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비니스(Divinis) 한 잔에 느끼는 소확행(小確幸)

2021.05.13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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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비니스(Divinis) 한 잔에 느끼는 소확행()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2018년 대한민국 소비트렌드로 미닝아웃(Meaning out)’, ‘케렌시아(Querencia)’ 등과 더불어 소확행()’이 선정되었다. ‘미닝아웃은 소비가 투표와 마찬가지로 신념의 표를 던지는 행위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케렌시아는 뭔가 중대한 일을 앞두고 최대한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 필요한 나만이 알고 있는 아늑한 휴식 공간을 뜻한다. ‘소확행은 평범한 일상에서 작지만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이 단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유래한다“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서 먹는 것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말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무라카미 하루키의 행복은 이런 작은 것에 있다.

광고인이자 베스트 셀러 작가인 박웅현은 <다시책은 도끼다>에서 자신의 롤모델이 그리스의 문학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라고 말한다그의 여러 문학작품들에서 카잔차키스는 어떻게 삶을 대할 것인가?’라는 한 가지 방향을 추구한다고 설명한다온몸이 촉수인 사람으로 살고 싶었고 행복이란 단순하고 소박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며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을 인용한다.

나는 또 한 번 행복이란 포도주 한 잔밤 한 알허름한 화덕바닷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임을 깨달았다필요한 건 그뿐이었다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다.”

 

그렇다와인 한 잔에도 행복이 있다반드시 귀하거나 값비싼 와인일 필요는 없다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프랑스의 철학가 티에리 타옹(Thierry Tahon) <와인의 철학>에서 말한 것처럼 와인의 세계에 수직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이름난 와인들만 마시려고 한다면 와인 자체가 주는 감각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와인의 권위가 파급되기를 바라는 어떤 허구적 보상을 받기 위해서이다모든 와인들이아니 적어도 대부분의 와인들은 뭔가 저마다 흥미로운 것이 있고 한 번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수평적으로 와인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티에리 타옹이 말하는 것처럼 와인의 세계는 단순히 감각만의 세계로 요약할 수 없다와인의 칼라를 보고그 향기와 입 속에 남는 맛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상상의 개입이 필요하다어떤 의미에서 와인은 우리를 꿈꾸게 한다장 그르니에(Jean Grenier) <일상적인 삶>에서 포도주가 갖는 첫 번째 특성은 마셨을 때 유쾌한 기분이 곧바로 펴진다는 것이다온몸의 감각들은 달아오르고그것을 마시는 장소가 아무리 누추하다 할지라도 우리의 상상력은 그곳을 동화 속의 나라처럼 보이게 한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나무병에 우유를 담는 일”, “숲의 자작나무들을 베는 일”, “즐겁게 노는 어린 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과 같은 인간의 사소한 일들이 위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에서 노래한 것처럼.

 

이러한 생각들에 어울릴만한 와인을 하나 선택했다라틴어로 신성한 이들에게라는 뜻을 가진 Divinis! 1903년에 설립된 가족운영의 와이너리인 스페인의 보데가 이그나시오 마린(Bodegas Ignacio Marín)이 가르나차(Garnacha)로 만든 와인이다가르나차는 카탈루니아에서는 Garnatxa, 프랑스에서는 Grenache, 이태리의 사르데냐 섬에서는 Cannonau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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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에 새겨진 “Mediterranean Wine”이라는 문구와 바르셀로나에 있는 구엘 공원을 연상시키는 이미지 때문에 감각적인 세계 속에서 지중해로 가고 싶은 꿈을 꾸게 만든다대문자의 DIVINIS는 지중해에서 바쿠스의 축제를 즐기자고 유혹하는 것 같다.

 

데일리 급 와인이지만 내가 마신 2015년 빈티지는 2016년에 열린 국제와인품평회 Grenaches du Monde에서 금상을 수상한 매력적인 와인이다농익은 블랙 체리와 블루베리말린 자두 등의 과실 향이 풍부하고 juicy하며 부드러운 탄닌에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아서 목 넘김이 부드럽다와인을 목에 넘기는 순간 입 천장에서 자두 맛이 느껴지는 것이 독특하고드라이한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약간 감미로운 느낌이 든다보통의 가르나차와 달리 산도가 뛰어나서 유쾌한 피니쉬를 선사한다.

 

다시 카잔차키스를 인용하자.

이같이 사소한 육신의 즐거움이 어쩌면 이다지도 빨리그리고 간단하게 엄청난 정신의 즐거움으로 변하는 것일까?”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Wine Writer / Consultant / Lecturer

Asia Director of Asia Wine Tr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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