 넓은 영지를 가지고 있는 와이너리 중 하나이다. 바디아 디 모로나는 1939년 이후, 가슬리니 알베르티 일가가 이 지역의 작은 농가를 사들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가슬리니 알베르티 패밀리는 태양광 패널을 생산하여 국내외로 수출하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가 집안이다. 그들은 기업가의 장기적 관점에서 포도밭을 비롯한 바디아 A 모로나의 모든 부지를 사들인 후 기존의 포도나무는 모두 뽑아버리고 새로운 포도품종으로 다시 심었다. 토양을 분석하여 각 토양에 맞는 클론을 식재하고 포도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생산방식으로 양조시스템을 재정비했다. 그들은 와인에 대한 열정과 기업가적인 안목을 접목해 빠른 시간 안에 양질의 와인을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현재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총 600헥터 중에서 약 110헥터 정도에서 와인을 생산해내고 있으며 40헥터 정도에서는 양질의 올리브유를 생산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 매니저인 Marco가 기차역에서 나를 픽업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아름다운 피사의 경치를 감상하며 편하게 와이너리까지 갈 수 있었다.
도착하자 마자 눈에 띄었던 것은 바로 지하굴뚝 같이 생긴 이것! 수확해서 바로 이 자리에서 바로 선별작업 후 포도가 산화되기 전에 최대한 신선도를 지키며 즉시 이 통로를 통해 지하로 내려 보내는 시스템이다.
바디아 디 모로나 와이너리 역시 수확 후 즉시 중력에 의해 포도를 이동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시간 반 정도가 늦어진 일정에도 불구하고 오너인 Filippo씨와 와인메이커인 Adolfo씨가 반가이 맞아주었다. 아주 깨끗하게 잘 정돈된 양조장 내부를 둘러보았다. 발효실의 스테인레스 발효조는 모두 전기로 쿨링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알코올 발효시 생기는 열로 포도가 산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발효조 표면을 계속 낮은 온도로 유지시킨다. 발효실부터 숙성실, 병입되어 출하되는 과정까지도 모두 시스템화 되어 균질한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숙성실에 도착하니 크고 작은 오크통이 잘 정렬되어 있었다. 아주 작은 바리끄(대략 225리터정도를 )부터 큰 오크배럴까지 서로 다른 크기의 오크통에서 와인을 숙성을 시킨다. 그 해의 포도 상태에 따라 서로 다른 사이즈의 오크통에서 숙성을 시킨 와인의 블랜딩 비율을 결정한다.
각 오크통마다 오크통 가운데에는 작은 유리병들이 각각 붙어있는데 유리병 속의 와인이 반쯤 차있는 것이 보였다. 와인메이커인 Adolfo씨는 이 유리병에 든 와인의 상태와 수위의 고저에 따라서 숙성실의 온습도를 조절한다고 했다.
숙성실 가운데에는 돔형태의 테이스팅 룸이 있었는데 멋진 색의 나무가 돔형태의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Fillipo씨가 벽에 붙여진 나무의 향을 맡아보라고 했다. 알고 보니 벽에 장식된 나무는 다 쓰여진 오크통을 다시 해체해 각 오크통의 나무쪽들을 이어서 만든 것이었다.
나무에 은은히 배어있는 향은 오크통에 담겨졌던 와인에서 비롯된 것이며 아름답게 물들여진 색 역시 와인의 색이었다. 테이스팅 룸에 앉아있으니 벽에 붙은 나무에서 은은히 배어나오는 와인향들이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 듯 오크의 향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와인을 마시지 않는데도 와인을 마시고 있는 듯한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내 표정을 보고 짐작이 간다는 듯 두 사람은 와인샵에 준비된 와인테이스팅룸으로 나를 인도했다.
테이스팅을 하기 전 와인샵을 둘러보았는데 Fillipo씨는 무겁고 큰 도록을 펼쳐서 보여주었다.
‘Grand Cru Della Costa’ 토스카나의 해안가에 위치한 5개 지역의 유명 와이너리에 대한 책이었는데 바디아 디 모로나 와이너리가 Pisa지역을 대표하는 와이너리로 소개되어 있었다.
Fillipo씨의 화보도 있었는데 한 눈에도 범상치 않은 사진 같아서 실물보다 잘 나온 거 같다고 농담을 던졌는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탈리아에서 정말 유명한 사진작가가 찍어준 것이라고 했다. 신기하게도 정말 잘 찍은 사진에는 굳이 설명을 따로 하지 않아도 사진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 정확하게 보인다. 이 사진 역시 좋은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 오너의 진정성과 열정이 담겨있는 이미지를 잘 끌어내고 있었다.
테이스팅룸에는 바디아 디 모로나의 전체 리스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와인메이커 Adolfo는 내가 시음을 원하는 모든 와인들을 다 오픈해 주었다. 각 와인들 모두가 섬세함이 살아있으면서도 힘찬 느낌이 참으로 매력적인 와인들이었다. 부드럽지만 힘차고 세련된 느낌이 잘 살아있는 와인들. 일반적으로 유통과정관리가 까다롭고 섬세하게 되지 않으면 현지에서 맛본 것과 수입된 와인의 맛 차이가 확연하게 난다. 현지에서 맛 보았던 느낌을 얼마나 잘 유지하느냐가 수입사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일진데 여기서 개인적으로 느낀 바로는 한국에서 테이스팅했던 그 느낌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만큼 냉장유통시스템을 통한 유통관리가 잘 되어있다는 뜻이며 믿고 마실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현지의 맛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진 수입사를 통해 한국에서도 계속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많이 행복해졌다.
이렇게 맛난 와인을 맛보고 있으니 그들이 가지고 있다는 레스토랑이 궁금해졌다.
원래 계획으로는 월요일에는 레스토랑이 문을 열지 않는데 나를 위해 특별히 셰프가 대기하고 그들의 음식을 선보이겠다고 했기 때문에 상당히 기대를 해왔었다. 하지만 폰테루톨리에서의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셰프가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서 셰프와의 만남은 무산되고 말았다.
너무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셰프가 없어도 레스토랑은 볼 수 있다기에 일단은 레스토랑이 어떤지 보러 가기로 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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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센트 편집부 오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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