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런(Byron)의 시 ‘희망’을 담은 와인 오로 디제(Oro d'Isée)
바이런(Byron)의 시 ‘희망’을 담은 와인 오로 디제(Oro d'Isée)
옅은 황금색을 가진 오로 디제(Oro d'Isée) 와인의 향을 맡는 순간 마치 지중해의 화원에 와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화려한 꽃 향과 허브 향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서양배, 시트러스, 복숭아, 홍옥의 향이 복합미를 더해준다. 입안에서는 군침이 돌게 하는 뛰어난 산도가 아삭아삭한 신선함을 선사하고 미네랄 노트, 약간의 짠맛과 멋진 밸런스를 이룬다. 동시에 입안 가득히 느껴지는 꽃 향과 함께 깊고 그윽한 풍미가 아주 긴 피니시로 이어진다.
이러한 맛을 가진 2016년의 빈티지가 아시아 최고의 국제와인품평회인 아시아와인트로피(Asia Wine Trophy)에서 금상을 수상하고 Decanter World Wine Awards에서 87점을 받은 오로 디제(Oro d'Isée) 와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여행과 와인을 좋아하면 ‘이탈리아의 리비에라(Riviera)’로 알려져 있는 리구리아(Liguria)를 놓칠 수 없다. 이탈리아의 20개 주 중에서 세 번째로 작은 리구리아는 서쪽으로는 프랑스, 북쪽으로는 피에몬테, 동쪽으로는 에밀리아 로마냐(Emilia Romagna)와 토스카나, 남쪽으로는 지중해에 속하는 리구리아 해(Mar Ligure)와 접해있고, 아치형으로 이어지면서 초승달 모양을 형성하고 있다. 이곳에 있는 “다섯 개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친케 테레(Cinque Terre)는 UNESCO 세계 유산으로 너무나 유명한 관광지다. 가파른 계단형 포도밭이 그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리구리아는 서쪽부터 임페리아(Imperia) 지방(Provincia), 사보나(Savona) 지방, 제노바 메트로폴리탄 시티(Città Metropolitana di Genova, 영어로는 Genoa), 라 스페치아(La Spezia) 지방으로 나뉘어져 있다. 라 스페치아 지방은 다시 발 디 바라(Val di Vara), 친케 테레가 있는 리비에라 스페치나(Riviera Spezzina), 라 스페치아 지방의 수도인 같은 이름의 항구도시 라 스페치아(La Spezia)를 중심으로 형성된 스페치아 灣(Golfo della Spezia), 발 디 마그라(Val di Magra)의 4개 지역으로 세분된다.
스페치아 만은 “시인의 만(Golfo dei Poeti)”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그 이유는 많은 시인들이 이곳의 아름다움을 예찬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19세기 프랑스의 여류소설가 조르주 상드(George Sand), 영국의 낭만파 시인인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와 조지 고든 바이런(George Gordon Byron)을 들 수 있다.
“시인의 만(Golfo dei Poeti)”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발 디 마그라(Val di Magra)의 언덕에 페데리치(Federici) 가문의 와이너리 라 바이아 델 솔레(La Baia del Sole)가 있다.
1900년대 초부터 와인을 생산해왔는데 2015년에 ‘라 바이아 델 솔레(La Baia del Sole)’라는 이름을 가진 와이너리 건물을 완공했다. 태양열 지붕과 자연 냉각 시스템을 갖추고 나무, 돌과 벽돌을 사용해서 만든 친환경적인 건물이다. 태양열 지붕을 갖추고, 이 와이너리의 포도밭에 햇빛이 잘 들고 또한 “시인의 만”이 내려다 보이기 때문에 건물의 이름을 ‘태양의 만(灣)’이라는 의미를 가진 ‘라 바이아 델 솔레’로 선택했다(이태리어 Baia는 영어의 Bay에 해당한다). 가문을 강조할 때는 칸티네 페데리치(Cantine Federici)를, 와이너리 건물을 강조할 때는 라 바이아 델 솔레(La Baia del Sole)라고 와이너리 이름을 부르는데 같이 쓰기도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와이너리에서 생산하는 와인의 라벨에는 La Baia del Sole로 표기되어 있고, 병목의 캡슐에는 Federici로 표기되어 있으며 병에는 두 개의 이름이 모두 각인되어 있다. 페데리치 가문이 운영하는 라 바이아 델 솔레 와이너리라고 생각하면 사실 간단해진다.
그런데 왜 와인의 이름이 오로 디제(Oro d'Isée)일까? 현재 이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가족의 고조할아버지 이름이 이제오(Iseo)였는데 그는 “황금의 포도(The Gold Grapes)”라는 이름에 걸맞은 최고의 포도들을 수확해서 만든 와인을 보관해두었다가 가족들과 함께 특별한 날에 이 와인을 마셨다고 한다. 현재는 와이너리가 소유하고 있는 포도밭 오르토노보(Ortonovo)와 카스텔누오보(Castelnuovo)에서 선별 수확한 질 좋은 베르멘티노(Vermentino)를 사용해서 만든 와인으로 고조할아버지를 기리고자 오로 디제(이제의 황금)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따라서 이 와인을 일종의 헌정와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 화려하면서도 앤틱한 라벨은 리구리아의 밝고 화려한 경치와 헌정의 의미를 이상적으로 조합해서 표현했다. 최고의 베르멘티노 와인을 만들어 조상의 뜻을 기리겠다는 정신은 이 와인이 선사하는 매력적인 꽃 향과 짠맛, “시인의 만(Golfo dei Poeti)”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축복처럼 내려 쬐는 햇빛과 어울려 바이런(Byron)의 시 <희망>을 연상케 한다.
“폭풍이 부는 들판에도 꽃은 피고 / 지진 난 땅에서도 샘은 솟고 / 초토 속에서도 풀은 돋아난다. / 밤길이 멀어도 아침 해 동산을 빛내고 / 오늘이 고달파도 / 보람찬 내일이 있다. / 오! 젊은 날의 꿈이여 / 낭만이여 영원히…”
나는 이 와인을 처음 입에 머금었을 때 화려한 필체와 깊은 관찰력으로 유명한 김훈의 <자전거 여행 1>에 나오는 ‘바다의 짠맛과 햇볕의 향기로 소금은 탄생한다’라는 글을 연상했다. “소금은 맛의 근원이다. 다른 모든 맛을 맛으로 살아나게 한다. 짠맛은 바다의 것이고, 향기는 햇볕의 것이다.”
오로 디제 와인은 콜리 디 루니(Colli di Luni) DOC에 해당한다(위의 이미지에서 2번). 리구리아의 8개 DOC 중의 하나인데 행정적으로는 발 디 마그라(Val di Magra) 그리고 스페치아 灣(Golfo della Spezia)의 일부에서 이 DOC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 콜리 디 루니 DOC를 받기 위해서는 화이트 품종으로 베르멘티노(최소 30%), 트레비아노 토스카노(Trebbiano Toscano, 25%에서 40%), 알바롤라(Albarola), 레드 품종으로는 산지오베제(최소 50%)를 사용해야 한다. 오로 디제 와인은 100% 베르멘티노로 만든 와인이다.
베르멘티노는 주로 이탈리아의 리구리아, 사르데냐 섬, 토스카나에서 재배된다. 프랑스의 남동지방과 코르시카 섬에서도 조금 재배된다. 피에몬테에서는 파보리타(Favorita), 리구리아의 서부에서는 피가토(Pigato)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유전적으로 피노 누아나 피노 그리의 경우처럼 동일하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같은 포도밭에서 나란히 재배해도 맛이 다르다. 이탈리아에서는 이 세 개의 이름이 모두 공식적으로 등록되어 있다. 베르멘티노는 질 좋은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기에 적합한데 사향, 아카시아 꽃, 로즈메리, 백리향(thyme), 시트러스, 복숭아, 살구, 사과와 열대과일의 향을 갖는 것이 특징이다. 피니시에서 약간의 짠맛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Wine Writer / Consultant / Lecturer
Asia Director of Asia Wine Tr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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