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추천하고 싶은 와인들(2) – 오렌지, 레드, 스위트
3주 전에 발표한 연말에 추천하고 싶은 와인들 1편에서는 스파클링, 화이트, 로제 와인을 다루었다. 이번에는 오렌지 와인, 레드 와인, 스위트 와인을 소개하고 싶다. 모두 금년에 시음해본 와인들 중에서 선정한 것이다. 나의 선택은 국내에서의 지명도와 무관하며 내가 추구하는 와인의 다양성과 개인적인 취향 그리고 가성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오렌지 와인
자로 말바지아(Zaro Malvazija)
슬로베니아에서 도마치아 노박(Domačija Novak)이라는 레스토랑과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며 세계 최고의 오렌지 와인 컬렉터인 보리스 노박(Boris Novak), 슬로베니아의 이졸라(Izola) 지역 신문의 영향력 있는 저널리스트인 사쇼 드라비네츠(Sašo Dravinec)와 함께 매년 이졸라에서 오렌지 와인 페스티벌을 주최하는 사람은 이졸라에 있는 자로(Zaro) 와이너리의 오너인 브루노 자로(Bruno Zaro)다. 그와 그의 아들 마테이 자로(Matej Zaro)가 말바지아 100%로 만든 오렌지 와인은 그야말로 멀티 플레이어다. 오렌지 와인의 경험이 없는 사람부터 오렌지 와인의 전문가까지 누구나 좋아하는 맛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보리스 노박이 극찬하는 소수의 오렌지 와인 중에 하나다.
1384년에 설립된 자로 와이너리가 아드리아해에서 불어오는 미스트랄과 돌이 많은 플리시(flysch) 토양에서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포도로 만든 오렌지 와인은 30일 동안의 스킨 컨택과 18개월 동안의 오크 숙성을 거쳐 출시된다. 파인애플, 바나나 등의 열대 과일, 살구, 시트러스 향이 두드러지고 입안에서는 미네랄과 감각적이며 스위트한 탄닌의 느낌이 매력적이다.
레드 와인
샤또 미셸 드 몽테뉴 에세이(Chateau Michel de Montaigne Les Essais) 2015
볼륨 기준으로 2007년에 프랑스 와인 수입이 정점을 찍었다. 글로벌 경제 위기로 인해서 2008년과 2009년 프랑스 와인 수입은 급속히 감소되었다. 이후 조금씩 수입량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2007년의 수입량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08년에 칠레에서의 와인 수입량이 프랑스에서의 와인 수입량을 추월하고 칠레산 와인의 수입이 급속히 증가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와인수입이 다양화되고 있다는 증거로도 해석할 수 있다.
금년에 시음한 레드 와인 중에서는 샤또 미셸 드 몽테뉴의 에세이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뛰어난 가성비를 자랑한다. 또한 이 와인에 담긴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롭다. 미셸 드 몽테뉴(1533-1592)의 성은 보르도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도밭은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이곳은 에세이(Essai)라는 문학 형식을 만들어 내고 <수상록(Les Essais)>을 쓴 미셀 드 몽테뉴가 살던 성으로 유명하다. 1860년 이후부터는 보르도의 유명한 와인 무역상인 말레 베스(Mahler-Besse) 가문이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다.
보르도 인접 지역에서 보르도와 비슷한 포도들을 재배하고 와인의 맛과 향도 거의 흡사한 와인을 생산하는 곳을 보르도 클론(Bordeaux Clone)이라고 부른다. 보르도 클론 와인 생산지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베르쥬락(Bergerac)이라고 할 수 있다. 베르쥬락은 보르도의 동쪽, 도르도뉴강 연안에 위치한 도시로 프랑스의 다른 와인 생산지역들과 마찬가지로 로마시대부터 와인을 생산해온 유서 깊은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한 보르도 와인들에 밀려 늘 2인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많은 생산자들이 보르도의 뛰어난 와인과 견줄 만큼 구조가 좋고 풍미가 뛰어난 와인들을 생산하고 있다.
에세이는 새해에 최고들이 속한 그룹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와인이다. 국내에는 2003, 2005, 2009 빈티지가 수입되어 있는데 내가 시음한 것은 2005년산이다. 메를로 90%, 까베르네 소비뇽 5%, 까베르네 프랑 5%를 블렌딩한 이 와인은 Bergerac AOC이며 15년된 와인이지만 아직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까시스와 달콤한 향신료, 유칼립투스의 복합적인 아로마가 두드러지고 부드러운 구조감과 실크와 같은 탄닌이 돋보인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풀바디한 와인으로 강렬한 인상은 오래도록 이어지고 마지막은 신선함으로 마무리된다.
스위트 와인
아스코니 카베르네 소비뇽 로제 아이스와인(Asconi Cabernet Sauvignon Rose Ice wine) 2017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독일의 아이스와인은 가격이 아주 높은 편이다. 게다가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독일산 아이스와인을 접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러한 틈을 이용해서 동유럽의 작은 국가인 몰도바에서 생산하는 아이스와인이 금년부터 국내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몰도바에서 아이스와인은 이미 소비에트 연방 시절부터 생산되어 왔는데 생산량이 크게 늘어난 것은 2000년대에 진입한 이후다. 리슬링, 샤르도네, 트라미너, 머스캣으로 주로 만든다. 현재 국내에 수입되어 있는 아이스와인은 총 5종이다. 라다치니(Radacini) 와이너리가 리슬링으로 만든 아이스와인, 푸카리(Purcari) 와이너리가 머스캣 오토넬과 트라미너를 블렌딩해서 만든 아이스와인, 아스코리 와이너리(Asconi)가 각각 리슬링, 머스캣,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든 3종의 아이스와인이 스위트 와인 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아스코니에서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든 로제 아이스와인은 그 희귀성 때문에 특별한 관심을 끌고 있다. 게다가 금년의 Asia Wine Trophy에서 Grand Gold를 받아 그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핑크 연어의 색상을 지닌 이 와인은 딸기 잼의 강렬한 향, 장미 꽃잎 그리고 복숭아와 캐러멜이 결합한 향을 지니고 있으며 입안에서는 딸기와 캐러멜의 풍미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왕관의 로고에 메탈로 된 라벨이 이 와인의 품격을 더해준다.
WRITTEN BY 박찬준 (Chan Jun Park)
Wine Writer / Consultant / University Lecturer
Asia Director of Asia Wine Tr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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